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enty twenty

2020년은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이다. 미국은 졸업 연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2020이라는 숫자는 입학할 때부터 늘 아이를 따라다녔다. 고학년이 된 후에는 행사 사진마다 2020이라는 숫자가 소품처럼 자리 잡고 있어서 이젠 없으면 뭐가 빠진 것처럼 허전하다.
이천이십 년이라는 말보다 ‘twenty twenty’라는 말이 익숙하다. 많이 들어서일 것이다. 빨리 읽으면 새소리 같기도 하고 물방울 튀는 소리 같기도 하여 기분이 상쾌해진다.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2020년이 마침내 도래하였다. 어쩌면 나는 누구보다 간절히 2020년이 오기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딸의 졸업과 동시에 길고도 길었던 나의 육아도 졸업이라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늦복이 터졌는지 남편이 딸내미 대학 가면 하고 싶었던 일도 하고, 가고 싶었던 곳도 다니라고 했다. 말만 들어도 고맙다.
내 안에서 꿈틀대는 자유로운 영혼이 고개를 들 때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꾹꾹 누르며 살았다. 내 친구들은 손주들 기르느라 정신이 없는데, 나는 아직 고등학생 딸을 키우고 있다. 그 덕에 젊게 사는 것 같다. 몸까지 젊으면 좋으련만 몸이 생각을 따르지 못한다. 하지만 늦둥이 딸을 기르며 살아온 세월이 무엇보다 행복했고 뒤늦게 공부했던 세월도 못지않게 행복했다.
지인들이 애지중지 길러 온 딸 대학 가면 허전해서 어떻게 살 거냐고 걱정을 한다. 솔직히 학교에서 며칠 캠프만 가도 집이 텅 빈 것 같고 허전하다. 애도 없는 데 밥 먹으라며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어쩌면 또 그럴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작가로 산다는 게 매 순간 감사하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 문학은 언제나 내게 살아갈 힘을 부여해주었다. 읽고 쓰는 일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바쁘고 즐거울 것이니 아마도 빈둥지증후군을 앓을 시간은 없을 것 같다.
올해 꼭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벽돌 책과의 데이트다. 책 사는 게 유일한 사치여서 욕심껏 사놓고 다른 일 하느라 못 읽은 책이 반이다. 올해는 책 읽는데 시간을 더 할애할 생각이다.
한국문학을 배우려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가르쳐 주겠다는 약속을 오랜 세월 지켜왔다. 배우고 나간 사람들이 책을 내고 열심히 작품활동 하는 걸 볼 때 보람을 느낀다. 그분들의 기쁨이 내 기쁨이기도 하다.

딸은 미술대학으로 진로를 정했다. 1월 중에 에세이와 포트폴리오를 마무리하여 가려는 대학에 원서를 제출해야 한다. 학교 공부도 많은데, 그려야 할 것이 많으니 몸과 마음이 바쁘다. 방학도 없이 화실에 다니니 안쓰럽다.
돌아보면 나의 18살도 편치는 않았다. 주민등록증만 발급받으면 어른이 되어 모든 걸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도 엄마가 정했다.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는 학과가 아니면 반대를 해서 음악, 문학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여자는 그저 좋은 직장 다니다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 사는 게 최고라고 믿던 엄마 때문에 아주 먼 길을 돌아왔다. 늦게나마 내게 맞는 옷을 입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내 딸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도와줄 생각이다. 돈을 떠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게 행복한 삶이라는 걸 체험했기 때문이다.
자식은 부모가 살지 못했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존재도 아니고 대리만족의 도구도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똑똑해서 그렇게 살지도 않겠지만, 지혜롭게 자기 삶을 개척하여 주류사회에서 어깨 펴고 당당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년에는 연초에 세웠던 계획을 다 이루지 못하고 연말이 되어 버렸다. 게으르게 산 건 아닌데, 만족할 만한 결과는 별로 없었다.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
올해도 많은 계획을 세웠다. 다이어트와 운동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데 늘 작심삼일이다. 이번에는 잘 지킬 수 있을까?
아무쪼록 우리 가족을 비롯해 이 글을 읽는 분 모두 건강하시고 소원 이루셔서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정부와 국민이 하나 되고 하루속히 안정되어 행복하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뉴스에서 아름다운 소식만 들을 수 있는 2020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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