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공감

삶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공감을 한껏 느끼면 사람은 신선한 에너지가 몸을 장악하게 되고 가슴이 채워지고 머리가 비워지고 쓴 뿌리들이 빠져나가서 좀 더 본연의 존재에 가까운 상태가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도 지지리 쫓아다니던 병마도 어쩌면 저절로 달아나게 되지 않을까. 우리 삶이 그렇게 서로를 살려내고, 살려내야 하는데 말이다.
사람은 말을 섞으면서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갖고 마음의 간격을 좁혀간다. 그래서 누군가와 수다를 즐긴다는 것은 상대방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뜻일게다. 그렇게 말 수가 많아지면 점점 꾸미거나 감추는 일 없이 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구가 되리라. 그렇다. 서로 마음 안에서 마음을 제대로 보면 말이 통하고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서 막힌 것들이 뚫어지고 욕망이 빠져나가 그야말로 진실이 보이고 진리가 진리 인채로 가슴에 와 닿아 그렇게도 누리고 싶었던 아름다운 관계가 생각보다 더욱 더 분명한 실체로 다가오게 될텐데…
그래서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는 주님의 말씀은 어쩌면 가짜 자기들, 즉 내생각 내감정 버릇 상처 지식 직업 집안 이름 학력 등 지금껏 ‘나’라고 행세를 해온 가짜 ‘나’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진짜 ‘나’인 영과 접촉하라는 말씀이 아닐까. 그러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분명해 지고 내가 새롭게 거듭나는 부활을 맞이하게 되리라. 그렇다. 오늘도 주님은 여리고성을 지나가듯 그렇게 내 앞을 지나가시는데 우리 미련한 인생은 주님이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벌써 일어난 일, 그리고 다 지나간 일에 급급하여 성취감 뿌듯함 실망 아픔 속에 빠져 사느라, 주님의 마음도 내 이웃의 맘도 아니 내 마음도 조차도 헤아리지 못한 채 그저 버겁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성경속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는 도구 내지는 장비가 있고 도울 힘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우리에게 장비와 힘은 무엇일까? 가장 좋은 옷과 환한 웃음 뒤에 감추어진 드러낼 수 없는 힘든 삶의 아픔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아닐까. 상대의 상처와 삶을 공감해 주어 당신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그 사람의 힘듬을 사랑이란 고리로 엮어서 감싸 앉을 수 있는 것이 진정 우리가 사는 힘이리라.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라고 하신 말씀은, 내 생각과 욕망과 바램들로 꽉 찬 마음차원에선 죽었다 깨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 일이 이 땅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은 그야말로 신을 만나 내 삶이 얼마나 신이 나는지 아는 오직 믿음차원에서만 가능한 것이리라. 그럴 때 누가 묻지 않아도 올라오는 물음들과 함께, 바쁜 틈과 틈사이 에서도 차 한 잔을 동반한 말씀 묵상이 얼마나 꽉 찬 영혼으로 배부르게 하는지, 얼마나 기존의 내 생각 보다 더 좋은 생각을 선택하게 하는지… 정작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비밀 중에 비밀이리라.
그렇게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이란 사실에 어떤 것을 더하지 않고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는 사람일게다. 그래서 우리는 살면서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 하리라. 해서 내가 진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 내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며 날마다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것은 ‘삶의 공감’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오는 영력개발의 시작이리라. 그렇게 내 안에 있는 그리움들이 공감받고 공감받으면 우린 다시 두 다리를 굳게 딛고 일어서며 또 다시 살아나리라. 아이처럼…
아, 주님이 나를 공감해 주시며 내가 그분 안에 거하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장사라 사모
빛과소금의교회
‘영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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