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계획이구나, 내 아이만 우선이고 최고 되라고

생각 안하려 해도 자꾸 영화 기생충의 대사가 떠오른다. 대학생 신분증을 위조하면서 백수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전 이게 위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장면이다. 아버지는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놀라는 장면도 함께다.

한국 법무장관 가족에 대한 수사와 집 압수 수색 에서 밝혀져 나오는 다양한 스펙 위조 정황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표창장이나 증명서 등을 위조하기 위해 총장 직인이든 사진이든 짤라서 합성해 위조한 것이 많다는데 이게 사실이면 기생충보다 더한 게 드러나는 셈이다. ‘위조 공장’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걸 보면 아예 경악스럽다.

부모의 위조 행각 의혹으로 인해 아들 딸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러자 엄마는 “평생 엄마에게 한 번도 대들어 본 적 없는 소문난 예의바르고 착한 애”라고 스물 세 살 아들을 감쌌고, “어제가 딸아이 생일인데 아들 소환 때문에 가족이 함께 식사도 못했다”며 “피눈물난다”는 말까지 올렸다. 물론 네티즌에 의해 이 피해자 코스프레 자체도 가짜라고 밝혀지는 중이지만, 엄마 말은 “괜한 조사로 우리 가족이 피해보고 있으니 앞으로 두고보자”는 선언같다.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한 사과나 양해는 애시당초 없다.

물론 자기 자식 귀하지 않은 사람 없다. 남들은 뭐래도 내 자식은 자기 눈에 가장 소중하고 예쁘지 않을 수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특히나 이 가족처럼 ‘우리 가족 최우선주의’로 똘똘 뭉친 집안일수록 더 그렇다. 대신 남들이나 다른 가족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없다. 나와 내 남편, 내 아내, 그리고 내 자식들만 중하다. 그걸 건드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용서가 안된다. 옳은 말, 긴한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라 해도 자기 식구에 대한 것이면 그 사람은 적이 되고 만다.

이런 ‘내 가족 중심, 내 자녀 최고, 내 식구만 챙기기, 우리만 중요’ 행태가 한국에서 뿌리깊어진 건 오래된 일이다. 미국에서 살다보니 한국에서 오는 지인들이나 한국 친지들 이야기에 그런 성향을 읽고서 난감해지기 시작한 게 꽤 오래돼서다. 한국 지인들에게 아이들 대학은 어디 갔느냐는 질문을 못한 지 오래됐다. 먼저 말하지 않으면 절대 물어보지 말라는 충고를 들은 다음부터였다. 정말 궁금하고 또 안부 차 물었다 해도 그게 일종의 공격이거나 아픈 데를 한번 더 찌르는 의도적 행위로 여겨지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나 역시 먼저 말하는 적이 없는데도 내 세 자녀 모두 아이비리그 대학 갔다는 사실까지 후에 알게 되면 더 나를 나쁘게 여겼다. 너는 좋다고 나 안된 것 건드리려고 물어본 것 아니냐는 오해다. 그래서 나도 절대 안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녀들 더 좋은 대학 보내려 위조니 부모의 거짓이니 그런 말 들으면 개인적으로 못 참겠는 이유는 내 아이들도 모두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원하는 대학에 갔기 때문이다. 저들 가족처럼 잘 나가는 금수저 부모 만나 ‘기생충’식 위조나 특혜를 받은 적 없이, 얼마나 힘들게 오랜 기간 공부하고 스펙쌓아 목표를 이뤄낸 걸 알기에 내가 참을 수 없다.

몇년 전 한국 가수의 스탠포드대 석사 학력 허위 논란이 강타했을 때도 참다 못해 글을 올렸다. 세 자녀를 미국에서 대학 보낸 아버지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너무 허무해지고 내 자녀들의 대학 입학 노력도 없는 집안이어서 한 괜한 생고생이었나 싶어 한마디 했다. 그렇게 해서 절대 그 대학에 갈 수 없다는 걸 나는 안다, 만약 갔다면 뭔가 뒷 비리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해버렸다.

실제 경험해보고 그 길을 걸어본 사람 앞에서 거짓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도 감추고 협박하고 억지 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남의 말 들을 준비가 안된, 자기 가족만 우선이라는 생각이 그리 쉽게 무너질 리도 없으니 말이다.

미국 정신과 의사가 쓴 ‘거짓의 사람들’에서 나온 말을 해주고 싶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고 오히려 자신은 완벽한 인간의 표본이라고 믿으며 다른 사람들에게서 끊임없이 악을 찾아내는 그들, 그런데 그들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자신의 양심을 직시하는 고통 하나뿐이다. 그러나 병적인 자아를 지키기 위해 희생양을 찾아내 스스로 죄책감의 고통을 깨끗이 거부한다. 따라서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다.”

한국 소식에 타향에서 자녀 교육 잘 시키는 목표로 고생한 내 모습이 처량하게 오버랩된다. 카뮈의 ‘페스트’에 나온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죠”도 떠오르니, 한국에 한번 갔다오라는 뜻인가.

<이준열 뉴스코리아 편집국장 |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