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눈을 떠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느 날 하루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시다가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사람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그 맹인에게 다가가 ‘보지 못하게 된 이유가 자신의 죄 때문인지 부모의 죄 때문인지’를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서 흙을 이겨 내시고 바로 그것을 맹인의 눈에 발라주셨습니다. 그리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맹인은 순종하여 실로암까지 가서 그의 눈을 씻었습니다. 순간 그의 눈이 떠지고 그는 보게 되었습니다.
보인다고 해서 다 보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가 영적인 맹인일 수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보고는 있는데 보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믿음 안에서 해야 할 일들을 알고 있고 또 해야 하는데 마치 안 보이는 것처럼 눈을 감아버리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많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결국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 맹인이 눈에 붙은 진흙을 씻고 눈을 뜬 장소가 ‘실로암’입니다. 그런데 그 뜻이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라 합니다. 즉 이 실로암이 바로 예수님을 의미하는 곳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침 발린 진흙’, 이 맹인이 보지 못하는 죄와 사망을 씻어 줄 수 있는 곳, 그래서 하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소망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예수님이 계신 곳이고 거기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소이고 그래서 생수 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그곳까지 가야지만 우리의 근본적인 죄의 문제, 신앙의 문제, 그리고 믿음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눈은 뜨고 있으나 영적인 맹인과도 같은 우리의 모습,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까지는 우리가 그리 잘못된 인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을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도 성실히, 착하게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때로는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선하게 살고, 이웃들에게 베풀고, 그렇게 인정받으며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곰곰이 그리고 심각하게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정말 그렇게 잘 살아왔는지? 아니 “내 인생은 성공적인 인생이었습니다” 하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들리는 것이 전부이고, 물질이 평가의 기준이 되는 아니 전부가 되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매 순간 자신이 영적인 맹인임을 아는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마치 맹인의 모습처럼, 늘 예배당 앞에 앉아 있다고 해서, 또 예배의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다 주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비록 어렵고 힘든 인생의 여정이라 할지라도, 또 때로는 험난한 길을 가야 하고, 때로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의 비웃음 소리도 참아야 하고, 하지만 주님을 진정으로 만나서 씻기만 하면 소망을 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실로암까지 가야만 합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손해를 보더라도, 넘어지고, 얻어터져도, 우리는 실로암까지 가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의 여정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곳……
2020년의 새해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작년 2019년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는 모습으로 새해를 맞이한다면, 우리들에게는 정말 소망이 없는 겁니다. 아무런 영적 변화 없이 2020년의 새해를 산다면, 우리는 그저 죽음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그런 인생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바라기는 언제까지 영적인 맹인으로 살아가시겠습니까? 이제는 정말 눈을 떠야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