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보라 (이면과 표면의 경계를 허문 사람)

장마가 끝나고 유월이 녹음으로 성큼 다가왔다. 서양에서는 준 웨딩이라고 유월에 결혼을 하면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고 하는 속설이 있다. 우리의 유월은 6/25 전쟁으로 그 상처는 다 아물어 가는 것 같지만 아직도 이산의 그리움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 지고지순한 사람의 생애가 이산의 아픔을 어떻게 살아냈는지가 담긴 책을 소개한다. 숭고하게 살다 갔다면 그것은 성자가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 현대 인물사에 숭고하게 살다간 “한국의 슈바이처”, “살아 있는 성자”, “바보 의사” “작은 예수”라 불리우는 장기려 선생(1911-95)의 평전을 소개한다. 6/25,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고 코로나 19의 희생적인 의료진들에 대한 보답으로 이달의 책을 <장기려 그 사람>을 선했다.
저자는 지강유철, 기독교 윤리실천 운동과 교회개혁 실천 연대를 이끌어 온 기독교계의 혁신적인 활동을 한 사람이다. 이 책의 출판 연도는 2007년이으로 13년 전에 이 책이 출간 되었다. 제가 읽은 년도는 2008년 9월 2일 완독으로 되어있다. 나이가 들어가니 그리운 사람도 많다. 그리움의 대상은 이제 실존 인물보다 아득한 시간너머 산자가 아닌 장기려 장일순 같은 분들이 그립다. 팍팍한 세상이라 이 책을 다시 펼쳐보았다. 한 권의 책은 책 한 권으로 끝나지 않는다. 책이 품고 있는 세계는 나에게 삶의 보편성을 뛰어넘어 새로운 경험적 자아를 실현하는데 촉발의 원인이 된다.

성산 장기려 선생은 평북 용천에서 태어나셨다. 개성 송도 고보와 경의의학 전문학교 (서울의대) 졸업하고 일본 나고야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리나라에 최초의 의료보험 협동조합과 청십자 의료보험을 창설하였다. 동란 후 부산에서 천막 복음병원을 설립했다. 가난한 난민들을 치료해 주고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북에 두고 온 아내 김봉숙과 가족을 그리며 평생 독신을 살았다.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사회봉사부분, 국민훈장 무궁화장,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 인도주의 의사상을 받았다. 그의 묘비에는 “주님만 섬기다 간 사람” 글귀가 새겨져있다. 예수를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화두로 던져준 책이도 하다.
장기려 선생의 한 생애를 조명하자면 세가지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첫째 예수를 섬기는 신앙인 장기려, 둘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의사 장기려, 세째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사랑하는 장기려, 그의 믿음의 동반자는 한국기독교회사가 남긴 가장 위대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와 그의 부인 오정모, 유영모, 함석헌, 백인제 이들과 함께 해 왔다. 장기려 선생은 평생 삶의 원동력인 기독교 가치가 곧 그의 삶이며 사상이며 실천이 되었다.
기독교인 선생이 남긴 “나의 세계는 나의 사랑하는 곳에 있다” 이 말이 다음 단계인 의사 장기려에게 옮겨간다.
선생은 유일하게 둘째아들 가용과 월남하여 부산에서 천막 병원을 개원했다. 처음 선생은 부산 난민 촌에서 가진게 없어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복음병원이라 이름하여 그들을 치료하였다.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피를 뽑고 자신의 월급을 털어 환자의 생활과 병원 살림을 돌보았다. 북에 두고 온 가족처럼 빈부를 가리지 않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의사의 혼을 다 바친다. 어느날 환자가 완쾌해 퇴원을 해야하는데 병원비를 지불할 돈이 없는 환자를 밤에 몰래 문을 열어 도망가게 한다. 50년대 의사로 부와 안정을 도모할 수 있음에도 한결같이 고귀한 희생으로 빈자들의 의사가되어 생명의 존엄을 지킨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러 마땅한 작은 예수였던 의사 장기려.

장기려 선생은 북에 두고온 어머니, 아내, 오남매를 돌아가실 때까지 그리워하고 재혼도 하지 않고 통일을 기원하며 사셨다. 이산의 그리움을 이곳에서 행려병자와 환자들에게 북에 두고 온 가족처럼 치료하고 도와준다. 그것이 북에 남겨둔 가족들도 그렇게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가리란 믿음으로.
어느날은 정말 선생은 바보같은 일을 한다. 평생 집없이 병원 옥탑방에서 사셨다. 어느날 옥탑방에 들어와 보니 도둑이 들어 가져갈 귀중품이 없어 아끼는 책들을 보따리에 싸고 있었다. 그 사람에게 그 책은 자기가 필요한 책이니 내가 그 책값을 주겠다며 돈을 주어 도둑을 돌려보냈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이 없어 그냥 지나치다 월급을 수표로 받은 것이 생각나 뒤돌아가서 그 수표에 사인을 하고 구걸하는 자에게 주었다는 일화는 정말 믿기지 않은 사실이다. 우리곁에 온 작은 예수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상식선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그날 그들은 아마 평생 장기려를 잊지 않고 예수를 믿으며 사랑을 베풀고 더불어 함께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선생은 기독교 가치관이 곧 그의 삶이며 그 삶은 그의 사상이었다. 선생은 회개만이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 회개한 자만이 남의 짐을 기꺼이 지려고 할 것이고 한다. 그런 사람만이 참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오신 분이다.
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져 산 45년 독신생활을 이어오신 장기려 선생이 아닌 장기려 남자를 생각해 보자. 정전 휴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북에 가족을 두고 서로 애태우며 차곡차곡 세월을 견디다 5년 10년 20년을 넘기다 채념하고 남에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게 된다. 선생은 독신으로 죽음을 맞이하셨다. 이산가족 만남을 정부에서 지원해 아내를 만나게 해 주겠다고 했다. 특혜라면 거절하셨다. 모든 사람이 다 갈 수 있을 때 함께 가겠다는 일화도 있다.
특혜와 특권을 누리려고 권력을 잡고 명예를 이루는 현존하는 인간 세상이다. 낙타가 바늘 구멍 들어가듯 어려운 이산가족의 절차를 특혜라면 거절했다니 선생의 마음은 무릇 하늘 마음이 아닌가. 내가 선생 대신 오래 아파했다. 장기려 선생이 내 삶과 따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평전을 많이 읽어왔다. 이미 평전으로 남은 사람들은 그만큼 그 삶이 한 사회와 시대에 끼친 영향력이 상상을 초월한 헌신과 사랑의 일생들이 담겨있다. 작은 일상에 부딪힘도 아파하는 나에게 아픈 화살촉 하나를 당겨본다. 책을 읽어도 더 나은 사람은 못되어도 더 나쁜 사람은 되지 않을 수가 있다.
살아생전 동상을 세우는 사람도 있다. 장기려 선생은 죽어 자기 동상을 세우는 자는 벼락을 맞아 죽을 것이라 했다. 일생을 청빈하고 남을 배려하며 욕심없이 맑게 살다 가신 그 큰 걸음으로 이루어 내신 지금의 의료보험 혜택을 국인 모두가 수혜를 받고있다. 시작은 미약하나 마침내 창대하리라.

성서 연구를 위한 소그룹 부산모임, 초창기에 10명이 모였다. 선생은 참 신앙인으로 이 모임을 36년간 이어왔다. 성서 강해를 함석헌 선생과 함께해 왔다. 이 모임에는 도올 김용옥의 큰형 김용준 박사와 안병무 선생등 참석자가 100병이 넘었다. 박정희 정권 때 선생과 함석헌등은 블랙리스트로 몇 차례 구속되기도 했다. 전두환이 대통령 시절 부산에 내려와 선생을 만나자고 전화를 했는데 신혼부부와의 선약이 있다고 대통령과의 저녁을 거절한 사람이다. 권좌앞에 초연한 그의 태도는 평생 예수를 섬기며 산자만이 이룰 수 있는 천지개벽이다.

장기려 박사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26곡의 애창곡이 있다. 서양민요와 가곡 찬송가, 80년대에는 복음성가도 부르시고 피아노와 성가대 지휘도 하셨다. 운동은 테니스를 즐겨하셨다. 마지막 유품으로 남은 낡은 흰 백구두와 뒤축이 다 닳은 검정구두, 이가 빠진 낡은 머릿빗, 서예를 즐겨 벼루와 먹, 손때 묻은 성서 한권, 의사, 박사, 교수, 각종 포상을 받은 자가 남긴 초라하기까지한 유품은 나에게 귀한 유산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장기려 선생의 숭고한 생애가 내게 뜨겁게 느껴온다. 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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