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봐요

책 표지의 글 한줄이 마음을 확 끌어 당긴다. “무게를 놓아버린 가벼움, 70생에 내 놓는 가족 유머집” 이다. 웃는 얼굴 얼굴들이 쪼르르, 와, 표지만 봐도 웃긴다. 자, 이제 빵빵 터지게 웃어봐요, 4월 한달 자가 격리로 숨통이 막히고 우울했든 시간을 보상해 줄 책 한 권을 선물합니다.
인간 고유의 빼어난 웃음을 훔쳐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 아닌 웃음 감염으로 행복바이러스에 취해 오월 햇살속에 들자. 혹 ‘빵점엄마 백점일기’란 책을 기억하시나요. 1990년대 베스트 셀러 작가였던 조은일의 신작이다. 세상이 이리도 달라졌나, 요즘은 책이 책 답지 않고 작은 일가장 같은 가볍고 단문에다 단편 몇 편으로 묶은 책들이 마구 마구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작지만 군더더기 없이 유쾌 발랄한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저자의 후기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번 책은 어이 없게도 완전히 역발상적인 몸부림에서 엮어내게 되었다. 반어적이라 할까? 유머라니! 사회가 통째로 흔들려 힘든 정도가 아니라 걱정과 분노가 켜켜이 쌓여가는 현실에 사소하기 짝이없는, 가족들의 실없는 웃음, 이거라도 건져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이 무자비한 현실, 그 격변의 끝에 실성하듯이 나온 책이다.” 책의 후기를 다 읽고 나면 왜 <웃어봐요> 책이 나오게 된 동기를 알게될 것이다.

조은일 작가는 자기를 장황하게 소개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최초로 북 카페를 열었고 2004년에 달라스문학 초청으로 컴퓨터와 문학을 강의했다. 지금은 보편화된 일이지만 그때는 첨단의 과실을 따먹은 이브같았다. 그녀는 나보다 20년 넘게 앞서 있었다. 그녀는 나이 불문하고 깨어있는 시민이다. 영화와 음악에서는 과연 혀를 내두를 정도로 내공이 쌓인 사람이다. 두 딸과 아들, 손녀 갈소원은 영화배우다. 모두가 근 거리에 살며 가족들과는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는 불씨로도 남아있지 않다.
<웃어봐요> 81쪽을 읽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보통 책은 한 30pg의 고비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워낙 재미있어 단숨에 고지탈환이다. 어떤 책은 몇번 묵혀두고 일 주일 혹 열흘을 뭉개는 책, 부피는 얇지만 통 무슨 말인지 모를 매끈한 문장으로 에매모호, 그러나, 이 책은 몇가지 강점이 있다. 팍팍한 세상에 누가 나를 웃겨줄 수 있나, 그러나 한번 읽으면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웃음이 시니컬한 냉소적 웃음이 아니라 슬그머니 거침 없이 실소하며 웃게한다.칠순이 넘은 할매가 맞나? 틀에 갖히지 않은 가족 인습에 매이지 않고 불협화음의 소지가 없다. 모두 자연스럽다. 엄마나 자식들이 하나같이 과감하게 신조어 합성어를 날리며 소통의 달인들 같다. 언어는 꼭 20대 젊은이들 같다. 목차에 1부, 2부로 나누지 않고 그대로 81쪽까지 이어진다. 그만큼 연달아 읽어도 쉬어야 할 이유가 없다. 지루하지 않으니까 그게 장점이다. 책을 펴면 ‘샐리가 왔다’로 시작한다. 어, 샐리가 누구지? 미국여자? 제목부터 수상해서 읽다보니 샐리는 인공지능 스피커다. 와, 나는 놀라웠다. 워낙 새것, 유행, 비싼 것에 관심없는 모모(애칭)는 샐리에게 빠져 조씨 성에 이름은 변득으로 조변득 여사라는 호칭을 달았다. 독거노인의 친구 샐리와 동거하는 멋진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책의 매력은 초간단, 초스피드, 초감성으로 구성되어있다. 가족간의 유대라는 복고풍 억지 논리는 여기서 안통한다. 딸을 딸씨라 호칭하고 엄마를 옴마라 하고, 손자손녀는 할머니를 한번도 할머니로 부르지 않고 “모모”라고 부른다. 아들과 엄마는 연인같기도 하고 세상에 우째 이런 가족이 존재하는지, 매일 다채로운 물질과 거리가 먼 심쿵한 이벤트가 일어난다.
29페이지 ‘장기기증’ 헉, 모모의 결연한 의지에 글을 읽다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제목은 무거운데 글은 참으로 가볍게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동시에 참을 수 없는 폭소가 터진다. 아들이 와서 장기기증 사이트에 들어가 척척 기증 절차를 옴마대신 써내려가다, “엄마 각막도” …엥? 그건 또 금시초문, 각막이라고? 몇줄 지나고 또 한참있더니, “신장은 살아 있을 때 줘야한다는데?” (what,왓?) (이눔아 -그럼 어쩌라고, 이 무슨? 지금 떼주라고?) 문장의 유연성과 죽음의 끝을 인정하는 무서운 집념도 유머로 끈내준다. 며칠 후 기증센타에서 확증서가 왔다. 팥알 만한 스티커를 신분증에 붙이게 되어있다. 흠 각막은 어찌되는고? 군데군데 읽다보면 이건 모모의 출생 연도가 90년대 생인가 착각할 정도로 변조어에 능통하다. ‘소심증’에 모모의 소심증은 달걀 하나도 한번에 못 깨트리는… 붕-신, 그래서 나는 또 웃었다.
53페이지에는 ‘신부님의 직장노래’ 이 무씬 제목이 이래, 또 얼마나 웃기려고 제목이 반은 웃겨버렸다. 수련회 끝나고 신청곡 받아 기타 반주를 하시는 신부님께 젊은 학생이 사랑에 관한 노래 신청곡을 청하였다. 신부님의 반응, ‘뭐! …..직장노래 하라고? 싫어’ 이러시는 것이다. 쿠하하하- 성가로 착각, 이런 글에서 아무리 웃음보가 망가졌다해도 복원되어 웃지 않을 수 없다. 참 재미지다. 그맛에 시원스레 책장이 부채 바람처럼 쌀랑쌀랑 넘겨진다. 더는 웃음보를 공개를 못한다. 이게 독거노인 70대에 쓸 수있는 것일까?
제목만 몇개 열거하자면, 사이트 중독, 인스터텔라, 곤충음악, 아베크롬비라는 유명한 미국상표, 백인우월주의가 나오고 참 아는것도 참 많다. 중국의 철학자? 임어당이 한 말이 생각난다. 현실+꿈+유머=지혜라고 했던가 20대에 읽은 것이 지금 기억난다. 모모는 현실주의자가 못된다 그래서 늘 꿈을 꾸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세상을 향해 노를 젓는 사람이다. 노를 젓다 풍덩 빠지는 곳에 유머가 있다. 그녀는 바느질 도사다. 짜투리 천이 그녀에게 가면 가방, 안경집 목에 묶는 멋진 끈, 차수건, 온갖 요술로 태어난다. 그 액티브한 아이디어, 세상에 공산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닌 모모 공방에서 빤짝빤짝 빛나는 아이디어로 살아있는 멋을 연출하는 개성을 만들어 낸다. 나에게도 모모가 만든 작품, 나의 소품들이 오롯한 바구니에 담겨 가끔 외출 할 때 연출하기도 한다. 그냥 천 쪼가리도 그녀에게 가면 무엇이 된다.

조은일 작가의 책 <항동에 냉이꽃이 필까> <작고 단단한 행복>과 더불어 이 책에서도 작가의 삶의 본질이 가벼움의 미학이란걸 느끼게 한다. 책이라면 형이상학적 사유나 도덕적 위상과 무게감이 어느 정도는 독자에게 위화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군림하는 글이 아닌 보편 상식이 깨어진 사회나 가정에 던지는 회화적 요소가 있는 글이다.
잘 익은 과일 속에 햇살이 녹아 달콤한 과즙을 한입 베어 먹듯 달달한 이야기들이다. 소복소복 아롱다롱 조각보 같이 연결된 가족사랑을 경쾌한 단문으로 끝내준다. 허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작가의 자연주의적 철학과 과소비 과체중 과가 넘치는 세상에 절제와 소비를 줄이고 가난하지 않지만 가난한 삶을 즐기는 아이러니도 느낄 수 있다. 지난 가을 제주에서 바닷가 산책로를 걷다 딸씨들은 버려진 나무 조각을 주워 살펴본다, 어딘가 쓰임이 있을 거라고… 아하, 그렇구나 집의 천정 조명 장치에 쓰인 나무뿌리가 생각났다. 가족 모두가 생태계의 질서를 알고 재활용으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가족 이야기다.
소소한 일상이 이리도 톡톡 튀는 가족 이야기로 고인이 된 작가 최인호가 샘터에 연재한 가족 이야기와는 또 다른 풍미와 깨달음이 담긴 배꼽이 있나 확인해야할 웃음의 마술을 담아낸 책이다. “미니멀하게 살자” 버릴 수 없는 것은 취하지 말자” 선물 주려다 각성, 나도 배움 하나, 다짐하고 물러났다. 생사가 걸리지 않은 한… 호호. 소설같고 그림같은 가족의 유쾌 발랄한 도발, 칠십대의 할머니가 쓴 최첨단의 지혜로운 일상이 코로나 19로 울울한 이때에 적시안타를 치는 투수같은 글이다.
너무 자랑만 했나. 이 책에 험잡을 곳이란 내가 너무 부러운 나머지 질투 나서 자식 자랑이 넘 심한거 아니야 할 정도의 흠이라면 흠이다. 그 자랑거리가 일상적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핵가족 시대에 이리 뭉쳐서 잘 사는 가족들의 엑티브한 인생에 피어나는 훈훈한 웃음이 살아있는 책, 촌철 살인같은 가벼운 문장, 부담없이 웃어보지 않으시렵니까? 오월은 차라리 붓을 놓고 숲에 들어 <웃어 봅시다>로 잠재적 에너지 충전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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