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의 무소유

기해년 새해 아침, 서쪽 창가 감나무가 옷을 다 벗고 봄 여름 가을의 풍성하던 시간을 묵상하고 있다. 빈 가지 그대로 바람을 맞는다. 자연은 무소유란 개념에 매달리지 않는다. 비울 때가 되면 스스로 다 내어주고도 당당하다. 아주 작은 책 두 권, 맑고 향기로운 글이 담긴 책으로 시작하자. 가신 님 법정스님의 책 <무소유>를 선택했다. 작고 가볍지만 영혼을 죽비로 깨우는 청량한 바람 한줄 같은 글, 지금도 세월을 넘어 읽혀지는 이 시대의 신 고전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또 한권 성철스님과 법정이 나란히 앉아있는 표지로 된 책, 김세중(전남대교수역임) 엮음 ‘삶의 향기와 텅 빈 충만’이란 부제로 단숨에 나는 이 책에 사로잡혔다. 두 큰 스님의 잠언록을 불교경전과 연결시켜 무소유의 난이도를 쉽게 풀이한 작은 경전이다.
저는 평생 돈 되는 보석하나 지녀보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이 이런 귀한 보석 같은 책은 눈에 잘 들어와 보석의 값이 아닌 책값으로 보석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은 보석을 곁에 두고 있다. 지난 해 법정스님의 임종게에 가까운 생애 마지막 한 자락 서간체 <간다 봐라> 책이 김영사에서 나와 구입해 보았다. 스님의 맑고 깊은 영혼의 메아리가 나의 전신 공양의 향기로 번졌다.

무소유, 참으로 인간적인 우리에게 가당찮은 말이다. 현대는 자고나면 새로운 상품으로 소유를 촉진하는 무한 경쟁시대에 무소유라니, 법정스님의 “무소유란 아무것도 가자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무소유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흔히 무소유를 물질을 갖고 안 갖고로 이해하는데, 무소유란 물질 위주의 생활에서 존재 중신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무소유의 깊은 철학이 담긴 글의 오묘함을 다 담고 있는 법정스님의 어록에 담긴 말들이다,
“산은 산 물은 물” 퇴옹 성철 스님이 남긴 이 법어는 문헌상으로 <완등록>에 나오는 효시이다. 견성의 단계에서 본래의 모습을 뜻하는 불교의 깊은 뜻이 담긴 글이다.
“영원한 진리를 위해 일체를 희생 한다.” 나는 진리를 위해 불교를 선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 진리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참으로 진리에 살려면 세속적인 일체의 명예와 이익을 다 버려야한다. 마음의 눈을 뜨면 자기의 본성, 즉 자성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견성(見性)이라고 한다. 견성은 선종(禪宗)의 십우도에서 득우(得牛)로 그려지고 있다. 소를 잡긴 잡았는데 이 소가 나와 처음 만나는 소이기 때문에 뿌리치고 도망가려고 하기에 이것을 도망가지 못하게 고삐를 꽉 잡고 있는 모습이다. 마음의 눈을 뜨면 현실이 극락이다. 나를 찾지 말고 부처님을 찾으라고 한다.
너무 깊고 오묘하지만 들여다 보면 볼수록 쉬운 길로 안내한다. “밥을 먹는 사람이 되십시오” “정신을 쉬도록 하십시오” ”진짜 큰 도둑은 성인인체 하는 사람입니다.”
어, 이거 너무 쉽다, 그렇지요 우린 매일 밥을 먹고 있고 정신을 쥐어짜는 일로 쉬어주고 싶다. 그리고 성인인 체할 정도의 견성이 부족하니 큰 도둑이 될 리가 없겠다는 말이죠. 무소유 삶을 살아가는 지인을 소개한다.

몇 년 전 안나 자매님은 타주에서 제가 다니는 성당에 나오셨다, 첫 인상은 참으로 검박해 보였다. 말이 없고 외적인 곳에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그녀의 집에 방문을 했다. 4블록짜리 아파트 지니고 아래층에 사시는데 집안으로 들어서니 내 머리를 퉁 죽비로 내리치듯 하얗게 비어졌다. 상식, 혹 사람살이의 그 모든 것이 다 텅 빈집, 거실 바닥엔 작은 가벼운 천이 깔려있고 한쪽 구석에 일인 간이 식탁 같은 아주 작은 테이블 위에 컴퓨터 놓여있고 작은 신발장에 신발 두 컬레, 식탁은 2인용 작은 것 의자 두 개, 그 위에 과일 바구니에 사과 오렌지 몇 점, 부엌 싱크 위에 작은 밥통하나, 그 외 안나 자매님이 츄리닝을 입은 민머리 스타일의 평온한 모습이 풍경의 전부이다. 텅 빈 공간 충만한 기쁨이란 법정스님의 말씀이 뇌리를 친다. 짧은 탄식과 허물어지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차 한 잔을 나누며 그녀를 생을 간결하게 압축하여 들었다. 방을 구경해도 되냐고 하니 “아무것도 없는데 뭘 구경해요” 하며 둘러본 집은 이불 한 채와 물론 침대도 없고 옷장은 텅 비다시피 철마다 입을 입성 몇 벌, 아! 사람이 수도자도 아닌데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그녀는 많이 매우지도 못했다고 하지만 그녀의 생은 온전히 경전이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푸드 코너에서 봉사하고 몇 군데 미국 기관에 봉사하며 성당에서도 말없이 봉사하길 즐긴다. 외적인 것에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귀한 사람이다.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무욕으로 살아가는 자매님 앞에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지니고 사는지에 대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마음을 비웠다고 한다. 말은 참 쉽지만 정작 비움과 채움의 차이에 경계가 없다. 경계가 없다는 말은 초월적이란 말이 아니다. 비움을 아는 사람은 가난과 벗하며 맑게 살아가는 사람, 마음을 비운 사람은 이렇게 가끔 귀한 사람으로 제 곁에 있다. 헨렌 리어링,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바보 장기려, 권정생 선생, 이들의 무소유로 살아가신 분들이다. 가난한 삶과 무소유의 삶이 다름을 두 권의 무소유 책에서 말해준다. 법정스님은 불일암에 들어가 마음까지 불순한 것이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며 사셨다. 고무신 한 켤레와 누더기 옷 한 벌 남기고 가신 성철스님은 무소유 의 화두를 실천하시다 가셨다.

성철과 법정은 너무도 버거운 무소유라는 화두를 던져주고 갔다, 법정의 <무소유> 수필에서 이제부터 하루 한 가지씩 버리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고 한다. 이 화두를 물질세계에 비중을 두기보다 마음에 집중하며 어떨까? 소유에서 무소유로 그 방향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새해 나의 소망은 조용한 참 평화와 좋은 책 몇 권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시간과 그리고 검소한 식사이다. <무소유>를 새해 내 화두로 슬쩍 마음에 던져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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