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안경 그리고 겸손의 안목

일곱 살 때 일로 기억합니다. 당시 흑백 티비는 꺼질 때 화면이 사라짐과 동시에 브라운 관 중앙에 하얀 점 같은 것이 잠시 맺혔다가 완전히 꺼졌습니다.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 갔었는데, 그 친구가 티비를 껐다 켰다 하면서 화면에 맺히는 그 하얀 점에 눈을 바짝 대고는 사시 눈을 하고는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제가 뭐 하는 거냐고 이유를 묻자, 친구 왈, “응, 안경 쓰려고…”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친구가 안경을 쓰는 게 멋있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저도 호기심에 잠시 흉내 내어 보았지만, 안경을 쓰기도 전에 눈이 빠져버릴 것 같아서 곧장 포기해버렸습니다.
글감을 찾기 위해 안경의 역사를 뒤적거리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글을 읽기 전까지 자신이 원시안(far-sightedness, 멀리 있는 )인지 모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아래의 그림은 1342년 이탈리의 화가, 토마소 모데나 (Tommaso da Modena)의 작품입니다.
‘핀치 노우즈’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코걸이 식 안경을 낀 수도사가 책을 필사하고 있는 이 그림은 안경이 등장하는 세계 최초의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안경의 유래가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로마제국 시대, 네로 황제는 에메랄드를 세공해서 눈앞에 갖다 대어서 눈부신 직사광선을 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력 보조 혹은 교정용 안경은, 13세기 이전에 이탈리아에서 발명되었다는 점 외에는 그 유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13-14세기 당시, 안경은 그림에서처럼 희미한 촛불 아래에서 글을 읽어야 했던 수도사들 사이에서 애용되던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들 외에 일반 서민들은, 문맹률이 높았던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상생활에서 작은 글씨로 뒤덮인 종이 뭉치(책)를 접할 기회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안경을 쓸 일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당시 상당히 많은 유럽 인구가 원시안이었다고 합니다(Jonson Steven, “How We Got to Now”).멀리 있는 사물은 잘 볼 수 있는 반면, 가까이 있는 사물은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원시안인 줄 모른 채 살았다고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책의 글자처럼 작은 크기의 물건은 별로 없었으므로, 가까이 있는 물건들을 식별하는 데에 어려움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글을 읽을 기회도 전무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편함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1440년대, 독일의 금 세공업자였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해서 책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하자 이야기는 달라졌습니다. 더군다나 종교개혁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금속활자로 대량으로 찍어 낸 성경이 보급되고 신앙적 열심과 함께 성경을 탐독하면서 문맹률은 급속하게 개선되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이야기(구전)를 통하지 않고도 지식이라는 것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적의 보급은 인류의 인지 혁명을 보다 광범위하게 퍼뜨리고 공유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유발 하라리, “호모 사피엔스”).
재미있는 사실은, 서적의 보급과 동시에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시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후 100년 동안 책만큼이나 많이 만들어 지고 팔린 것이 바로 안경이었습니다.
눈이 열리게 되어 글을 읽게 된 사람들은 자신의 시력의 한계를 느끼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지식을 쌓게 되자 그것이 비록 육체적인 것이긴 하나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된 것이지요.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는 옛말이 있듯이 지식이며, 인생의 연륜이 쌓여갈수록 겸손함의 안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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