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생일이란 해마다 돌아오는 출생일, 속되게는 귀 빠진 날이라고도 합니다.

사실, 아버지는 이번 생일을 몹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장 커다란 이유는, 혈압이 170을 오르내리는 탓에 이러다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은 불길지조, 아니 죽지는 않더라도 불치병이라도 찾아온다면? 하는 예감이 자꾸 꿈틀대기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가족에게 몹쓸 짓을 할 것만 같은 비참함, 이것 밖에 못살고 가는 비통함, 뭐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심신을 흔들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바로 그 때문이었겠지요.

불쑥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게 일면서, 앞으로 얼마의 생일을 더 찾아먹을 수 있을지 손가락을 꼽는 아버지의 마음이 뒤숭숭합니다. 그래서 이번 생일만큼은 예수나 석가의 탄신일처럼 거대한 행사는 아니더라도 뜻있게 맞이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속마음을 알아준다면, 그래서 축하 인사와 함께 선물까지 곁들인다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선물은 ‘관심’이란 물을 주어야 싹이 틉니다. 관심이 자라면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고, 사랑이 깊으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꼭 물질만이 아닌, 한 통의 편지와 전화로도 얼마든지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겠지요.
아버지는 선물에 탐을 내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형편없이 작은 것, 하루아침에 끝나버릴 것만 같은 기구한 운명 앞에 가족으로부터 마지막 생일선물 받고 싶었던 겝니다.

이런 아버지에게 우체부가 굿모닝! 하면서 소포를 내밉니다. 형만한 아우 없다고, 큰 녀석이었습니다. 음력으로 지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일은 도대체 헷갈린다며 변명을 일삼던 녀석이 기억을 하고 있었다니…. 아버지는 몹시 뿌듯해 합니다.
Happy Birthday to 아바마마!

생신을 경하드리옵니다. 언제나 건강에 유념하시고, 웃으시고, 행복 하시옵소서.

뉴욕은 화창합니다. 아바마마께서 계시는 달라스 궁의 날씨도 쾌청한지요?

소자 아바마마께 문안 인사 드리러 가지 못했사옵니다. 보내드린 선물은 일류 ‘파티쉐’에게 바치는 것이오니, 크게 기뻐하여 주시옵소서.

어마마마께서는 맛있는 특별요리를 선보이시겠군요. 에구~ 먹고파라.
화제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유행했던 ‘파티쉐’는 우리말로는 ‘제과사’를 뜻합니다. 프랑스에서는 빵 만드는 사람을 ‘불랑제’, 케이크나 파이를 만드는 전문가를 ‘파티쉐’라고 부른답니다. 아버지는 파리바게뜨에서 근무할 당시 제과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바 있고, 지금은 알링턴에서 도넛샵을 운영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에 대한 자식의 배려인 듯 했습니다.
아버지는 고국으로부터 받은 생일카드에 또 다시 감격해 합니다.
부사장님! (그는 아버지에 대한 호칭을 아직도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가까이서 파티라도 열어 드려야 하는데 죄송하고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미국에서도 미역국을 드실 수 있으신지요? 저는 부사장님과 함께 근무할 때의 꾸지람과 격려 덕분에 하루하루를 충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부사장님의 인간 됨됨이와 무엇이든 열정으로 임하시는 가르침을 가슴깊이 새기며 더욱 성실한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함경환 올림
아버지의 기분은 짱! 짱! 짱!, 아니 와장창!입니다. 깨어지는 가슴 속의 유리 파편들이 햇볕에 반사되어 찬란합니다.
아버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듯,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용혜원의 시 ‘관심’을 띄워 드리고 있습니다.
늘 지켜보며 /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 네가 울면 같이 울고 / 네가 웃으면 같이 웃고 싶었다

깊게 보는 눈으로 / 넓게 보는 눈으로 / 널 바라보고 있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하기에 /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 모든 것을 잃더라도 / 다 해주고 싶었다
영원히 바윗돌처럼 단단할 것이라고 믿었던 아버지. 그러나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움츠려 드는 그 분께 하루라도 빨리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겠습니다.

아버지에게 내일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보너스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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