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신화, 자기 눈의 들보 감추고 사는 허구

대학에서의 전공 때문에 미국 대학원에서는 아시아학 관련 공부를 했다. 당시 미국은 한국과 북한 정권 지도자에 관심이 많았다. 박정희와 김일성에 대한 비교 연구하는 학자도 적지 않았다. 물론 좋은 면을 부각시킨 연구도 있었지만 비판적 시각의 책도 없지 않았다.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박정희에 대해서 친일 논란을 언급한 학자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김정일에 대한 ‘왜곡된 신화’ 관련 지적도 적지 않았다. 북한에서야 ‘민족의 태양’으로 전지전능한 신처럼 우상화된 탄생 및 업적이 일반화됐지만, 그가 원래 마적대의 김성주였는데 김일성 장군으로 둔갑해 나타난 뒤 다른 이들의 업적을 훔쳐서 군중의 인기를 얻었다는 학자도 있었다. 양민을 상대로 강도 짓 하던 이를 스탈린이 발탁해 위조된 신분으로 항일운동의 장군처럼 재탄생시켰다는 것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집권하거나 크게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탄생과 업적을 신화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국가와 민족마다 자긍심을 높이고자 만들어낸 신화 중에는 딱 봐도 허구일 것 같은 게 적지 않다. 그런 말이 안될 것 같은 신화에도 우리는 그저 웃는 정도로 받아들인다. 이제 죽은 인물일 뿐인데 굳이 따져서 흠집 낼 게 뭐냐는 합리화도 있다.

‘오자병법’ 도국(圖國)편에 “천하가 싸움에 휩쓸렸을 때 5번 이긴 자는 화를 못 면하고, 4번 이긴 자는 그 폐단으로 오히려 약해지고, 3번 이긴 자는 잠시 패권을 잡고, 2번 이긴 자는 왕이 되며, 단 한번 이긴 자가 황제가 된다”는 말이 있다. 자잘하게 이기는 것보다 한방에 제압해 이겨야 후환없이 왕도 되고 천하 제일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이기면 자신의 탄생과 업적을 제멋대로 만들어 주입시킨다 한들 누가 뭐라 하겠느냐고 정권자들은 욕심을 품기 마련이다.

중국서 ‘대학’은 통치자와 정치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책으로 유명하다. 특히 지도자의 ‘일신(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에 대한 지적이 많다. 매일 새로워져야 한다는 말인데 사실은 지도자에 대한 요구 사항이다. 지도자가 된 사람은 백성의 진정한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책 이론을 끊임없이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미 지도자가 된 사람은 자신의 지배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목표가 우선이 되기 때문에 피지배자인 백성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백성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백성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지도자만이 백성들에게 필요한 참신한 정책을 끊임없이 제공할 수 있을텐데, 자신의 권력 유지만 내세우는 수준이 되면 결국 언젠가 그 자리마저 인정 못받고 힘들어질 수 있다는 충고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이 눈앞인 상태에서 민주당의 싱크탱크 연구원이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따른 한·일 갈등이 내년 총선에서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해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보냈다. 외교적 해법보다 반일 싸움이 득표에 도움이 된다며 그걸 권력 유지 선거에서 잘 활용해 보자는 말이다.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일본의 무역 보복까지 겹치고 있는데 집권당이 ‘일본과 싸우면 선거에 유리하다’는 계산만 하는 것이라면 대학의 충고가 필요하다.

집권자의 독재적 욕심과 권력에 대해 군중과 지성인도 책임져야할 부분이 있다. ‘자발적 복종’에서 라 보에티가 “가장 놀라운 점은 백성들이 폭정을 묵묵히 참고 견디고, 이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고 한 말이 현실에도 적용된다.

물론 진실을 알았다 해서 누구나 자신의 삶과 안위를 떨치고 일어나 진실을 바로 세우는 일에 동참하게 되는 건 아니다. 김일성이 김성주였다는 걸 배웠다고 해서 나 역시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되는 일이 아닐 때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다. 또 이 진실게임은 평생을 전력투구한다 할지라도 도달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포기의식에 그냥 덮고가는 이들도 있다. 그람시의 “지성의 명철함을 믿는다”는 낙관적 생각이 나약한 지성인들에게는 무기력하다.

한 나라의 집권자부터 작게는 지역에서 잘났다 등장해 자랑질이나 독선의 전횡을 휘두르는 걸 볼 때 이런 생각에 빠진다. “네 과거와 삶은 얼마나 깨끗하냐”는 말. 특히 남에 대해 부풀려 비난하고 죽이고자 발벗고 나서는 횡포를 볼 때 “제 눈에 있는 들보는 몰라라 하고 남의 눈 티만 들추다가 탈난다”하고 싶다가도 우선은 나부터 살피자며 일단 내려놓는다.

<이준열 뉴스코리아 편집국장 | 부사장>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