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가족’이라는 단어에는 느낌이 있습니다. 따뜻함, 무거움, 미움, 사랑, 그리움, 애틋함, 책임감, 아쉬움 등, 그 느낌은 어떠한 종류의 ‘가족’이냐에 따라 또 크게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슬초맘에게도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내가 태어난 가족인가, 내가 선택한 가족인가, 그리고 내게 선물로 주어진 가족인가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태어나자마자 함께 묶인 가족의 경우에는 나의 의지라는 것이 전혀 작용되지 않았기에 조금 억울한 면도 있습니다. 부모도, 형제자매도, 가족이 처한 환경 중 그 어는 것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그저 주어진 대로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남 이녀 중 셋째이자 딸로는 둘째 딸로 태어난 슬초맘이 관심을 더 많이 받는 첫째도 아니고, 사랑을 더 많이 받는 막내도 아니고, 그렇다고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아들도 아닌 셋째 딸로 태어난 것은 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나 다른 형제와는 많이 다른 성격과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 매사에 가족에게 이해를 받기 어려워 외로웠던 부분도 제가 원해서 선택한 어려움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태어나자마자 가족이라는 띠로 함께 묶이게 된 그들, 즉, 내가 태어난 가족 공동체를 떠올리면 슬초맘의 가슴엔 언제나 묵직한 무거움과 부담감이 떠오르곤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두 번째 종류의 가족은 내가 선택한 가족, 바로 배우자입니다. 이 가족은 내게 그저 주어진 가족이 아닌 나 자신의 의지로 내가 직접 선택하여 만드는 가족이지이요.
슬초맘의 경우도, 슬초빠를 만나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둘이서 ‘가족’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선택은 조건이나 필요, 소유가 아닌 사람 자체를 기준으로 했던 신중한 선택이었고, 또 다행히도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을 돌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 선택을 하라고 한다고 해도 역시 동일한 선택을 할 수 있을 슬초맘에게 자신이 선택한 가족 공동체는 언제나 편안함과 따뜻함, 사랑, 신뢰와 이해를 제공하는 쉴만한 물가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 즈음해서 세 번째 종류의 가족이 주어지더군요. 슬초가 생긴 것입니다.
오늘날 ‘자녀’를 라 가질지 말지의 결정에 있어서는 약간의 선택권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단연코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어떤 아이를 내 자녀로 받게 될 것인가에 있어서만큼은 일체의 선택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태어난 아이에게 부모 선택에 대한 권리가 없는 것처럼, 평생 그 아이를 맡아 키워야 할 부모에게도 어떤 아이를 내 자녀로 받게 될 것인가에 대해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는 전혀 없더군요.
부모에겐 그저 선물처럼 주어진 그 아이를 온 마음을 다해 소중히 키우고, 그 아이가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 떠나갈 때까지 그저 사랑하고 아껴야 할 의무, 그 의무만이 주어질 뿐입니다.
모성애 부족형 인간인 슬초맘에게 육아는 그리 쉬운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안드로메다형 정신세계를 가진 슬초맘의 딸답게 슬초의 정신세계도 또 다른 은하계에서 왔고 말이지요. 마치 슬초네 강아지 호떡이와 고양이 톱이가 서로 다르듯 가지고 태어난 색깔도 양상도 다른 독특한 개성체인 슬초를 키우며, 우리는 이 녀석을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부모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슬초는 자신의 가족 안에서 생각과 성향의 차이 뿐만 아니라 이민 생활에서 오는 문화와 언어 차이, 그리고 세대 간의 차이를 겪어 나가며 답답함이나 이해받지 못하는 서운함을 느껴 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수십여 년 전 슬초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그 때의 내 눈에는 이렇게도 다른 나를 그저 사랑하고 아끼던 나의 부모는 왜 보이지를 않았던 것일까요.
2019년 겨울. 슬초맘을 둘러싼 세 종류의 가족 중 이제 첫 번째 가족과 세 번째 가족이 조만간 슬초맘을 멀리 떠나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떠나 온 가족인 연로하신 친정 부모님께서는 각종 병환으로 고통 중에 계시고, 내게 선물처럼 주어진 가족인 슬초는 어느덧 12학년이 되어 타주에 있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대입 원서를 준비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슬초맘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 두 종류의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제는 그들을 굳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품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언젠가는 이 두 종류의 가족을 떠올릴 때 그간의 답답함이나 서러움조차 사치로 느껴질 날, 즉 아쉬움과 그리움이 느껴질 그런 시간들이 곧 다가올테니 말이지요.
가족. 비록 나 자신의 선택으로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내 인생에 큰 선물로 주어졌던 인연들이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먼 훗 날, 돌이켜 아쉬움보다는 그리움만이 남을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더욱 치열히 그리고 더욱 소중히 사랑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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