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아픈 세상, 나와 남 살리는 마음 체력 쌓기

아내가 무섭다. 전 아내가 있었다면 더 무서울 뻔 했다. 한국 제주 전 남편 살해 사건의 충격 때문이다. 아무리 미워도 한 이불 덮고 살았던 남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바다와 쓰레기통에 버리다니. 우발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치밀하게 계획했던 정황이 드러난다. 전기톱으로 시신을 토막낸 것도, 신원확인이 안되게 시신 DNA 훼손한 것도 화학을 전공해서 그럴 수 있었다니 이건 공포 영화에나 나올 일이다.

검찰도 이례적으로 용의자 얼굴을 공개했다. 호송되면서 잠깐 보여진 그 얼굴을 놓고 네티즌들이 신상털기를 한다. 졸업 사진이라고 올리고, 이런 인상을 가진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도 한다.

흔한 유행가처럼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고도 했다. 남편, 아내됐다는 것만으로는 그 둘 사이에 그 어느 것도 보장되는 게 없는 현실이다. 우스갯소리를 하나 하자. 은퇴한 남편이 아내에게 하루 세끼 밥을 차려달라하면 ‘삼식이’ 소리를 듣는다. 일종의 욕이다. 그런데 종종 간식까지 요구하는 남편은 무슨 말을 들을까. ‘종간나새끼’란다. 이 말에 모두 허탈하게 웃는다.

5월 가정의 날에 부모의 날, 자녀의 날이 있는데 부부의 날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한국에 부부의 날이 있었다. 매년 5월 21일이 부부의 날로 제정된 게 2007년부터였다. 한국의 목사 부부가 청원을 시작해서 생긴 날로, ‘둘’이 ‘하나’가 된다는 뜻에서 ‘21’일로 했다는 사연도 있었다.

정말 부부는 둘이 하나가 되는 관계일까. 시인 문정희는 ‘남편’을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라고 썼다. 가깝다는 측면에서 시인은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라고 코믹하게 말한다. 바람 피게 되면 가장 먼저 자랑하고 상의하고 싶은 상대가 남편이라는 이 아이러니, 이 모호하고 애매하며 울다 웃을 관계가 부부라니.

그러나 시인은 결국 날선 무기를 내려놓는다.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하지만 이번 전 남편 살인 용의자는 남편에게만 분노를 가진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피해자 동생 말이 “착한 척 하다 집에서는 돌변하는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면 개인적 성격 문제도 있었다. 아이들 앞에서 칼 들고 너도 죽고 나도 죽자고 해서 충격받고 결국 피해자가 이혼을 선택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재혼에 방해될 것 같아 전 남편을 죽였다고 말하는 피의자를 보면 정신이 정상은 아니다.

사이코패스를 주변에서 알아보는 방법을 설명한 글이 있다. 살면서 사이코패스를 만날 확률이 그다지 적지 않다는 주장과 함께였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데, 범죄행위에 연루되지 않아서 모르는 것이지 그 성향을 품고 일상을 살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 심지어 직장 상사 25명 중 1명이 사이코패스일 수 있다는 말까지 한다.

이들의 특징은 조작, 동정심 부족, 무책임, 나르시시즘, 거짓말, 남 통제 욕구, 출중한 연기력, 강한 권력욕, 괴롭히기 등이다. 이쯤 되면 누군가가 생각난다는 게 문제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게 옳은데 말이다.

정신이 아픈 것이다. 이 때문에 평상심을 길러야 한다는 충고가 나온다. 평상심은 어떤 상황에도 휘둘리지 않고 일상을 지속해나가는 정신력이다. 불가(佛家)에서는 평상심이 곧 도(道)다. 허공이 탁 트인 경지라는데 어떤 감정이나 상황에도 휩쓸리지 않고 일상을 버티는 힘, 즉 마음의 체력을 쌓으라는 것이다.

살면서 분노와 욕심, 미움과 불안이라는 감정을 피해갈 수는 없다. 주변에 수많은 사이코패스 잠재자들이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내가 화나고 성나는 날은 누군가 내 발등을 질겅질겅 밟는다. 내가 위로받고 싶고 등을 기대고 싶은 날은 누군가 내 오른뺨과 왼뺨을 딱딱 때린다”고 고정희 시인이 쓴 이유다. 그러니 웬만큼 도 닦아선 평상심을 이룰 수 없다.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서 길을 찾아본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이준열 뉴스코리아 편집국장 |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