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 더

제 동료 중 한 명은 독실한 무슬림입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교구가 있는 창고로 가서 히잡을 쓰고 기도를 합니다. 필요한 교육재료가 있어서 창고로 들어갔을 때 그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적이 있지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기도하는 그녀를 보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동료는 독실한 힌두교인입니다.
저는 가끔 때를 따라 금식 기도를 할 때가 있는데, 하루는 종일 금식을 하는 중이었지요. 간식도 먹지 않는 저를 보고 왜 먹지 않느냐는 동료의 물음에 기도 제목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금식을 할 때가 있다고 간단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대답하며 그 힌두인 동료 또한 그날 하루 종일 물조차 마시지 않았다는 말에 깜짝 놀라서 이유를 물었지요. 그랬더니 나라의 전통과 종교 관습에 따라 그날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고기는 전혀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에 일정 기간을 두고 꼬박꼬박 금식을 하는 것을 알았지요. 그랬더니 하루는 제게 이렇게 묻습니다. “친구 네가 믿는 신은 몇 명이야?. 우리는 신이 진짜 많아” 평생을 기독교인들과 교회 공동체의 문화 속에 지내온 제게 참 낯설게 들려지는 질문이었습니다.
“난 한 분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그분은 세분이시고 한 분이셔.” 이런 대답이 그녀에게 얼마만큼 전달될지 모르지만 하나씩 하나씩 제가 믿는 예수님에 대한 소개가 전해질 때마다 복음의 소식들이 들려지기를 기도하는 맘으로 대화를 이어가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당연하게 들려오고 받아들여지던 복음의 소식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하지 않는 소식이요, 환경이었다는 것을 너무나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동료들과 추수감사절기와 성탄절기의 행사들을 함께 준비하는 것은 참 흥분되고 설레는 일입니다. 추수감사의 진정한 의미와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대화의 기회가 있을 때 어떻게 전해줄 수 있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기도 하지요.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들을 많이 해 봅니다. 종교의 행위와 열심으로는 도저히 그 동료들의 모습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종교행위를 하는 그들을 보며 하나님께 보이는 제 모습이 오히려 부끄럽기도 하고, 열심의 모습이 도전되기도 합니다. 나보다 더 열심히 정결하게 살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거룩과 죄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 해 보았습니다.
거룩은 죄로부터의 구별됨이라고 보통 이야기하는데, 은혜를 상실한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불신자 보다 더 악하기도 하고, 교회 안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더 추한 모습도 많은 것이 사실인지라 우리의 현실과 자아를 볼 때면 거룩이 우리 삶에 어느 만큼 실현될 수 있을까 하는 진지한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입니다.
예전에 다니던 광고 회사에서 나가지 않은 광고를 날짜를 바꾸어서 한주 더 나간 것으로 서류를 작성하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업주는 한주에 대한 광고비를 더 지불할 테고, 회사는 중간에 착오가 있어서 손해를 보더라고 광고비를 돌려주어야 하지만 날짜 변경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그 상황을 바꾸고 있었지요. 제 손으로 조작을 하고 싶지 않아 그것을 보고 그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교회 안에 형편이 너무 어려우신 성도님 한 분이 문서의 숫자 변경을 도와달라고 요청하시더군요. 그 가정의 형편을 아는지라 그렇게라도 해서 보조를 받을 수 있는 도움을 드려야 하는지, 아니면 상처받더라도 하지 마시라고 따끔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사모인 내게 이런 부탁을 하실까 싶으면서도, 다른 곳에는 도저히 부탁할 수 없어 내게라도 가져오셨겠지 하는 두 가지 마음이 제 속에서 공존하는 것을 보았지요. 삶의 한가운데에서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이고, 어떻게 거룩을 이루어 가야 하는지 치열하게 몸부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 앞에 개인적으로 나아가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거룩하지 않은 내 속의 자아들과 대면합니다. 부끄럽고 눈물 나는 나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께서 고요하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게 되지요. “똥 냄새나고, 오물 천지인 말구유 더러운 마구간에 내가 온 이유가 바로 그거야. 거룩하지 못한 죄 된 자아 속에, 상처투성이인 가정과 교회 안에, 죄로 물든 사회와 이 땅 안에, 바로 그 한가운데 거룩한 예수님이 오신 이유….”
거룩하지 못하기에, 상처와 죄로 얼룩진 우리이기에, 그 현실 속에 살아가는 연약한 우리이기에 행위로는 도저히 이를 수 없기에 이 땅에 직접 오신 예수님. 오늘도 그분을 바라봄으로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거룩을 향해 한 걸음 또 나아가 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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