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힘 – 장소현

독자에게 특별한 힘을 실어주는 서책 한 권이 내 곁에 왔다.
종가 집 장 맛 같이 깊고 달달한 약간은 슬픔이 베어든 그 여운이 오래 남는 책이다.
<문화의 힘> 힘이란 힘을 뺀 부드러움의 힘이었다. -나는 깊게 파기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 저자는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해 각 문화 장르의 중출함을 독자에게 전해 주었다. LA에서는 저자를 문화 잡화상이라 부른다고 소문이 났다. 그 말의 옷을 입기까지 깊이 있고 넓게 파 오신 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장소현 선생님은 문화잡화상이 아니라 문화 탐미가, 문화 예찬자, 문화지킴이 이런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한 권의 수필집이 그냥 수필이 아니었다. 한국문화의 미추를 섬세하나 날카롭지 않고 낡아 보이나 초라하지 않은 담담한 필력으로 수수하고 해학적인 장문의 문체로 이어준다.

<문화의 힘> 밖에서 들여다 본 한국문화의 오늘이란 부제가 더 내 마음을 끌었다. 장소현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일본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동양미술사를 전공하셨다. 그동안 시집 희곡 칼럼 미술에 관한 책을 22권 저술하시고 <서울 말뚝이> <김치국씨 환장하다> <민들레 아리랑>등 50편의 희곡을 한국과 미국에서 발표했다. 미술 분야는 <그림이 그립다> <그림은 사람이다> <그림과 현실>등 30여권 발간했다. 고원 문학상과 가톨릭 문학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미래지향적 방향은. 책을 읽으며 우리의 정체성은 바로 한국인이라는 확고한 명제가 정수리를 친다. 다이스포라의 위치를 돌아보게 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잠든 문화 의식의 감성을 깨우게 한다.
저자가 치열하게 예술 전반에 몰입했던 시대 전후가 저와 많은 맥락이 닿아있었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춤 각 분야에서 거론되는 문화 전반에 예술가들의 작품을 다양한 각도로 환원하여 민족문화의 총체적 힘으로 이끌어 내는 힘이 놀랍다. 미술에서 보면 백남준, 이우환, 이응로, 김환기, 김창열등 세계무대의 인정받은 예술가들은 고집스럽게 한국적인 바탕을 지켜냈다고 지적한다. 음악 부분도 조수미, 정경화, 백건우, 사라장, 조성진, 재즈가수 나윤선이 부른 아리랑에서 허윤정의 거문고 연주 김덕수 패의 사물놀이 한류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 집고 넘어간다. 나윤선이 부른 재즈음악 CD에 두곡이 한국음악이 들어있다. 아리랑과 초우, 아리랑을 듣다보면 끊어지듯 이어지는 색즉시공을 초월한 아리랑의 음색에 한없이 끌려들어간다. “문화는 또 하나의 합법적인 영토 확장입니다.” 이 말씀에 정말 공감이 간다.

창작의 발원지는 물줄기가 산에서 계곡으로 흐르듯 산 하나를 품어야 만이 나올 수 있는 한국문화의 보고 같다. 저자에게 예술세계의 지맥은 바로 조국에 뿌리를 두었다. 책을 읽다보며 우리가 태어난 조국의 산하에 닿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37꼭지의 글들이 다 귀하지만 <통일을 위한 예술> 미술, 문학, 영화, 연극, 각 장르마다 오르는 이름들이 제 숨을 멈추게 한 사람들입니다. 조정래, 황석영, 이청준, 김은국, 박완서, 윤흥길, 최인훈, 미술에 오윤의 <원귀도>와 걸게 그림 <통일 대원도> 임상옥의 <전쟁 전후의 김씨 가족> 한운성의 <월정리> 연작 작품을 높이 평가하셨다.
여기서 잠깐 오윤에 대해서 영상 같은 스틸 한 장면을 끼워 넣고 싶다. 오윤은 소설가 <갯마을>의 작가 오영수 선생의 아들이다. 천재화가 오윤은 민중화가로 41살에 요절했다. 오영수 선생님과 저의 외삼촌이 친구여서 어린 시절 오윤과 만난 적도 있었다. 장소현 선생님을 만난 적은 없지만 선생님의 글 속에서 선생님의 실존 하신 연륜을 70 초반을 조금 넘기신 듯 짐작하게 된다.
영화 연극의 치열한 작품들은 통일을 염원하는 분단국의 상처와 화해의 수작들이 많다. 저자의 희곡이 연극무대에 올랐다는 것에 이민 후 제가 보지 못했지만 오영진 원작의 <한 네의 승천> 각색한 연극은 손진책 연출로 본 기억이 난다 김성녀가 열연했다. 그 시대 아마 70년대 중후반에 허규 선생님의 민예극단이었던가? 각색을 장소현 선생님이 하신 것을 책 마지막 장에서 알게 되었다. 한국화도 허제, 심산, 소정, 이당, 운보등의 대가를 거쳐 황창배 김병종 이왈종 같으신 분들의 경계를 허물고 과감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하나 수묵화의 맥이 끊긴 것에 손실을 지적하신 것에 공감한다. 두루 살펴 한국인들의 예술과 문화에 소중한 자료를 남기신 인문학적 자료들이다. 글을 쓰는 소설가, 시인, 수필가등 제 자신을 포함해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우리 문화도 제대로 모르면서 자기 자랑이나 주면 잡기를 써온 것이 못내 머리 숙이게 한다. 마지막 254페이지 시골 노인정 노인들의 다산과 니체라니, 꿈같은 이야기다. 꿈은 자유이니까. LA 가서 선생님과 함께 그런 수준의 동네 경로당을 차려 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한다.

장소현 선생님은 동양미술을 전공하셨지만 음악분야에도 깊이 발을 들여놓으신 것을 알 수 있다. 67페이지 “음악의 힘 우리의 아리랑”에서 2012년 아리랑이 남한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제되고 2014년 북한에서도 아리랑이 등재되었다고 한다. 아리랑은 민족의 노래이고 남북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어지는 글에서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새삼 각인시켜 준다. 오늘날에도 조용필, 장사익, 윤도현, 나윤선등이 꾸준히 세계무대에도 부르고 있다. 여기 <삼팔선 아리랑> 가사를 옮긴다. “사발그릇 깨지면 여러 쪽 나지만 삼팔선 깨지면 하나 된다네,” 정선 아리랑도 누구나 정선 아리랑 문화관에 가서 가사를 쓰며 기록되어 아리랑으로 남는다. 아마 500곡이 넘을지도 모른다.

저자의 의식 밑바닥에는 분단된 조국의 상흔이 피멍처럼 아직도 푸른 자국이 있다. 통일을 위한 예술의 장에서 문학과 미술의 여러 예술 장르에서 통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도 살피게 하시고 “남한과 북한을 아우를 문화를 꿈꾸는 대통령이 그립습니다. 아직 이른가요, 터무니없는 꿈인가요.” 자조석인 독백이 애처롭게 다가왔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미국에서 구사하는 ‘통쾌한 사투리’에서 충청도, 영남, 평안도, 전라도 사투리 영어발음을 읽다 절로 절로 유쾌한 웃음이 참을 수가 없었다. 독자의 긴장을 풀어 주는 해학의 극점에 이르게 한다. “게 후아류셔” 느리잇 느리잇 대답하는 충청도 양반, 이에 비해 영남사람은 무뚝뚝하고 박력 있게 “후꼬” 혹 “홍교” 평안도 사람 투박한 힘이 있어, “후네” “후이가” “아, 후랑께? 아엠두잉 나운디잉” 판소리 가락처럼 낭창거리는 대답은 전라도 양반, 지방 특유의 한국인의 배짱을 기죽지 않고 사는 우리 동포들의 애환도 흥겨운 한마당 깔려있다.
그러므로 저자는 ”언어는 정신의 표상이다“라고 한다. <문화의 힘> 이 책 한권은 그냥 책이 아니다. 글의 본질은 그 언어의 뿌리이고 책을 읽는 독자는 그 뿌리에 닿아 새로운 삶의 생기를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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