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미완성의 삶에서 예술의 완성을 이루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뜨거운 열기에 숨이 턱턱 막히던 여름이 어느덧 가고 가을이 오는듯하다. 소나기가 내리고 선선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정신없이 달려왔던 2019년을 돌아보며,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미완성 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완성적인 삶을 살다 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한 일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미완성이라서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미완성의 삶이지만, 완성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남기고 간 슈베르트. 길지도 않은 그의 삶 동안 슈베르트는 가난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슬픈 이별, 죽음이라는 춥고 긴 여행을 혼자 고독하게 걸어왔다. 하지만 그가 이 세상에 남겨놓은 곡들은 어둠을 비추는 찬란한 빛과 같았다.
슈베르트는 31살이라는 짧은 생을 살면서 일천여 곡에 달하는 작품을 썼다. 지금까지도 그가 남긴 빛들은 우리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때로 우리 삶에 행복과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슈베르트의 짤막한 가곡 하나가, 웅장한 교향곡 보다 더 깊은 감명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600곡을 헤아리는 그의 가곡중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에게 애창되어 온 곡만 해도 수백곡에 이른다. 슈베르트를 가리켜 ‘가곡의 왕’ 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러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는, 1797년 1월 31일 오스트리아 빈 외곽 리히텐탈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슈베르트는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었다. 11살에 빈 궁정 예배당에 들어가 합창단의 소프라노 단원으로 활약했지만, 16살에 찾아온 변성기 때문에, 합창단을 그만두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학교에 음악교사로 취직하게 된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딱딱한 분위기의 교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교사직을 그만둔 이후 경제적 기반을 잃어버린 슈베르트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친구 집을 전전하며 가난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베토벤과 동시대에 살았던 슈베르트는 번듯한 서재 한 칸도 갖지 못한 채 계속 가난에 시달리며 살았다고 전해진다.
작곡가에게 꼭 필요한 피아노 한대 마련할 돈이 없었던 슈베르트는 기타로 작곡을 했다. 그는 평생 1000개가 넘는 곡을 만들면서 피아노 한대 없이 오로지 책상에 앉아 곡을 썼다. 하지만 오히려 슈베르트는 그러한 가난을 크게 개의치 않았나 보다. 신세를 한탄하기는커녕 이렇게 말했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기타는 무릎 위에 올린 교향악단이다.” 이처럼 그의 유쾌하고 천진난만한 성격 때문에 그는 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살았다. 심지어 어쩌다 생기는 수입도 그동안 신세진 친구들에게 보답하는데 다 써버리는 쓸 만큼 그는 우정과 사랑을 중요시했다.
게다가 음악가로서 명성을 얻는 일에도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주해 주는 것을 낙으로 삼았을 뿐이다. 때문에 슈베르트의 작품은 그가 살았던 시기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슈베르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역시 가난 때문에 마음 아팠던 시절이 있었다.가난 때문에 사랑을 잃게 된 것이다. 슈베르트는 17살 되던 해에 첫사랑 테레제 그로프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당시 슈베르트가 완성한 미사곡 F 장조의 초연으로 우연치 않게 소프라노 독창을 맡은 이웃 소녀였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 슈베르트는 그녀로부터 영감을 얻어 수많은 작품을 작곡한다. 밀려오는 사랑의 영감으로 작곡한 노래가 무려 150여 곡이 넘었을 정도이다. 그렇게 슈베르트와 테레제는 함께 연주하고 노래하며 사랑을 키워 나갔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테레제 아버지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음악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고자 했던 슈베르트의 노력마저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면서, 테레제는 결국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고 만다. 사랑을 통해 마르지 않는 창작의 영감을 얻던 슈베르트였지만, 열매 맺지 못한 사랑은 그를 도리어 우울과 절망 속으로 내몰게 되었다. 그렇게 슈베르트는 실패한 사랑 끝에 찾아온 절망감으로 살아갈 이유조차도 상실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슈베르트가 연애도 결혼도 못 한 까닭을 평생 그를 따라다니던 가난 탓으로 여기곤 했다. 그의 찢어지는 가난 때문에 그 어떤 누구도 슈베르트에게 딸을 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슈베르트가 살던 시대에는 연주를 하지 않는 작곡가는 대부분 생계가 어려웠는데, 이는 슈베르트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 아이들 책에 원고료보다도 턱없이 적은 값을 받았다고 할 정도이다. 심지어 그 유명한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작곡한 대가는 고작 감자를 곁들인 음식 한 접시가 전부였다고 한다. 훗날 그 자장가는 4만 마르크에 거래되면서 뒤늦게 그의 진가가 확인되었고, 그의 자필 악보는 오늘날 경매에서는 100배가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지만, 생전에 슈베르트는 그런 것들을 전부 누리지 못했다.
결국 가난 때문에 첫사랑인 테레제와의 결혼도 포기해야 했고, 마음을 다 잡기도 힘들었지만, 슈베르트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할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다. 일부 학자들은 슈베르트가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에 사랑을 접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슈베르트가 신처럼 숭배하던 베토벤의 영향을 받아 독신주의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로지 음악만을 향한 그의 열정이, 평생 그가 독신인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그의 삶은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성공’이라는 문턱에 다다르지도 못했고, 어디 하나 그럴싸하게 완성되지도 못한, 미완성의 짧은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는 완성에 가까운 무수한 아름다운 명곡들을 남겼으니, 이 말이 그에게 꼭 맞는 것은 아닐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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