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붕괴, 촛불로 세웠으니 촛불로 막아낸다

사람간, 국가간 균열과 갈등은 오해와 편견, 고집으로 야기되는 게 많다. 시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서라는 말이다. 시인 로웰이 “바보와 죽은 사람만이 결코 자기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고 꼬집었지만 차라리 바보나 죽은 혼령이 될망정 내 고집과 입장을 바꾸지 않겠다고 하니 결국 균열은 발생하고 만다.

한일 군사정보호협정인 지소미아를 파기한데 대해 향후 한미 동맹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의 입장이 나왔지만, 그와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한국 정부 관리 중에는 “한일 공조가 깨졌으니 한미 공조를 더 돈독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고 순진하게 말하는 이도 있었는데, 트럼프 정부 관계자는 이를 정면 반박했다. “만일 지소미아가 한미 관계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분명히 동북아 안보 이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지적까지 했다.

실제 벌써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다. 처음엔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시했던 미국이 이제 ‘미국과 미군에 대한 위협’을 우려하면서 “한국의 독도 훈련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고, 지소미아 종료 시한인 오는 11월 22일 전에 한국이 생각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지소미아 파기를 외교적으로 적당히 설명하고 지나갈 수준의 단순한 문제로 여기는 한국 정부 시각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다 반미운동까지 초래될 수 있다.

지소미아 파기를 외교적, 군사적 ‘승리’로 고집스럽게 보는 이들은 이로써 동북아 안보를 더 생각하게 됐다느니, 한미 공조를 업그레이드 시키게 됐다느니 우겨대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돌아간다. ‘미국과 조율했다’는 청와대의 해명을 ‘거짓말’이라고 일축하고 “실망이다” “문 정부의 심각한 오해다” 등, 동맹 사이에 잘 쓰지 않는 표현을 쓰는 미국의 입장은 천양지차다. 금이 가기 시작한 이 한미 공조를 시급하게 보수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터다.

민주주의의 죽음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작금의 상황들 때문이다.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들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밝혀진 사실이 그런 우려를 더한다. 이 책은 전 세계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죽음 가운데 4분의 3이 쿠데타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군인이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의 손에서 죽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즉, 민주적 선거 절차를 거쳐 당선된 지도자가 권력을 잡은 뒤 그 민주주의를 해체시켜버리기도 한다는 뜻이다.

“민주주의의 붕괴는 투표장에서 일어난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가 미국의 민주주의 절차로 대통령이 됐지만 그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이 책의 의도지만, 우리도 새겨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 독단적이고 이념 편향의 고집불통 상태인 지도자가 나라를 개인 소유인 양 이끌고 있는 나라들의 공통적인 현상일 것이다. 사실 독재정권의 민주주의 전복 시도는 의회나 법원의 승인을 받았다는 점에서 합법적이고 명분의 목소리도 크다. 부패 척결을 내세워 은밀히 민주주의를 변질시켜가기 때문에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리더는 자신의 고집 일부를 양보하거나 타협해서라도 분열을 막고 통합적 방향으로 나라를 이끈다. 혼자서 나라를 다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라 해도 지도자가 막강한 권력으로 독단적으로 끌고 간다면 국민은 넘어질 것 같은 공포심을 갖는 게 당연하다.

‘자발적 복종’의 라 보에티의 지적이 그것이다. 독재자는 국민이 그에게 부여한 그 이상의 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국민이 그를 참고 견디는만큼 독재자는 그만큼의 해악을 저지른다는 것.

민주주의가 안팎의 소용돌이로 인해 서서히 붕괴되고 균열되는 게 감지되는데도 역사나 세상사를 공부한 지식인들이 고개를 파묻고 죽은 듯 살고 있다. 자크 아탈리는 “세상이 잠든 밤에도 깨어 있는 사람”을 지식인이라 했다는데 이들은 지금 입을 닫고 침묵한다. 그래서 황현은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다”고 했을 것이다.

지식만 가졌다고 지식인이 아니다. 어두운 밤에 외로이 촛불을 들 수 있어야 한다. 그나마 한국 지성인인 대학생들이 법무부장관 후보인 그들의 교수에 대해 ‘물러나라’를 외치며 촛불을 들고 있는 걸 보면서 아직 한국 민주주의는 죽지 않았다고 보기로 했다. <이준열 뉴스코리아 편집국장 |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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