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사랑하는 이웃

몇 주 전의 일이었습니다. 평일 오전에 기도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미국 청년 한 명이 본당 문을 열고 들어와서 담임목사를 찾았습니다. 모임을 다른 분에게 맡기고 제가 나갔더니 그 청년은 자신을 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고 소개하며 자동차 배터리를 교체할 돈을 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한동안 일이 없다가 오늘부터 일을 하게 되었는데 배터리가 고장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출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도와줄 수는 있는데 지금 현금은 가진 것이 없고 같이 가서 새 배터리를 카드로 사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도모임을 하는 중이니 잠시 후 모임이 끝난 다음에 함께 가자고 했고 만일 집에 가서 기다리고 싶으면 전화번호를 남겨놓으라고 했습니다. 모임이 끝나는 즉시 전화를 해서 그와 함께 배터리를 사러 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집에 가서 기다리겠다고 하며 전화번호를 남겨놓았습니다.
기도모임이 끝난 후에 저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는 전화를 걸면서 내심 그에게 배터리를 사준 후에 어떻게 복음을 전할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화기에서는 “지금 건 전화번호는 바른 번호가 아니니 전화번호를 확인하라”는 메시지만 나왔고 결국 그 청년과는 통화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오후에 그가 다시 찾아올까 봐 기다렸는데 그 청년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그 청년과 주고받은 대화를 생각하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습니다. “그래도 교회라고 찾아왔는데……
성도들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줄 것을 그랬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이웃을 사랑해야 할까요?
신약성경에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을 도운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이 하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 끝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은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이웃의 입장에서 이웃이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강도 만난 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종교를 가졌던, 어떤 피부색을 가졌던, 어떤 말을 쓰던 상관없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는 사람이 자신의 이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른다면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은 인종과 성별과 종교와 문화, 그리고 국경을 초월하여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이웃의 범위가 너무 넓어 기가 질린 지경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바로 강도 만나 거의 죽어가는 사람보다 더 비참한 모든 사람들의 이웃이 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 가운데 죽어 영원한 형벌로 향하는 사람들을 살리시기 위해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큰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해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사랑을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 사랑에 근거하여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약 두 주 전에 저희 교회에서 작은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행사는 우리 교회만의 행사가 아니라 지역에 있는 기업체와 병원들의 후원을 받아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이웃들이 다른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행사였습니다.
저희 교회에게 이 행사는 이웃을 사랑하는 이웃이 되기 위해 첫발을 내딛는 것과 같았습니다.
저는 저희 교회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작은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이웃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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