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푸가 (파울 첼란)

나의 친애하는 오수는 책을 들고 앉아 몰입 10분경이면 공격적이다. 그렇지만 절대적 공격을 물리치는 한권의 책이 있다.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란 시집이다. 시(詩)의 전통적 가치의 틀을 깨고 서늘한 비통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세상에서 가장 암묵적 고통이 응축된 시집이다. 70년대 후반에 독일을 다녀온 지인이 파울 첼란의 시집 원문을 구입했다고 자랑했는데 번역이 안 된 시집이라 오랜 세월 묻혀있었다. 그 후 40년이 지난 2011년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독일에서 괴테연구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괴테 금메달 상)을 동양인으로 최초 시상한 전영애 번역으로 2017년에 3쇄로 지난 가을에 내게 도착했다. 한국에서 비극적인 시인 파울 첼란이 다시 조명되었다.

시인 첼란은 1920년 루마니아 북부 체르노비츠에서 유태인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첼란이 (옛 함스브르그 왕가의 변방으로 독일어를 쓰다) 21살에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났고, 체르노비츠에 거주하는 유태인 부모와 형제들은 유태인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처참한 죽임을 당한다. 그 또한 가스실 처형 직전까지 가서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첼란은 파리에서 의대를 다니다 고향에 돌아와 끔직한 비극을 겪었다. 그는 오랫동안 그 고통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파리의 센 강에 50세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그의 시집으로 <유골 항아리에서 나온 모래>외 7권의 시집이 남아있다. 그는 1958년 브래멘 시 문학상과 1960년 게오르그 뷔히너 상을 받았다.

시를 읽으며 아파오는 시들이 있다. 뼈 속까지 그 서늘한 비수 같은 아픔이 전해진다. <죽음의 푸가>에 나오는 시들이 그렇다. 푸가란 말은 음악적 사전적 의미는 길다. 짧게 말하자면 주제를 반복해서 선율적 요소를 이룬다는 나름의 집약을 해 본다. 첼란의 시에서 아우슈비치의 참상은 시의 전체를 이루어 놓은 것이라 생각한다. 첼란의 시들을 오래 들여다보며 시인의 몸과 마음에 밀봉해둔 깊은 상처가 다시 수면위로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났던 세기적인 비극의 갈림길에서 살아남아 물어뜯긴 상처의 으르렁거림을 토해낸 첼란은 폐허가 된 삶을 시로 쓰여졌다. 첼란의 시는 침묵을 통해 극도의 경악을 말하고자 한다.

시인의 삶 전체가 그 음습한 폐허를 만든 그곳에서 탈출할 수 없게 만든다. 화인으로 각인된 그의 문학자체가 고통이다, 한 세기가 지나도 그의 시는 독자의 가슴에 불덩이처럼 뜨겁게 느껴진다. 첼란은 복잡한 사연으로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천재적인 시인이다. 독일어는 모국어였고 히브리어는 집에서 배웠고 루마니아어는 10살부터 다닌 김나지움에서 배웠다. 프랑스어는 루르대학 의예과 다닐 때 프랑스인으로 오해받을 만큼 잘했다. 러시아어는 소련군이 침공했을 때 배워 <전쟁과 평화>를 읽을 정도로 유창했고 섹스피어 소네트에 심취해 전쟁 후 고향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여 섹스피어를 명 번역을 하였다. 첼란은 극도로 명민하게 언어를 포획하는 강렬한 투사 같다. 시를 많이 읽고 시를 밥보다 좋아하는 나에게도 첼란의 시는 난해하고 극복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극기를 넘어선 한 청년의 아우슈비치에서의 학살을 두 눈과 20대의 푸른 가슴으로 보아 온 그는 그곳에서 살아남은 자의 내면에서 거친 기억과 정화된 고통의 전부를 보여주는 경악의 시들이다. 서정시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첼란의 시가 쉽게 읽어지지 않는다.

‘죽음의 푸가’ ‘양귀비의 기억’ ‘언어의 창살’ ‘숨결 돌림’ ‘실낱 태양’ ‘빛의 강박’ 시적 언어에서 보여주는 낮설음은 강력 접착제같이 숨이 막힌다. 시 한편을 옮겨보려 하니 상징과 은유와 난해함까지 겹겹이다. 첼란이 겪은 당대의 사회역사적 토대의 발을 딛고 쓴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 비극적 상황에 독자도 함께 침전되어야 한다. 독서는 어떤 작품을 읽던 그 작품 속 먼 세계를 바라보며 조망해야한다. 문학은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으로 끊임없는 탈주의 연속이다. 여기 첼란의 시 한편 올린다.

눈 하나, 열림

오월 빛깔 서늘한, 시간
이제는 부를 수 없는 것, 뜨겁게
입 안에서 들린다.
다시금, 그 누구의 목소리도 없고,

아파오는 안구의 밑바닥,
눈꺼풀은
가로막지 않고 속눈썹은
들어오는 것을 헤아리지 않는다.

눈물 반 방울,
한층 도수 높은 렌즈 흔들리며,
너에게 모습을 전해준다.

첼란의 시에서 번번이 나오는 고통의 실상이다. 외눈, 감기지 못한 눈, 뜬 채로 굳어진 눈, 생명의 물기를 잃어버린 눈, 아우슈비츠의 살상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고통의 지층이 총총히 박혀있다. 우리의 근대사에도 6,25의 전화가 휩쓸고 간 해방 후의 4/3 제주 사건이 상기된다.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는 만큼 그 댓가는 혹독하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와 이념으로 혹 종교적 다름으로 일어나는 전쟁의 참사에도 ‘또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하고 일상에 안위만 생각하고 사는 많은 전쟁의 포화를 격지 않은 세대들에게 이 시의 난해성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가 겪은 세월호 참사와 우리가 겪지 않은 4/3사건의 아픔을 우리 모두 가슴에 고통의 자국을 지닌 사월이다. 사순 기간 동안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 시집을 곁에 두고 인간의 고통이라는 첨예한 문제를 이입해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 죽음을 응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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