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썸의 추억

숲과 나무가 많은 텍사스의 주민이라면 원하든 원치 않든 야생동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슬초네에도 그간 길 잃은 오리와 거북이, 나무에서 떨어진 아기 새, 토네이도에 날개 다친 새, 배고파서 기절한 토끼, 둥지에서 떨어진 다람쥐 가족 등 셀 수 없이 많은 동물들이 거쳐갔습니다. 몇 년 전에는 한 너구리 가족이 슬초네 지붕으로 이사를 와서 무단으로 살림을 차리더니, 새끼까지 낳고 분가를 하셨고, 큰 나무가 있는 지금 집은 온 동네 다람쥐들의 마을회관이 되어 지붕에선 매일 우다다다 우다다다 다람쥐 달리는 소리가 들려오고는 합니다.
텍사스에서 만나게 되는 야생동물들 중에는 약간 이질적인 녀석들도 있습니다. 바로 스컹크와 너구리(Racoon), 그리고 파썸(Possum) 삼총사가 바로 그 녀석들입니다.
책에서만 보았던 스컹크 녀석은 이곳 텍사스에서는 도로 위에 불쑥 나타나 허걱하게 하거나, 혹은 그 특유의 강한 냄새로 멀리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곤 합니다.
역시 책에서만 보았던 귀여운 너구리도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싶었지만, 쓰레기통 주변에 출몰해 두 손으로 능숙하게 쓰레기봉투를 찢어 다 헤쳐놓는 습성에 이젠 이 녀석도 그다지 귀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 녀석들은 이름이라도 알고있었던 동물들이라서 그렇게까지 이질적이지는 않았다지요.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파썸’(Possum)입니다. 역시 쓰레기통 주변에 종종 출몰하곤 하는 이 녀석을 한 번이라도 만나보신 적이 있는 분들은 “맞다, 맞아!” 박수를 치며 공감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녀석의 이질적인 외모에 동물을 좋아라하는 슬초맘 역시도 “헐! 이 거대 쥐쉐이는 또 뭥미!!”하며 식겁했으니 말이지요. 크기는 야생 토끼 정도 되는 이 녀석은 놀랍게도 설치류입니다. 시력도 좋지 않아서, 나름 도망을 간다고 열심히 달려가 벽에 쿵 부딪히는 개그 감각까지 장착한 녀석이지요. 여튼 이 녀석은 낯선 외모 덕에 심장이 약한 분들은 되도록 만나지 않으시는 것이 좋은 동물 중의 하나입니다.
파썸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던 슬초맘도 텍사스에서 십몇 년을 살다 보니 이제 녀석들을 만나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바야흐로 진정한 텍사스 주민이 된 것이지요.
얼마 전 쓰레기통을 치우는데 고약한 냄새가 나서 살펴보니, 쓰레기통 부근에 새끼 파썸이 한 마리 죽어있더군요. 젖을 뗀 후 이제 막 스스로 먹이활동을 시작한 청소년 파섬인 것 같은데 자립에 실패하고 슬초네 집 동네에서 기력이 다 되어 죽은 듯합니다. 안쓰럽지만 야생에서 약자는 도태되는 것이 자연의 순리겠지요. 그런데 며칠 후, 또 쓰레기통 주변에 딱 지난번 그 녀석처럼 생긴 다른 새끼 파썸 한 마리가 기진맥진해서 누워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니 왜 이 녀석들은 자기 집을 놔두고 굳이 우리 집 앞까지 와서 죽겠다고 누워있는 거냐 말이지요.
진정한 텍사스 주민 슬초맘, 그 파썸을 흔들어 깨웁니다. “야, 너 왜 여기 누워있어? 너네 집으로 가!” 놀란 녀석은 어렵게 몸을 일으켜 나름 도망을 가지만, 비틀비틀대는 몸으로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펜스 쪽으로 가서 머리를 한 번 쿵 박고는, 여기가 아닌가 하며 다른 길로 도망을 갑니다. 짜식, 얼마나 배가 고프면 저리 기력이 없나 싶어지더군요.
3견 2묘를 키우는 집사 슬초맘, 그 모습을 보니 웬지 마음이 짠합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밥이라도 한 번 배 터지게 많이 먹고 죽어야 할텐데 싶은 마음에, 그 날 밤 쓰레기통 주변에 강아지들 사료를 수북이 담아 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쓰레기를 치우다 보니 밤새 사료가 다 사라졌더군요.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말이지요. 도대체 어떤 녀석이 와서 매일 그릇을 이렇게 싹싹 비워놓는 것일까요. 과연 이 사료를 그 새끼 파섬들이 먹고 있는지, 동네 너구리가 심봤다며 먹고 있는지, 아니면 떠돌이 고양이들이 열심히 먹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와서 배 터지게 든든히 먹고 가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러다 온 동네에 소문이 나서 녀석들이 뭉게뭉게 모여들까봐 긴장이 되기는 하지만, 나름 스릴이 있습니다. 슬초네 가족들도 관찰 카메라를 설치해 보자며 의견이 분분합니다.
눈썹 휘날리게 바쁜 치열한 하루 일정이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 잊지 않고 이 알 수 없는 녀석을 위해 먹을 것을 채워놓는 순간만큼은 슬초맘은 잠시 호기심과 장난기, 그리고 순진무구함으로 가득했던 어린시절의 슬초맘이 됩니다. 하교길에 주운 어미잃은 야생 새끼쥐, 길 잃은 두더쥐, 아이들이 길에다 버린 다친 병아리, 학교 경비원 아저씨께서 주신 새끼 토끼를 키우겠다며 집에 데리고 들어왔다가 결국 그 녀석들과 함께 집에서 쫓겨나곤 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도 새록새록 다시 살아나더군요. 생각해 보면 슬초맘의 친정어머니도 특이한 슬초맘을 키우며 고생을 많이 하셨던 듯합니다.
‘텍사스 거대 쥐쉐이’ 파썸. 이젠 동네에서 마주쳐 휭~ 도망가는 파썸의 뒷모습에, “혹시 너냐?” 싶은 마음이 듭니다. 호기심 천국 슬초맘, 아무래도 조만간 관찰 카메라를 하나 설치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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