아부지 머하시노?

“아부지 머하시노?”
어느 영화를 통해 한 배우의 멘트가 더 유명해지긴 했지만, 이 물음은 항상 우리 곁을 맴돌던 문제였던 것 같다. 어릴 적 학교에서 새 학년이 시작되면 꼭 나누어 주던 “가정환경 조사서”라는 것이 생각난다. 시시콜콜 여러가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는데, 부모님의 성함과 나이, 학벌, 그리고 직업을 묻는 란이 있었다. 그 당시야 대부분 아버지가 밖에 나가 돈 벌어오던 시절. 결국 아버지가 누구이고 뭘 하시는 지에 따라 어깨 쫙 펴고 다니는 아이도 있었고, 괜히 기가 죽어 있는 아이도 있었다. 아직도 학교에서 이런 것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하긴 요즘 사람들도 금수저, 흙수저 하고 떠드는 것을 보면, 이건 어쩌면 변치 않는 인간관계의 씁쓸한 역사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누군인지 아는 것은 법적으로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단 한 아이에 대한 권리와 의무 관계가 형성되고, 상응하는 혜택과 처벌이 따른다. 흔히 간단히 생각할 수 있는 권리로서 자녀 양육권, 법률 대리권, 그리고 재산 상속권이 대표적이다. 아빠가 아이와 함께 사는 것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하지만 옆집 아저씨가 허락없이 그 아이와 함께 산다면 그건 납치 유괴일 수 있다. 또한 아빠는 아이의 법률 대리인으로도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이에게 재산을 상속해 줄 수도 있고, 아이로부터 아빠가 재산을 상속받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아빠와 아이 사이에는 상호간 의무와 책임도 있다. 아빠는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 교육문제, 의료문제를 비롯하여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적절한 지도편달이 필요하다. 또한 아이의 안전도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아이가 위험에 처할 땐 나서서 보호해 줘야 한다. 아이가 영양실조에 시달려도 물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아무 관심 없다면, 옆집 아저씨는 처벌받지 않아도 아빠는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아이도 옆집 아저씨 잔소리는 들을 필요가 없어도 아빠 잔소리는 왠만해선 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아빠라는 사람의 정체 자체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가 있다. 누가 아빠인지 아예 모르거나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동시에 한 명 이상 존재하는 상황이다. 엄마의 경우 이런 문제는 거의 없다. 출생 증명서에 아빠 이름이 없는 경우는 많아도 엄마 이름이 없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 바로 애 낳은 사람이 엄마이다. 누가 엄마인지 증명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아빠가 누구인지는 사실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진짜 한 아이의 아빠인지 스스로 의심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가정법원에서 발생하는 친자 확인 소송은 대부분 아빠가 누구인지에 대한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누가 애 아빠인지 하는 문제와 관련해 대체적으로 네 가지 종류의 상황이 존재한다. 먼저 법률에서 자동적으로 아빠라고 간주하는 경우다. 아이가 태어난 시점에 그 아이의 엄마와 혼인 상태에 있었다면 법률은 바로 그 남편을 아이의 아빠로 본다. 혹시 이혼을 한 경우라도 아이가 이혼한 날로부터 300일 안에 태어났다면 그 이혼한 남편을 아빠로 본다. 설령 결혼한 적이 없다 해도 아이가 태어난 후 첫 두 해 동안 그 아이와 같은 집에서 함께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아이인 것처럼 행동하고 다닌 경우도 마찬가지다. 법률적으로 그냥 아이의 아빠라고 간주해 버린다. 따라서 법률에서 정하는 부모로서의 권리와 의무 관계도 자동적으로 형성된다.

두번째로 자신이 아빠라고 주장하기 위해 스스로 법률 문서에 서명을 하거나 법원의 판사 앞에서 공식적으로 선서를 하는 경우다. 대개 아이의 엄마와 아무런 혼인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역시 법률적으로 아빠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된다. 세번째로 자신이 아빠라고 확인하는 법률 문서도 없고 판사 앞에서 선서한 적도 없고 아이 엄마와 결혼한 적도 없는 경우다. 다만 주변 정황상 자신이 아이의 아빠일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경우 법원에서 판사가 그 사람을 아이의 아빠라고 결정 내리기 전까지는 법적인 권리나 의무 관계는 형성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법원에서 판사의 명령을 통해 정식으로 아빠로 인정받는 경우다. 대부분의 경우 바로 위의 예와 같이 주변 정황상 아빠라고 생각은 되지만 아직 법적으로 아빠로 인정된 적이 없는 사람들의 얘기다. 한편 여러 사람이 동시에 서로 자기가 아빠라고 주장하거나 혹은 모두 자기가 아빠가 아니라고 싸우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이럴 경우 법원은 유전자 확인 및 여러 주변 상황을 법률적으로 고려하여 한 사람만을 그 아이의 아빠로 결정한다.

법률적으로 아빠는 한 시점에 딱 한 명만이 존재하도록 돼 있다. 이 세상에 아빠는 단 한 명? 자연 과학적으로 보면 그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위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리학적 아빠가 반드시 법적으로도 아빠가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아빠가 여럿이어서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마도 법률은 그럴 경우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더 많아서 단 한명만을 법적인 아빠로 하도록 했을 것 같다. 그래도 이 문제는 생각할수록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