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굽은 소나무… 눈보라, 절벽, 그리고 많이 굶었다

옛 속담 중 “등 굽은 못난 소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을 참 좋아했다. 정확한 뜻을 모른면서도 말 자체가 위로가 됐다. 어려서부터 왜소했던 내 자신에게 희망을 준 말이었다고나 할까. 잘났거나 뛰어나다고 생각치 못하면서 젊은 시기를 보낸 이들은 뭐라도 붙들어야 그 시절을 견딜 수 있는 법. 외모나 배경이 화려치 않은 나에게도 “참다보면 용도가 있을 것”이란 말로 이 속담을 희망으로 붙들어 견딘 셈이다.

실제 소나무들 가운데 곧고 잘 생긴 것들은 제일 먼저 잘려서 재목으로 쓰인다. 영양분을 잘 못 받았든지, 아니면 심한 바람에 치여서인지 이리저리 휘어져 키 작게 자란 것들은 쓸 수 없어 그대로 둔다. 그런데 그 나무가 나중에 그늘을 만들어주고 산을 물들이며 주변 풍광을 책임지는 거목으로 자리잡는다.

혜자가 장자에게 “줄기가 울퉁불퉁하고 가지도 비비 꼬인 오래된 나무가 있는데 참 쓸모가 없지 않느냐”고 물었다. 장자는 “너구리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쥐 잡아 먹으러 위아래로 뛰어 다니다 덫이나 그물에 걸려 죽지만, 시커먼 소는 쥐는 못 잡지만 하는 일은 하늘 구름처럼 크다”고 답한다. 그리고 “그 쓸모없어 보이는 나무를 들판에 심어 그 그늘 아래서 당신도 쉬면서 유유이 누워 자보라”고 주문한다. 세상 모든 사물은 나름대로 다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사람의 가치는 바로 제 자리에 맞는, 분수와 위치에 맞는 삶을 살 때 더 빛난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래를 좋아했다고 말하는 나이든 이는 나만이 아닐 것이다. 시인이 쓴 가사는 백미다.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는 나레이션은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 이 노래에도 나무 이야기는 있다. 3절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그루 나무되리.”

발명가의 대명사인 에디슨이 한 때 사업을 했다. 숱한 발명 중에 ‘노래하는 인형’이 있었다. 인형 안에 축소된 축음기를 넣은 발명품이다. 이를 대량으로 만들어 팔면 장사가 될 법 해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결과는 반대였다. 그는 이 사업으로 망했다. 녹음된 노래들이 무섭게 들렸고, 한번 들으려 할 때마다 태엽을 감아야하고, 또 쇳덩이를 속에 넣어서 무겁기만 해 아이들이 다 멀리했다. 이 사업을 접으면서 에디슨이 한 말이 있다. 발명가라는 일과 기업가라는 일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고.

자기에게 맞는 일이 있다는 말이다. 가장 잘 할 수 있어서 그로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명예도 별로 없고 돈을 엄청 벌게 해주지도 않는다는 생각에 유혹과 오만에 빠져 자기 자리와 분수를 넘어선 일을 도모하게 되면 ‘욕심의 에디슨’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이 막대한 예산을 쓸 수 있는 ‘인문정신문화진흥심의회’ 위원장 자리에 허위 학력 사칭으로 매장된 교수를 위촉해 논란이다. 정부 편 인사라 그런 결정을 했겠지만, 학사 학위뿐인데도 미국 대학 영문학 석사와 박사로 사칭하며 온갖 혜택과 이득을 취하다 발각된 이를 중대한 자리에 앉힌 건 너무했다.

그런 그의 논리를 빗댄 풍자글이 있다. “중요한 건 자네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냐가 아니라/ 남들이 자네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느냐야/ 진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짜라 해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해주느냐만 필요한 거라고/ 그렇게 하는 게 능력이야.”


이들은 가짜든 뭐든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만 신경쓴다. 또 남이 나를 더 좋게 봐주기를 바라면서 ‘나 이런 사람이야’를 과시하려 피곤하게 산다. 더 있어보이려, 더 자랑하면서 더 얻어보려고 사납게 뛰어든 길, 이 길에는 화려한 퍼레이드만 있는 게 아니다. 좌충우돌, 목표 지향적 허위성, 인간과 관계보다 성공과 돈만 먼저 생각하는 보폭, 결국 그 행보에 깔린 피해자들이 남게 된다. 보여주기식 행사로 길거리에 잔뜩 뿌려진 꽃종이 치워야 하는 일만 남는다.

조선 후기 하루가 멀다하고 대내외적으로 혼란이 가중되던 시절 이식 선생이 ‘송죽문답’을 썼다. “눈보라가 몰아쳐 산골에 가득해도/ 나는 강직히 머리 들고/ 부러지면 부러졌지 굽히지는 않는다네”라는 대나무 말에 “고고할수록 부러지기 쉬운지라/ 나는 청춘의 푸르름 고이 지킬 따름이라/ 머리 숙여 눈보라에 내 몸을 맡긴다오”라고 소나무가 답했다.

지금 어디일까. 대나무와 소나무 사이 어딘가의 모습으로 눈보라 심한 절벽에서 여전히 굶주린 표범처럼 헤매고 있는 것이라면 내가 꿈꾸는 그 소망이다.

<이준열 뉴스코리아 편집국장 |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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