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걷어차기, 하향 평준화로 남는 건 뒷걸음질

전북 상산고의 자사고 지정 탈락이 연일 화제였다. 시위도 하고 탄원도 하고 온갖 힘을 썼지만 뜻을 못 이뤘다는 기사도 나왔다. 평가 점수 몇점이 모자라 탈락돼 더 아쉽고 억울했을 터다. 더구나 전북 교육감이 벼르고서 탈락시킨 것처럼 여겨져 더 그랬다.

상산고는 우연찮게 내 고향인 전주에서, 그것도 내가 살던 동네 근처에 세워진 학교다. 내 동생이 그곳에 다닐 때 막 세워진 학교라서 식구들은 우려를 했다. 나중에 자사고가 되면서 인기있는 학교가 됐지만 처음에는 무명의 학교여서 그곳에 추첨으로 다니게 된 걸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반면 내가 다닌 전주고는 유명했다. 당시 시험을 치고 들어갔고 일명 ‘뺑뺑이’로 불린 추첨으로 가지 않아서 더 유명했다. 당시 전국적으로 ‘평준화’가 이뤄져 학교간 변별력이 사라지던 때였는데, 전주고를 포함해 일부 고교들의 평준화는 5년간 미뤄졌다. 시험보고 들어가는 명문 학교로 남게 해준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전주고 57회’라고 말하면 아는 사람들은 ‘평준화 되기 전이겠네’라고 말한다. 내 다다음 학년부터 전주고도 평준화가 되긴 했지만, 그 전의 인기가 대단했던 게 기억에 남아 있다. 평준화가 돼버린 타 도시 학생들도 ‘유학’오는 현상이 발생해 경쟁도, 또 인재도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아마 고교 입시부터 치열하게 다퉈야 하는 아이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평준화를 통해 모든 학교가 다 똑같다는 인식을 심어주려한 것일 수 있다. 물론 그 평준화가 ‘하향 평준화’가 되곤 해서, 그 손해를 보지 않으려 사립고니, 명문고니 특별한 학교를 찾아다니게 만드는 후유증을 낳긴 했지만 말이다.
최근 한국 교육계에 다시 평준화 바람이 불어대고 있다. 외국어고나 자사고 등의 구별된 학교를 폐지하고 공립학교로 평준화하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 실제 많은 학교를 끌어내리는데 성공하고 있다.

문제는 이중적 태도다. 외국어고나 자사고 폐지를 밀어붙인 서울교육감은 두 아들을 외고에 보낸 사실이 드러나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양반 제도 폐지를 양반 출신이 주장할 때 더 설득력 있고 힘을 갖게 된다”고 반박했다가 더 큰 뭇매를 맞고 있다. 한마디로 나만 누릴테니 너희는 빠져라는 식이다.

조사 결과 한국 정부 주요 고위 공직자 자녀 상당수가 자율형사립고나 외국어고를 나왔거나 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특히 18개 정부 부처 장관 가운데 12명이 자녀를 유학 보냈거나 자사고, 외고, 강남 8학군의 학교에 보냈다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이들은 그간 자사고와 외고를 ‘귀족 학교’라고 비판해 왔고, 진보 교육감들은 자사고 지정을 무더기로 취소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본인 자녀들은 이런 학교를 다니게 한 것이다.

이를 ‘사다리 걷어차기’로 비유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들은 이미 올라갔으니 다른 사람들이 못 올라오게 사다리를 차버린다는 것이다. 교육의 획일화, 하향 평준화를 추진하면서도 자기들의 실력만 부각시키고 즐겨 보겠다는 이중적 태도는 분노를 부른다.

평등이란 말 자체는 좋다. 교육에서도 이 단어를 넣으면 만사통과다. 평등하게 교육받고 평등하게 잘 살고, 평등하게 누리자는 말에는 이의를 달 수 없어서다. 그러나 자신은 빠지고 남들만 하향 평준화로 평등을 ‘선물’하고, 자신은 더 우뚝 설 수 있는 기회를 독차지한다면 그 속내는 시커먼 것일 뿐이다.

최근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드러나는 안타까운 사실이 오버랩된다. 한국이 반도체를 만들 때 거의 100% 일본에 의존하는 소재 3개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해서 난리가 난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일본 의존도가 새삼 부각됐다. 의존도가 높은 이유는 일본산이 압도적으로 좋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물론 일본의 이런 행태에 일본 제품 불매운동 등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건 이해하지만, 내부적으로 우리가 이것들마저 일본을 뛰어넘어 의존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실력과 기술을 쌓아놓지 못한 걸 반성할 필요도 있다. 반도체 자체로 세계 최강, 최대를 이룬 한국이라 해도 그 소재는 일본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면 언제든 또 휘둘릴 수 있어서다.

평준화만 우기기 전에 더 특화되고 더 기술력 있는 특별한 인재들을 키워내는 교육 시스템을 유지하자는 말이다. 세계적 기술과 천재들의 경쟁력으로 미래를 바꿀 아이디어가 속속 탄생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만 사다리 걷어차기를 한다는 건 진짜 헛발질이다.

<이준열 뉴스코리아 편집국장 |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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