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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리오즈, 사랑의 아픔을 이겨낸 환상교향곡’ – News Korea

‘베를리오즈, 사랑의 아픔을 이겨낸 환상교향곡’

누군가는 역경과 어려움 속에 좌절하지만, 누군가는 그 역경과 어려움을 역으로 바꾸어 큰일을 이루어 내기도 한다. 베를리오즈, 조금은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으나, 그는 낭만주의 시대 프랑스의 유명한 작곡가로, 표제음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고, 관현악 기법을 발전시켜 낭만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낭만주의 거장이다. 그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프랑스 중에서도 한참 변방에 위치한 알프스 산골에서 태어났다. 그가 존경하던 베토벤이나, 그 이전 시대 작곡가들처럼, 베를리오즈는 태어나자마자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을뿐더러, 베를리오즈가 태어난 고장은 음악 학교는커녕 피아노가 있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다행히도, 그의 아버지는 그 당시 인텔리 계층에 속하던 부유한 의사였다. 그렇게 베를리오즈는 아버지에게서 상당한 수준의 라틴어와 교양을 자랑할 만큼의 음악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베를리오즈의 음악적 재능은 그가 배운 수준을 이미 뛰어넘었다. 12살의 나이에 독학으로 화성법을 마스터하고 지방 실내악단을 위한 곡을 작곡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 음악은 교양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장남이며, 영민했던 자신의 아들에게 직업을 물려주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베를리오즈는 아버지의 뜻대로 본격적인 의학 공부를 하러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물론 처음 1년 동안은 부모의 기대에 충실히 부응했으나, 감수성이 예민한 베를리오즈는 더 이상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파리’라는 도시 때문이었다. 전 유럽에서도 최고의 예술과 문화가 집결되어 있는 이 도시에, 그는 매혹 당할 수밖에 없었다. 틈만나면 연극이며, 오페라를 보러 다니고, 공연을 관람하는 것만으로 성이 안찬 그는 그날 들은 음악을 악보로 베끼며 욕구를 채워갔다. 결국은 파리 음악원 작곡 교수를 찾아가 제자로 삼아달라고 부탁까지 하게 되었다. 결국 음악의 길을 선택한 베를리오즈. 그의 아버지는 잔뜩 화가 났다. 아버지와 베를리오즈의 갈등은 무려 8년이나 지속되었다고 하니, 그 갈등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이 된다. 아버지는 생활비와 학자금 지원을 중단했고, 베를리오즈는 힘든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연극을 보다가 영국계 여배우 해리엇 스미드슨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가 출연하는 모든 공연을 쫓아다니고, 그녀가 초대되었다는 만찬에 어떻게든 따라다니던 베를리오즈는 지인의 도움으로 해리엇에게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지만, 파리가 열광하는 여배우에게 무영의 작곡가의 사랑은 쉽게 통하지 않았다. 그 후 열렬한 구애를 했으나,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빚을 내서 음악회를 개최했지만, 여자는 그 소식을 듣지도 못했고, 그의 편지는 여인에게 수차례 전달되었지만, 답장은 한 줄도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되는 실연에 베를리오즈는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했으나, 죽음 대신 실연의 상처에서 얻은 영감으로 위대한 작품을 완성시켰다. 베를리오즈를 성공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해준 위대한 명곡, ‘환상교향곡’을 완성한 것이다.
이 곡은 파리에서 대 성공을 거두었고, 작곡가들에게 최고의 영예인 ‘로마대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환상교향곡이 파리 음악원에서 발표될 당시, 이 곡이 여인에 대한 짝사랑의 쓰라림과 고뇌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지인들은 알고 있었다. 이 당시 해리엇의 연극단은 인기가 떨어져 그녀의 빚은 늘어만 가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지인은 그녀를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이 발표되는 자리에 데려갔고, 여인은 이날의 주인공이 그동안 자신에게 광적인 연애편지를 보낸 남자였다는 것을 알고 감격했다고 한다. 그 후 두 사람은 1833년에 결혼하게 된다. 베를리오즈의 열렬한 구애로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결혼 후 상황은 뒤바뀌어 해리엇의 지나친 집착으로 둘은 행복한 결말을 맞지는 못했다. 하지만, 사랑의 아픔을 토대로 만든 그의 환상 교향곡은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명곡이 되어 세계 곳곳에서 연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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