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가고 꽃은 피고

그날 아시아 뉴스 통신에서 4일 오전 9시 기준 미국 코로나 19 확진자는 273,880명이고 사망자는 7,087명이라는 뉴스를 읽었다. 그때까지 몰랐다. 그 사망자 속에 우리 사촌오빠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오빠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너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그 죽음이 현실로 와 닿는 순간이었다.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날이면 날마다 늘어갔다. 남편이 종일 틀어 놓는 뉴스에 지역 통계까지 올라오니 어느 순간부터 수시로 바뀌는 숫자에 무뎌지기 시작했다. 죽음이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지도 않고 듣고 돌아서면 잊었다. 오빠가 죽기 전까지 전염병으로 죽는 건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안에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데 사망이라니 충격이 컸다. 코로나는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가까이서 서서히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FOX 6 NEWS에서 오빠의 죽음을 보도하였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시기에 위스콘신 주의 한 작은 동네에서 코로나로 죽은 환자가 나왔으니 앞다투어 취재하고 싶었을 것이다. 조카가 보내준 링크로 뉴스를 보았다.
“워키샤에서 꽃집을 하는 고인의 가족은 꽃집을 팔고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려던 중이었는데, 코로나가 모든 것을 앗아갔다. 아내 엘리샤는 14년 전 러시아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으로 시집와 남편과 함께 꽃집을 운영하며 살았다. 3월 말경 남편이 고열과 통증을 호소해 병원에 입원했는데,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고 안타깝게도 지난 3일 숨을 거두었다.”고 앵커가 보도했다.
화면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굵었다. 하늘도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비에 젖은 오빠의 꽃가게와 음산한 도로, 오빠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 가족이 식당에 둘러앉아 있는 사진, 오빠가 입원했던 병원 사진이 잠시 비쳤다가 이내 사라졌다.
인터뷰 영상에 비친 올케의 금색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은 초췌했고, 목소리는 흔들렸다. “남편은 부지런하고 배려가 많았던 사람이었다. 인사도 없이 가버려 너무 슬프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한집에 살던 부부라 감염되었을까 봐 걱정했는데, 괜찮다니 다행이다. 자가격리 기간이 끝나는 토요일쯤에 장례식을 치를 예정이란다. 그곳도 외출금지령이 내려진 상태여서 오빠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지 못해 마음 아프다. 장례식에는 이모와 직계가족만 참석해야 할 것 같다.

오빠는 큰이모의 외아들이다. 2살 때 미국에 와서 68살이 될 때까지 위스콘신주에서 살았다. 한국말을 대충 알아듣기는 하는데, 영어가 더 편한 사람이다. 결혼한 후로 한평생 꽃집을 운영하며 살았다. 앉아서 꽃만 팔면 돈이 안 되니 중국에서 털 인형을 수입해 팔기도 하고, 집게 달린 작은 동물 인형이 유행일 때 꽃다발에 장식해 팔기도 했다. 관공서나 대기업, 은행 등에 커다란 화분을 납품하고 관리해주는 일도 하였다.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화분에 영양제도 놔주고 시든 잎도 따주고 분갈이도 해주고 죽으면 바꿔 주기도 하며 받는 관리비가 생각보다 많았다. 아내는 온라인 주문을 주로 맡고 오빠는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이라면 늦은 밤 바에 가서 술손님들에게 꽃 파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살았다. 나는 오빠가 자신을 위해 돈을 썼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늘 작업복 차림이었고, 피곤해 보였고 자기 입에 들어가는 음식조차 아까워했고 강도에게 험한 일을 당했을 때도 몸 대신 돈을 지켰다. 오빠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미련스럽게 일하며 돈을 벌었을까.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써보긴 했을까. 죽으면 이렇게 빈손으로 떠나는 것을 왜 그리도 아등바등하며 살았을까 생각하니 속상하다.

고단했던 오빠는 노모를 두고 먼 길을 떠났다. 치매로 기억을 놓아버린 이모는 아들의 죽음을 모른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자기를 앞서간 것을 안다면 아마도 맨정신에 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이 목을 누른다. 아무쪼록 천국에서는 바쁘게 살지도 말고 아프지도 말고 편했으면 좋겠다. 미국의 코로나 사망자가 4만 명을 넘어섰다. 모두의 손발을 묶어 집에 가둔 못된 바이러스는 오늘도 종횡무진이다. 언제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 오빠는 가고 없는데, 봄꽃들은 무더기로 피어나 철없이 웃고 있다.
잔인한 4월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