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국민, 모두 섬기겠다던 말, 사슴이었어

요즘 한국 상황을 에둘러 꼬집느라 고전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논어에 나오는 말도 자주 인용된다.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큰 일을 하실 때 어떤 사람을 쓰겠냐고. 공자는 “나는 맨주먹으로 범을 때려잡고 맨몸으로 큰 강을 건너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사람과는 함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자로 포호빙하(暴虎馮河)다. 대신 큰일에 임할 때 두려워할 줄 알고 지혜를 모아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할 것이다고 공자는 덧붙였다. 임사이구(臨事而懼)하는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다.

큰소리 치며 호기를 부리는 것은 당장 인기를 끌 수는 있어도 신중한 자세보다 남는 게 없다. 이는 특히 정치나 외교에서 담아둬야 할 말이다.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다 온 조선 관리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 “눈이 작으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면서 왜적 침범 가능성을 비웃다 당했다. 또 당시 조선 최고의 장군은 왜군의 조총을 우습게 알고, 평지에서 기마 부대로 맞붙었다가 군대 8천명을 잃고 패배했다.

후금 황제 즉위식 때 주변국 사신 모두 절하며 예를 다했는데 조선 사신은 꼿꼿이 서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오랑캐한테 절 할 수 없다는 기개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몇 달 후 후금 왕이 이를 빌미로 조선 정벌에 나섰다. 그리고 조선 왕이 그 앞에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신하가 되겠다고 서약하는 굴욕을 당했다.

장관을 임명하고, 경제 정책과 외교적 결정을 하는데 있어 ‘큰소리’와 ‘오기’만 부릴 일이 아니다. 몇번 신중하게 따져보고, 아니다 싶으면 중간에라도 길을 돌려야 한다. 그 임사이구의 모습이 다소 없어보이고 못나 보이는 듯 해도 궁극적으로 살아남는 길이요, 오히려 이기는 길이 될 수 있다.

법무장관 임명으로 민심이 두동강 난 한국 사태를 진나라 환관 조고라는 인물로 비교하는 이들도 있다. 중국 최초 통일제국 진을 건설한 진시황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린 인물이다. 법에 해박해서 진시황의 총애를 받았고, 진시황 아들인 호해의 후견인 역할을 했다.

시황제가 죽자 조고는 내정된 후계자 태자 부소를 제거하기 위해 황제 유서를 위조한다. 위조 유서에 낙담한 부소는 자결하고 호해가 황제로 옹립된다. 그런 조고에게 새 황제는 하라는대로, 믿으라는대로 끌려다닌다. 조고가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했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여기서 나온다.

작금의 답답한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옛 관리의 상소가 있었다. “백성의 뜻이 안정되지 않음이 오늘날보다 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등급이 무너지고 품은 뜻은 들떠 제멋대로입니다. 사양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가 없고, 겸손한 뜻은 자취도 없습니다. 관리들은 모두 손을 놓고 있고, 욕심이 끝도 없어 염치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크고 작은 일이 엉망이 돼 마치 썩고 망가진 그물처럼 됩니다. 위로는 조정 백관부터 아래로 마을 이장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사람도 공정한 방법으로 얻는 자가 없고, 그런데도 관원들은 편안하게 놀면서 예삿일로 봅니다.”

이런 형국이니 이제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겠다고 포기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대통령은 법무장관을 안고서 끝까지 가겠다고 하니 좌절이다. 백성의 목소리는 듣지 않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물론 대통령은 믿는 바가 있다. 좌파 지지층 ‘40%’의 응집력만 있으면 승산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실제 ‘똘똘 뭉친 좌파 40%’는 ‘엉성한 우파 60%’를 이겨왔다. 그래서 국민 다수를 통합적으로 이끌고 가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40%의 결속을 믿고 가기로 한 것이다. 성난 민심을 거슬러 법무장관 임명을 고집하고 그를 감싸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2년4개월 전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라고 했는데, 또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도 했는데, 지금은 다 헛말이 돼 버렸다. 지록위마의 간사한 혀에 눈과 귀가 멀어버린 듯하니 이제 무슨 말을 고한다 한들 소용있을까.

국민 분열과 국론 대결로 나라가 만신창이가 돼도 “우리끼리 20년” 정권 잡으면 된다는 신기루만 쫓는데 말이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에 선 루이 16세가 사형에 환호하는 군중을 둘러보며 한 말을 상기시키는 사람도 있다. “짐의 국민은 어디 있느냐.”

<이준열 뉴스코리아 편집국장 |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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