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문장

잠깐, 저와 차 한잔 하시겠어요. 편하게 따뜻한 차를 나누며 책 이야기가 아닌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시겠습니까? 2020년은 제 인생에 상상을 초월한 세상에 이런 일이! 놀라움으로 다가왔습니다. 5년3 개월 책을 읽고 북 칼럼을 쓰는 영원한 독자인 제가 저자가 되었습니다. <책 읽는 여자>란 에세이 집을 출간했습니다. 4개월의 원고 정리와 교정 끝에 칠순을 넘긴 나이에 제 분신 같은 글을 묶었습니다. 이민 30년 남루한 제 삶의 이야기를 꽃 단장하여 펴낸 책입니다. 문우들이 용기와 후원으로 감히 꿈도 꾸지 않은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곧 한국에서 책이 도착하며 나누어 읽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차 한잔, 이제는 책이 아닌 법정스님의 어록에서 생각나는 글입니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긴 법정스님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오월에 책이 출간되고 6월에는 제게 곁을 내어주신 분이 자동차, 그 현물을 감히 제가 선물 받았습니다. 제게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돈은 하느님이 제게 맡겨 놓으신 돈을 최정임씨에게 쓰는것 뿐이라고, 바람이 지나가듯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위해 3천배 절을 할 수 있으나 남을 위해 3천배를 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깨달은 분이었습니다. 꿈이라 깨어나면 허망하겠지만 꿈이 아니었습니다.

수필집 한권 내고 싶은 꿈도 감히 꾸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까지 꿈은 꾸지 않아도 이루어졌습니다. 이 큰 사랑은 가장 빛나는 수필로 다시 쓰겠습니다. 차가 다 식었네요, 제 예기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북 칼럼을 이어 가야겠습니다.

문화면 뉴스를 보았다. 한국의 서원 9곳이 세계 문화유산에 등제되어 축제가 한 달 간 열린다고 한다. 안동의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영주 소수 서원외 9서원에서 서원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책의 향기에 빠지는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을 대신하여 <조선의 마지막 문장>이란 책으로 위무하고 싶다. 조선조 500년 글쓰기의 완성 이건창은 누구이고 어떤 글로 조선의 최고 문장가라 했는지 함께 들어가 보자.

구한말 3대 문장가라며 창강 김영택, 매천 황현, 명미당 이건창을 꼽을 수 있다. 이건창은 철종 2년(1852)에 태어나 광무 2년(1898) 소론계 강화학파에 속하는 문인이다. 그는 조선시대 가장 나이 어린 15세 과거 급제자이다. 세종 때 김종서가 16세에 급제했다. 전주가 본관인 그는 정종의 아들 덕천군의 후손이며 강화도에서 태어났다. 곧은 성격 탓으로 이건창의 벼슬길은 순탄치만은 않다. 개화와 수구가 한꺼번에 소용돌이 치는 속에서 그는 지식인으로 고뇌에 찬 삶을 살다 갔다.

이 책은 7단원으로 나누어져 있다. 문장이론, 논설 평론, 충정과 절의, 가족, 백성, 효부, 열녀등 나누어 서술했는데 탁월한 문장과 이건창의 인간적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 책 읽기에는 이미 이력이 붙었지만 이 책 많은 그냥 재미나 의무가 아니라 한 문장 한 문장 나의 온 심혈을 기우려 파고 들었다. 한문으로 된 것이기에 엮어 옮긴 송희준선생의 집념이 문장에 너울거렸다. 송희준 선생은 한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경북지역에서 관서서당을 열어 옛 선현들의 문장을 조금이나마 후학들에게 전하는데 힘쓰고 있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고고함이 느껴지는 사학자의 길을 가시는분이다.

1장에 문장이론을 들어가 글은 이렇게 지어야 훌륭한 문장의 글이 되는가에 대한 이론이 정채롭게 전개되어 있다. 이번에 책을 내면서 원고를 교정하고 뜻을 얽고 언어를 다듬어면서 쓸데없는 어조사와 긴 문장, 조화롭지 못한 문맥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130년전의, 이건창이 문장이론은 요즘 글쓰기에 대한 책들에서 말하는 이론과 다르지 않다. 오로지 더 명확한 현대적 기법에 놀라지 안을 수 없었다. 주제와 언어에 있어서 서로 넘치지 말아야 하고 리듬없는 글은 죽은 글이라 했다.

많이 짓는 것은 많이 고치는 것만 못하고, 많이 고치는 것은 많이 지워버리는것만 못하다. 산삭할 것이 없는 글이 되기 위한 무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글의 윤곽을 형성함에 있어 오직 뼈대 그 자체에 몰두해야 한다. 운문으로 할 것인가 산문으로 할 것인가, 단문 혹 다문으로 할 것인가 뜻과 말의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수많은 수정과 조탁이 있어야 한다. 평범한 사실의 나열은 글이 아니다. 깊히 새기게 하는 문장들이다. 매천 황현의 <구안 실기>에 대해 쓴 기문은 희소가치가 있는 글이라 평했다.

2장에 들어가서 논설과 평론에서 이건창이 지은 <당의 통략> 한권에 그의 뛰어난 지성과 현실 역사를 꾀뚫어 보는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건창은 지식인의 본능적 윤리가 선명한 비극성으로 스며들여 있다. 천재 이건창은 역사와 현실을 연결짓는 구조적 통찰로 <당의 통략>이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장이 최고의 도는 아니다> 당, 송 나라 팔대 문장가 중 한사람인 중공(1019-1083)이 지은 [논양웅]에 대한 비판의 글이다. 이름난 문장가들이 한결같이 문을 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강하게 비판한다. 이는 작가든 학자이든 도를 우선으로 여겨야 하고 또 문장을 읽는 이들은 작가의 사람됨을 생각해야한다는 뜻이다. 대학교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며 위안부 문제를 폄하해 영업을 했다는 말을 서슴치 않는 학자가 문장을 잘 구사한다고 그를 도로 보면 안될 것이다. 즉 문장이 최고의 도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건창의 날선 비판에 글을 쓰는 이들을 돌아 보게 한다.

3장 충절과 절의에 들어가서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사육신과 생육신이 갈렸다. 이건창은 신숙주를 꾸짓는 [고령탄]이라는 장시를 지어 신숙주를 비하하기도 하고 [사육신 묘]에 바치는 충절의 시를 지으 사육신의 정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시습과 김인후를 재평가 한 글이 [청은전]이다. 청은은 맑은 절개를 지녔어도 벼슬을 하지 않고 은거한 사람에 대한 입전이라는 뜻이다.

이건창은 매천 황현의 [구안실기]에 대한 기문을 쓰기도 하고 이 시대의 시인은 창강 하나로다고 김영택을 칭송했다. 매천 황현, 창강 김영택, 명미당 이건창 이 세 사람은 고문을 숭상하면 바른 상소와 변혁의 시대에 깊은 울림을 주는 수많은 명문의 글을 남겼다. [조선의 마지막 문장]은 제 곁에서 몇 년간 함께 호흡하면서 글쓰는 나에게 문장의 경각심을 깨우치게 했다.
글을 쓰시고자 하는 분들께 코로나 19로 칩거하면 읽기에 좋은 고전을 권해 봅니다. 종이책은 아직도 우리에게 좋은 스승입니다. 글은 어떤 마음으로 쓰야하는지 그 길을 열어주는 [조선의 마지막 문장]에 그 해법은 이건창입니다.

선조들이 살이오면서 걸어왔던 그 길을 역사라 한다면 역사 속 당대의 지식인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백성들의 삶의 기록과 생활의 성찰까지 효부와 열녀 가족과 자신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 담긴 두터운 책으로 흩트러진 기병을 정열시키듯 자신에게 접목해 읽으면서 비움으로 마음을 곧게 추스르게 한다. 다시 오지 않을 5월과 6월을 내 생애 최고의 겸양의 날로 다가와 내 마음을 배꼽 아래로 내려 놓으라 한다. 좋은 책, 좋은 스승은 가둬놓지 않습니다. 온 몸을 팔랑팔랑 넘겨도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다시 이 책을 책장에 꽂으며 생각한다. 책은 훨씬 더 자주 나에게 본성의 의지를 꺼내 쓰며 살라고 채근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