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의 위안, 길러진 맷집으로 친구와 적을 알다

사면초가, 고립무원이라는 말이 이럴 때 들어맞는 표현이다. 사방에 적만 있는, 그래서 홀로 외롭게 싸우며 버티는 모습이다. 국제관계에서의 한국의 현 상황이 그렇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한국 영공까지 침범해 3시간이 넘게 휘젓고 다녔다. 경고사격을 했지만 잠깐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와 유유히 날다가 간 러시아 군용기를 보면 의도적인 도발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한국 영공 침범은 수시로 발생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했고. 또 국민에게 알리지조차 안하고 쉬쉬한 것이 이들 도발을 부채질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을 만만한 상대로 보고, 그 무력함을 확인하는 무력시위라는 것이다.

일본의 무역 보복으로 인한 피해를 보고 있던 한국으로서는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발길질’에 버둥거릴 수밖에 없는 형태다. 버둥거려도 와서 도와줄 우방 체재도 와해돼가는 상황이어서 불안감은 더 크다. 일본은 아예 이런 상황을 이용해 또 독도를 들먹거리고 있다. 머리를 얻어맞느라 정신없는 틈에 옆구리를 찔러서 제 이득을 챙겨보겠다는 식이다.

미국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이번 사태에 대해 “중·러의 영공 침범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대응을 지지한다”면서도 어느 나라 영공인지 밝히지 않았다. 우리 편만 들어주지는 않겠다는 처사다.

한국 대통령이 “한반도 정세의 운전대를 잡고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치하는 낡은 냉전 구도를 무너뜨리겠다”고 호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 상황은 누가 봐도 운전대가 아니라 차바퀴에 밟히고 치이고 끼어서 끌려가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낙관하는 북한과의 관계 역시 궤도를 이탈하는 게 뚜렷하다. 비핵화 평화 통일의 장밋빛에 도취돼 있는 한국에 보란 듯이 미사일을 자꾸 날리고 있다. 의도가 뭘까. ‘운전대’가 한국 손에 있지 않다는 경고일 것이다. 이미 북한은 “오지랖 넓은 촉진자, 중재자 행세를 그만하라”고 한국 정부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북의 신형 단거리 미사일 도발이 문 대통령 취임 2주년 때에 있었던 것도 같은 선상이다. 비핵화 협상은 미·북이 할 테니 ‘한국은 빠지라’라는 북한의 모욕에도 눈치만 살피며 쌀 지원을 하겠다고 했지만, 북은 그것마저 무시했다. 그런 ‘시시껄렁한 물물거래’로 ‘생색내기’를 하지 말라는 핀잔까지 받았다. 이 정도되면 국제사회에서의 위치는 최악의 사면초가다.

우리 영토에서 열강들끼리 세력 다툼을 벌이다 청일, 러일 전쟁이 터졌던 구한말 때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그 때처럼 주권이 군사 외교적으로 위협받는 현 상황에 대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과 같은 국제사회에서의 최약자로 전락한 듯한 모국에 대한 걱정은 해외 동포들도 마찬가지일 터.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것이 정치와 외교의 첫걸음일 것이다. 그리고 틈을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게 정글에서 살아남는 처세일 것이다. 국가들 간에도 자국 이기주의가 우선인 국제관계에서 의리나 선의를 기대하는 건 안일한 생각이다. 더구나 국가 내부적으로 자리 뺏기나 하면서 힘을 소진한다면 외부에서의 틈새 공격은 더 큰 발길질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맷집은 강해질 수 있다. 한국이 수백차례 외세 침략을 받는 환란을 거쳐 더 강해졌다고 말하는 것처럼.

한국 상황을 해외 동포의 하나로 바라보면서 안타까워하는 건 솔직히 이곳에서의 한인으로서 삶이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민자로서 느끼는 아픔이 때로는 동족간 훼방과 다툼, 경쟁심리의 폭력을 받아내면서 더 커진다. 한인들끼리도, 한인 사업체와 단체들끼리도 왜 서로 죽이고 피해를 주겠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인지.

몸담고 있는 신문사가 최근 사면초가의 형국을 당하고 있다. 죽이지 못해 안달난 외부 적들이 전면 공세를 취하고 있다. 앞만 보고 갈 길을 향해 열심히 달리면 되는 세상인 줄 알았는데, 옆에서 갑자기 쳐들어와 온갖 발길질을 해대니 당혹스럽다. 맞받아 응전하고 응징해야 하는 것일까. 그걸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데, 갈 길을 멈추고 뒤돌아 서 같이 맞상대질을 해야 하는 것인지 주춤거려진다.

그래도 맷집이 단단해져가고 있는 건 확실히 느낀다. 무단 공격들을 묵묵히 견뎌내고 목적지를 향해 헤쳐간다면 그 누구도 함부로 못할 근육의 맷집이 생기리라. 더구나 이런 상황을 통해 친구와 적이 누구인지도 확실히 구별된다. 그것도 감사하다. 후에 맷집을 사용해 대응할 때 똑바로 기억하게 해줘서다.

<이준열 뉴스코리아 편집국장 |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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