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세요? 제대로된 드라마로 인기 끌려면

요즘 한국 드라마가 침체기다. 시청률이 바닥이고, 그 드라마 봐야해라고 회자되는 게 단 하나도 없다. 여러 이유가 제기된다. 전체적으로 드라마들이 한쪽으로 치우친 내용들로 편성됐다는 평을 듣는다. 자유롭고 감각적인 구성보다 메시지를 담아야 하고 또 감동을 인위적으로 이끌어내려는 선전적인 짐을 지고 있는 듯 해 거슬린다. 방송국들 시청률 영향도 있을 것이다. 정부 응원단처럼 여겨지는 방송국 중에는 광고 매출이 어린이 한 명의 유튜브 광고액 수준으로 추락했다니 그 여파가 드라마에 없을 리 없다.

그나마 호성적을 올리고 최근 종영한 드라마는 시리즈물이어서 뜻밖이었다. 검법남녀라는 이 드라마는 법의학자와 여성 검사가 범죄 사건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야기다. 더구나 속편은 안된다는 징크스마저 깨고 선전했다. 특히 주인공 남성 법의학자는 깐깐하고 까칠한 실력파 ‘외골수’로 그려져 신선한 인기를 끌었다. 대충 넘어가도 될 사체 검안에서 그는 단 하나의 단서도 놓치지 않기 위해, 사체 내장을 직접 맛보기까지 한다. 그런 그가 남긴 명언이 있다. 대충 결론을 내리려는 동료들에게 “소설 쓰지마”가 그거였다. 경험이나 지식 좀 있다고 나서서 ‘이건 이렇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는 핀잔을 준다. “소설 쓰세요?”

삶과 현실이 험하고 답답할수록 곳곳에서 소설로 이겨내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판타지에 빠져서 그것으로 위로받고 또 그렇게 믿고 하나돼 달려간다. 현실의 따가움에 모든 걸 당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몸부림일 수 있다. 작금의 반일 분위기로 휩싸인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국토를 강점하고 자유를 억압하던 침략자들이 이제 경제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침략적 행태에 지금이라도 보란 듯이 복수하려면 미래를 가정하는 ‘판타지적 소설’만큼 힘이 되는 게 없을 것이다. 가령,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자제, 그리고 평화 경제로 대응하면 결국 더 손해 보는 건 일본이고, 그 여파로 일본이 먼저 망할 것이라는 환상이다. 생각만 해도 짜릿한 픽션이다.

이런 소설을 정치가들이 먼저 제공하는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집권당에서 ‘일본 패망론’을 거론하며 “2차 대전 때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 코털을 건드렸던 일본이 이번엔 한국을 자극했다가 두 번째 패망을 맞게 되고, 일본 총리도 한국에 사과한다”는 시나리오다. 현 시점에서는 무조건 환영받는 내용이긴 하지만, 그러나 이는 여전히 소설일 뿐이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그 어느 때보다 장문의 글로 화답한 것도 이런 시대적 흐름의 증거다. 경축사에 여러 ‘저항’ 시인들의 시를 인용한 것 또한 드문 일이었다. 그만큼 현실을 이겨내게 결의를 주고 위로하려면 필요한 스타일의 연설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 그리고 신념을 갖게해주려면 소설이든, 시든, 최상의 기법을 도입해야 할 판이어서다.

우려되는 건 이 소설 쓰기에서 비슷한 사람들만 모여서 쓴다는 점이다. 획일화된 목표와 성향으로 구성된 조합에서는 언제나 똑같은 내용과 주제, 흐름이 나오게 된다. 그러면 인기없는 드라마들처럼 흥미를 끄는데 실패하고 식상하다는 평을 받을 수 있다.

토론토대 경영대학원에서 연구한 미국 저자들의 책 ‘최고의 리더는 반드시 답을 찾는다’에서도 이 점이 지적된다. “리더는 자신과 경력과 인맥이 비슷하거나 직종이 동일한 사람들의 조언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안된다”고 조언한다. 사람들이 저마다 세상을 다르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다양한 관점을 통해 단순화와 편향을 개선해나가라는 것.

찰스 콜슨이라는 지성인이 쓴 ‘바람 쐬고 오면 괜찮아질 거야’에서도 힌트를 얻는다. 감옥을 다녀온 체험을 하고나서 철저한 변화를 이룬 저자는 “자신의 죄성을 대면한 지성의 진정한 변화가 새 시대를 열 수 있다”고 말한다. 남에게는 예리하게 비판하고 선고하는 독종 검사이면서 막상 자신의 잘못에 대해선 자기변명과 합리화로 사건을 신속히 무마시켜 버리는 유능한 변호사가 되지 말라고 그는 지적한다.

성경 속 다윗이 선지자 나단을 통해 자신이 지은 죄를 지적당했을 때, 그 순간 통회의 고백과 함께 뼈아픈 회개를 했듯이 한 나라와 사회, 조직의 지도자라면 잘못을 지적당했을 때, 자신을 바로 점검하고 이를 수용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원로 문학평론가가 “삶의 곡절을 많이 겪었다고 해서 각별한 지혜가 생기는 건 아니다”고 겸손히 말했다. 깨달음이 있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지금 소설 써요?” 그런 핀잔을 안 받으려면 말이다.

<이준열 뉴스코리아 편집국장 |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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