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통 달라스협의회 오원성 수석부회장 “대통령상 표창”

한반도 평화 및 지역 동포사회 기여, ‘봉사’와 ‘성실’의 대표적 인물 “합당한 상” … 애국자 가문 가족들 “다같이 감사”

민주평통사무처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자문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애쓰며 봉사한 사람을 엄선해, 그 공로로 매년 대통령상을 시상하고 있다.
2020년 1월 14일(화) 열린 민주평통 달라스협의회 신년회에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 앞장선 자랑스러운 인물’에 오원성 수석부회장이 선정돼 대통령상을 받았다.
오원성 수석부회장을 기억하는 많은 동포들은 유석찬 회장의 손과 발이 돼 달라스 역사에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고 평가한다.
달라스 코리안 페스티벌은 미주 최대의 한인축제가 돼 주류사회에 우뚝 섰고, 13만 지역 한인동포들의 편의 제고 및 권익 신장을 위해 2년여에 걸쳐 실시한 서명운동에 15,724명이 참여한 엄청난 숫자의 서명지를 들고 외교부와 국회를 방문해 청원하는 노력으로 동포들의 안전을 담당하는 영사가 1명 보강되기도 했다.
또한 포항 지진피해 현장에서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기 위해 독도를 향하는 배 앞에서 ‘독도수호 결의문을 낭독’한 것은 물론, 달라스에 독도박물관 해외 1호 및 독도 실시간 영상관을 개관과 정치력 신장을 위한 풀뿌리 운동 등,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업적에 동참했다.
그는 인권운동에 앞장서며 머지않아 ‘평화의 소녀상’도 설치해 2세들에게 아픈 역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체험의 학습장도 마련할 예정이다.
그동안 달라스 한인사회에 봉사하며 한반도 통일을 위해 헌신한 노고를 인정받아 공동체의 가치와 모범을 대변하는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에 모두 존경과 축하를 보내는 것이 그 증거라 하겠다.
‘봉사’의 화신 오원성. 그가 뉴스코리아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3년 가을 ‘이민유학수기’ 공모에 당선되면서였으니, 벌써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동안 사업적으로 규모가 커졌고 한인동포를 위한 봉사로 많은 일들을 하면서도 본지에 꾸준히 에세이를 기고해 왔다.
특히 그의 다섯 번째 에세이집 ‘이민자의 거리에 물든 단풍’은, 달라스 한인회와 민주평통 달라스협의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쓴 작품들이 대부분으로, 달라스 한인사회의 역사적, 다큐멘터리적 가치가 있는 값진 유산으로 판단돼 뉴스코리아 단독으로 출판했고, 2019년 4월 17일에는 동포들을 초대해 출판기념회를 성대하게 가진 바 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한인사회의 리더로, 칼럼리스트로, 성실함을 대변해온 그가 대통령상을 받았기에 그 남다른 소감을 들어봤다

◎ 대통령상을 받은 소감은?
“우리나라 속담에 ‘찬물도 상이라면 좋다’란 말이 있지 않은가? 세상에 태어나 68년을 열심히 살아온 발자취에 대한 ‘오원성 일생의 랜드마크’ 같은 상징이 있어 참으로 기쁘다.
가문을 빛낸 영광으로 하늘에 계신 작고한 아버님께서 제일 감동하실 것 같다.
우리 가족들 또한 가장인 내가 대한민국 최고통치자가 주는 예우로 상을 받은 것에 대해 상당히 자부심을 느끼리라 믿는다.”

◎ 함께 했던 분들에게도 한마디 한다면.
“지금껏 물심양면으로 수고하시며 달라스 한인동포들을 화합의 장으로 이끌어 오신 유석찬 회장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수년 전 제 손을 잡고 “함께 봉사하자!”며 이끌어 주셨기에 동포사회의 편의제고와 권익향상, 평화증진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또한 함께 동행하며 격려와 협조를 아끼지 않으신 동포 여러분과 열심히 보도해 주신 언론사에도 고맙다는 인사 올린다.
그리고 제가 한인 사회에 나와 봉사를 하는 시간에, 때로는 밤늦도록 기다리며 응원해 준 사랑하는 아내 양현화 여사, 아들 정훈이와 정선이, 며느리 신혜진과 최지아, 손자 승리와 혜성이에게 이 상을 바치고 싶다.”

◎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유독 강한 것 같은데.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당연히 ‘아버지’이시다. 한마디로 국가관, 애국심이 투철하신 분이셨다. 80년 전인 1940년 12월, 일제 강점기에 아버지께서 큐우슈우 카이지마 탄광에 끌려 간 것은, 26세의 젊은 나이로 신혼의 단꿈을 꿔야 할 결혼 8개월만이었다. 하루 15시간씩 막장에서 두더지처럼 일하며 지친 몸에도 일본의 동화정책에 맞서 싸우려면 우리말과 글을 알아야 한다며 ‘교육독립운동’을 하셨다.
그러다 모진 고문을 받고 죽었다고 판단돼 쓰레기장에 버려졌는데 기적적으로 살아오신 강인한 정신력의 아버지였다. 또한 6.25 때는 30대 초반에 이장을 자처하고 나서서, 마을 분들을 안전하게 피난시키는 일을 주도하셨다.
아버지의 독립운동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들어 준 정신이자 혼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소장하고 있던 자료들은 6.25 때 인민군에게 끌려가다 극적으로 탈출하신 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아궁이에 태워 버리셨다는데, 6.25가 아니었다면 아버지께서는 분명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으셨을 것이다.”

◎ ‘봉사’를 최우선적 가치로 여기는데 이를 정의한다면.
“봉사의 가치가 빛나려면, 나보다는 공동체를 위해 도움을 줘야하고, 정직함과 선행, 배려와 헌신의 행동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 봉사가 인생에서 가장 큰 가치임을 믿고 실천한다면, 분명 한인동포들의 삶의 질은 향상돼질 것이다.”

◎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철이 들기도 전에 일찍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 비록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아버지께 효도를 다하고 싶어 봉사의 길로 나선 것이다.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사업장에 나가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쪼개어 봉사하는 일이 무척 벅차지만, ‘생전 아버지께서 하신 애국심과 인간사랑을 거울삼아, 비록 무거운 짐일지라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대통령상은 공동체에서 그 행실을 본받게 하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오늘의 영광을 계기로 다른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주인공으로 기억되고 싶다.
한인동포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새해 소망하시는 일마다 큰 성취를 이루시고, 가정에도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드린다.”

<정리=이준열 기자 | 사진=최미영·김미희>


가족의 축하 사진. 왼쪽부터 오정훈(큰아들), 양현화(아내), 오원성, 오승리(손자), 오혜성(손자), 신혜진(큰며느리), 최지아(둘째며느리), 오정선(둘째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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