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도덕성, 목에 가시처럼 삼키기 두려워지면

결국은 도덕성으로 귀결된다고 봐야 한다. 정치인들의 최후도, 한 나라의 흥망성쇠도 그 도덕성이 얼마나 살아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잘 알려진 마이클 샌델 교수가 또 다른 저서 ‘왜 도덕인가’에서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나라는 도덕적 힘을 가진 나라”라고 한 이유일 것이다.

국가의 도덕성이 중요하다는 걸 제2차 세계대전에서 완전 패망한 일본이 보여줬다. 당시 초대 유엔 대표부 특명전권 일본대사였던 이가 “결국 우리는 전쟁에서 우월한 무기에 패배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정신적인 경쟁에서 좀 더 고귀한 사상에 패배했던 것이다. 진정으로 중요했던 것은 지식의 힘을 초월하는 도덕성이라는 문제였다”고 자백하지 않았나.

2020년 대선을 앞둔 미국 정계도 도덕성이 부각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도덕성 논란은 탄핵을 거론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상대방을 제거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같은 외국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증언이 나오는 걸 보면 그는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도덕적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미국은 재선 도전 대통령이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나라다. 지미 카터,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만 재선 도전에서 실패했을 뿐 대부분 승리했다.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자신의 지지층만 굳게 결집시켜도 선거는 승리할 것으로 믿는 그로서는 ‘가짜뉴스’라고 반박하면서 시간 끌어도 승산이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

더구나 민주당에서 경쟁력있는 후보가 치고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이 선두 그룹으로 좁혀졌지만 바이든은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의혹과 관련된 아들 문제, 샌더스는 건강 문제, 워런은 급진적인 정책 등으로 고전하고 있다.

결국 민주당에서 누가 나오든 트럼프의 적은 트럼프라는 말이 나온다. 탄핵 조사에 대한 대응이든, 시리아 철군으로 뒤흔들린 중동 정세든, 아니면 예상치 못한 어떤 사건이든, 트럼프의 승패는 트럼프 자신의 대응과 태도에서 갈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계속 제기될 수 있는 그의 도덕적 자질에 대한 우려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소한 덕목의 양심, 도덕성에 대해 사소한 대처가 대통령을 탄핵하고 선거를 뒤집을 정도로 큰 일이 될 수도 있어서다.

중국 성현은 “정치가는 마땅히 천하가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지, 천하 사람이 상식적이라 여길 수 없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상식에 벗어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천하가 그를 비중있게 대접해 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는 말도 함께다. 관윤자도 말했다. “작은 일을 가볍게 보지 말라. 작은 틈이 배를 가라앉힌다. 소인을 그저 보아넘겨서는 안 된다. 소인이 나라를 해친다.”

한국의 법무장관으로 인한 소요는 그 근본이 도덕성에 관한 ‘사소함’일 수 있다. 그들은 이념성에 기대어 그냥 넘어가도 될 덕목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도덕성은 정치가든 국민이든 삼켜버리기에는 두려운 ‘목에 가시’와 같다. 당장 내뱉지도, 삼키지도 못하고 잎에 물고 있을 순 있지만 그냥 삼키라고 강요 당하면 저항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결국 대통령이 사람을 잘못 본 것으로 인한 사태였다. 도덕적이지 못한 이를 끝까지 믿고 감싸며 끌고 가려다 가시걸린 국민들의 대대적 저항에 결국 무너진 것이다. 물론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이전 대통령이 사람을 잘못 보고 결국 탄핵에 감옥까지 가는 수모를 당한 것처럼, 현 대통령 역시 그 점에서 취약하다는 걸 확실히 보여줬다. 소위 ‘서울대 법대 나온 최순실’인 법무장관에 대해서는 돌아선 듯 하지만, 또 다른 ‘조국스러운’ 인물에 다시 눈이 돌아간다면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게 없는 셈이다.

트럼프는 도덕성에 대한 공격을 압도하겠다는 듯이 전투적인 전략을 비친다. 각료회의에서 “민주당은 사납지만 잘 뭉친다”며 공화당도 더 거칠어져서 맞서 싸워야 한다고 선동했다. 공화당 의원들이 트럼프 탄핵을 논의 중인 민주당 의원들 회의장을 난입해 방해하는데 성공한 이유다.

정치학자 로버트 케이건은 “트럼프가 미국을 바꾼 게 아니라 미국이 바뀌었기 때문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것이다”고 했다. 트럼프가 아니었다면 ‘바뀐 미국’은 지금보다 훨씬 덜 거칠고 덜 천박한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말도. 결국 도덕성의 나라로 남을 것이냐, 부도덕한 싸움꾼 나라로 남을 것인가, 그 문제다.

<이준열 뉴스코리아 편집국장 |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