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10주년

올해가 슬초빠가 항암치료를 마친 지 어느새 10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슬초네 가족을 잘 기억하고 계신 휴스턴 암센터의 담당 의사 선생님은 몇 년 만에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난 슬초빠를 반가워하며 감개무량해하십니다. 만나 본 의사 중 최고의 의사였지만 하필 암 전문의이기에 다시 만나는 것은 언제나 무섭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지만, 그래도 만나면 언제나 반갑습니다. 환자가 의사를 만나도 이리 반가운데, 건강한 모습으로 십 년 차 검진을 온 자신의 환자를 본 의사 선생님은 또 얼마나 반가우실까요.
이번 10주년 차에도 어김없이 이런저런 검사들을 했습니다. 당시 암의 기수가 높았고 또 워낙 속도가 빠른 급성에 악성 혈액암이었던지라, 암 관해 통지를 받은 후에도 그간 주기적인 혈액 검사와 CT, PET, 내시경 검사나 조직검사로 건강 상태를 모니터를 해 와야 했더래서 이제 암 스크리닝 검사는 저희에게 참 익숙합니다. 하지만, 검사 결과를 받는 것만큼은 그렇지가 않더군요. 5년 째이든 10년 째이든, 검사 결과를 받는 일은 매 번 스릴이 넘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검사는 슬초빠가 혼자 받곤 하지만, 결과를 받는 날 만큼은 꼭 슬초맘이 함께 병원에 가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번 10주년 차 검사의 결과는 나름 새롭습니다. 그간은 림프조직 안에서 암세포는 아니지만 정상에서는 조금 벗어난 비정상 세포들이 발견되어서 예의주시해 왔는데, 이번은 광범위하게 행한 조직검사에서조차 모두 깨끗한 정상 세포들만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지를 받은 그날, 참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더군요. 무엇보다도 이 과정 가운데 함께 해 주신 주님의 은혜가 감사했습니다. 또한 허허허 웃는 웃음 뒤에 숨겨져 잘 보이지는 않는 슬초빠의 식단·식사량 조절(1일 1식, 저탄수화물식, 무설탕), 꾸준한 운동, 또 면역관련 치료나 보조제를 거르지 않고 잘 챙겨온 노력도 컸던 것 같습니다.
뭐든 불평이 없고 갈등하지 않고, 긍정적이며 잘 용서해 주는 슬초빠의 세상 좋은 성격도 한몫을 했던 것 같구요. 또한 ‘가장의 건강’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함께 노력해 온 가족들과 함께 기도해 주신 주변의 지인들에게도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10년 전 그때 7살이었던 슬초가 어느새 17살이 되었습니다. 슬초빠의 치료를 위해 휴스턴으로 왕복을 하며, 그 과정에 어린 슬초에게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며 동시에 가정의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그 시간들은 갈라지는 홍해를 걷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기억의 곳곳에는 함께 눈물 흘려주셨던 분들, 항암치료 때마다 금식기도로 함께 하셨던 분들, 어린 슬초를 내 자식처럼 돌보아 주셨던 분들, 소리 소문 없이 마음을 담은 봉투를 보내주셨던 알 수 없는 분들에 대한 기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당시엔 우리에게 과연 ‘10년 후’라는 사치가 주어질 수 있을까 싶었었지만, 그간 슬초빠도, 슬초맘도, 슬초도 이제 더욱 강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했고, 그간 가정 안에는 화목함과 웃음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면, 회복 후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며 가정의 재정이 예전과 같지 않아져서 슬초의 학자금을 돕기 힘들게 되었다는 것인데, 밝고 씩씩한 슬초가 얼마 전 학교는 전액 장학금을 주는 곳으로 선택해서 가겠다며 대입 학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아 왔습니다. 어차피 등록금을 도와줄 능력도 없었던 부모인데, 뭐든 알아서 척척해내는 것이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지금 불속을 지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께 슬초네의 삶의 모습들이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주변에 불속을 지나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바로 지금 그분들께 작은 위로와 용기, 그리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분들이 10년 후 제2, 제3의 슬초네가 되어 또 다른 힘든 분들께 손을 건네고 그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사람들이 될 테니 말이지요.

2009년 8월, 3차 항암치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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