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멈춰선 시간 표현한 평화의 시계탑”

6.25 제70주년 기념식서 유 회장 “전쟁을 되새기는 목적은 평화 실현 위해서다”

달라스한인회가 지난 25일(목) 오전 11시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KSD 달라스한인회’ 유튜브 방송을 통해 ‘6.25전쟁 70주념 기념식’을 개최했다.
기념식은 11시 정각에 김성한 달라스한인회 수석부회장의 사회로 시작됐다.
국기에 대한 경례 후 애국가 1절을 제창했다. 순국 선열 호국영령 및 전몰 유엔군 장병들을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가진 후 문재인 대통령의 영상 기념사를 시청했다.

홍성래 달라스 영사출장소장이 6.25 7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를 시청한 후 홍성래 출장소장은 기념사에서 “오늘은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던 6.25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쟁이 남긴 상처와 교훈을 되새기며 호국영령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
6.25 전쟁은 400만 여명의 부상자와 1천만 이산 가족을 만들었다.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분단이 계속되고 있다.
며칠전 북한은 개성공당 연락사무소를 폭파해 남북 대화를 후퇴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길로 나가야 한다. 성숙한 민주주의와 미래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인동포들도 든든한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버팀목이 되 달라”고 말했다.
유석찬 한인회장은 “용산에 평화의 시계탑이 있다. 두 소녀가 쌍둥이 시계를 안고 있는 조형물이다. 시계는 전쟁이 발발한 6.25 새벽 4시에 멈춰져 있다”고 말했다.

“6.25 전쟁은 틀림없이 북한이 준비하고 남침한 전쟁이다”

오병하 6.25국가유공자회 회장 “1950년 6월 15일 새벽 4시 북한 인민군 19만 8천명 전차 242대 앞세우고 삼팔선을 넘어 남침했다”

“전쟁은 사람의 심성을 비틀기도 한다. 전쟁을 되새기는 궁극적인 목적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전쟁 기념관 평화의 시계탑 밑에는 통일을 갈망하는 시계가 있다. 통일의 그날이 오면 이 시계는 평화의 시계탑에 올라 갈 것이다.
통일이 되는 그날을 기다린다. 통일을 향한 역사적인 걸음에 후퇴는 있을 수 없다. 통일로 들어가는 문을 함께 열어 주기 바란다.
여러분들의 힘이 평화와 통일을 만드는 힘이 될것으로 생각한다”고 유 회장은 강조했다.

오병하 달라스 6.25국가유공자회 회장이 6.25 7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오병하 6.25 국가유공자회 회장은 “유튜브 6.25 기념식을 위해 수고한 유석찬 한인회장, 홍성래 출장소장과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6.25전쟁 발발 70주년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전쟁의 참화를 이겨내려는 노력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뤄냈다.
6.25전쟁에서 희생된 한국군 13만 8천명, 미군 3만 6천명, 유엔군 2만2천명 영령들의 넋을 기린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조국의 분단상황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남북 통일의 미래는 안개속이다.
일제식민지에서 창씨개명까지 강요받았다.
1945년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 승리해 한국은 일제로부터 해방됐다.
이후 미 군정 통치 3년간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대립이 심했다. 남로당의 총책 공산주의자 박헌영은 김일성과 의기투합하여 전쟁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승만 박사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에게 많은 반공교육을 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군사6위, 경제 10위다.
우리는 당당히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요즘 한국에서 또 다시 사대주의로 주변국들의 도움을 모색하고 있어 안타깝다.
1950년 새벽 4시 인민군 19만 8천명이 전차 242대를 앞세우고 삼팔선을 넘어 남침해 낙동강 까지 진격했다.
피아간의 희생자가 530만에 달하고 수 없는 양민이 학살됐다”고 6.25의 북한 남침을 증언했다.
오 회장은 “휴전 후 김일성은 박헌영을 처형하고 3대 세습 체제를 구축했다. 핵무기를 개발해 남한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김정은은 핵을 포기하지 않고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고자 한다. 북한은 6.25 남침 전쟁에 대해 사과를 한 적이 없다.
6.25 전쟁중 온 국민은 기아 상태에서 구호물자를 먹고 연명했다. 그 당시 식량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뿐이었다.
당시 한국민을 위해 식량을 제공해준 미국에 감사드린다.
일제때 우리는 일본인들에게 멸시됐으나 지금은 미국인들로부터 인격적으로 동등한 사람 대접을 받고 있는데 도움을 준 미국인들에게 젊은이들은 미 대사관에서 양키 고홈을 외치고 있다. 필리핀 경제는 미군 기지 철수 이후 몰락했다”고 말했다.
“우리의 혈맹국인 미국에 대해 반미 농성을 하는 사람들 중 그 가족들이 미국에서 거주하거나 유학하고 있다. 교활한 사람들이다. 젊은이들은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한다. 공산주의는 감엄이설로 젊은이들을 유혹하나 북한 사람들은 옥수수죽을 먹고 연명한다. 6.25 때 북한의 잔인하고 치욕적인 만행에 1천여만명의 실향민들이 이남으로 피난왔다.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기본 인권과 자유다. 5.16혁명 이후 우리는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고 ‘잘 살아보세’ 를 구호로 노력해왔다.
공단에서 일하며 번 수입으로 동생을 공부시키고 100억불 수출을 달성했다.
독일로 가서 석탄 광부와 시체 닦는 간호사 일로 본국으로 송금했다. 한국군은 월남전에 파견돼 5099명이 사망했다.
직업에 귀천없이 일해 가난을 극복하려 했다. 우리 세대에서 한민족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보릿고개를 극복했다. 우리는 밥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밥먹었니 하는 인사를 했다.
우리 세대는 그 시절에 참혹한 생활을 했다. 지금은 제2의 전쟁이 나지 않도록 노력하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우리 노병은 통일돼 백두산에 태극기가 휘날리기를 바란다”고 오 회장은 희망했다.
코로나19의 상황에서 달라스 6.25국가유공자회 회원들은 어떻게 지내나는 질문에 오 회장은 “한인회장이 준 마스크를 각 전우들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오늘은 동영상으로 6.25행사를 한다고 전했다”고 답했다.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은 많은 사람들이 6.25 동란이라고 하는데 6.25전쟁이다.
북한 김일성이 틀림없이 남침을 했다. 우리 집이 황해도 연안인데 38선이 30리 거리다. 1950년 6월 25일 6.25가 발발하는 그 날 5시30분에 인민군이 우리 동네에 들어왔다”고 오 회장은 증거를 제시했다.

조현만 기자 press@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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