뚫리다

남편이 한국으로 출장을 갔다. 전화로 해결될 일이 아니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의 불안을 고스란히 끌어안은 채 비행기를 탔다. 우리가 비행기 표를 살 때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 심각하지 않았는데, 출국할 때가 되니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상황이 나빠졌다.
마스크 쓰고, 손 잘 씻고, 사람 많은데 안 가고, 딱 볼일만 보고 올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침저녁으로 한국 뉴스를 보아서인지 반 의사가 되어있었다.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오고 나서야 허기가 느껴졌다. 인천 공항이 한산해서 입국 수속 하는데 십 분도 안 걸렸다 하니 아마도 여행객의 발길이 끊긴 것 같았다. 몸을 사리고 싶어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출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더라는 말이 왠지 서글프게 느껴졌다.
요즘 한국의 지인들이 보내주는 카톡엔 ‘코로나 19 실시간 상황판’, 확진자 이동 앱, 대처법 등 온통 코로나에 대한 정보뿐이다. 그 와중에 가짜 정보도 끼어있어 욕을 바가지로 먹기도 한다. 나도 속아서 헤어드라이어로 외투에 뜨거운 바람 마사지를 해 주었다. 정말 병균이 죽는 줄 알았다.

인터넷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0위는 모두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것이다. 요 며칠 뉴스만 보게 된다. TV 화면에는 방역복을 입은 요원들이 이동 침대에 누운 환자를 이송하는 영상이 자주 나온다. 재난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지날 때마다 우리 가족을 비롯한 모든 분이 걱정된다.
확진자가 점점 늘고 있다. 대구가 뚫리고 서울이 뚫리고 부산이 뚫리고…… 그놈의 뚫렸다는 말이 공포로 와닿는다.
떠나기 전에, 남편이 가지고 갈 마스크를 사러 다녔는데 어디에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 지인 말에 의하면 미국에 사는 중국인들이 마스크와 세정제를 싹쓸이해 자기 나라로 부치는 바람에 일어난 품귀현상이라고 했다. 감사하게도 지인이 해결해 주었다. 한국도 마스크 공급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마침내 정부가 마스크 수출을 규제하고 마스크 대란을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니 마스크값은 천정부지로 올라서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상황이니 전쟁이 따로 없다.

북텍사스이북도민회에서 준비하던 행사가 취소되었다. 이사들이 힘을 모아 계획을 짜고, 단체장과 미팅을 잡고, 호텔 예약도 하고, 배너까지 만들었는데,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공무원의 행사나 공무 수행차 떠나는 외국 공식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었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사상 초유 국회도 폐쇄되는 판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행사를 위해 판을 짜는 것도 힘들지만 판을 깨는 것도 힘들었다. 모든 걸 없던 일로 만들고 나니 으슬으슬 춥고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대충이 안 되는 못된 성격이 나를 또 갉아먹은 모양이다.
우리 회사 한국 사무실 직원이 강동구에 있는 오륜교회에 다니는데, 교회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교회 문을 닫는단다. 2주 동안은 온라인 예배로 대신한다는 공지가 왔다고 한다. 현명한 판단이다. 지금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병원에 가기 위해 비행기 표를 끊은 상태였다. 남편이 돌아오는 날 바통터치하고 가려 했는데 내가 예약한 호텔 옆 배스킨라빈스 주인이 확진자여서 송파구도 뚫렸다는 소식을 들으니 겁이 났다. 감기 걸린 사람만 지나가도 감기가 옮는 사람이라 여러모로 볼 때 연기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비행기표 취소하는 데 페널티를 400불이나 물었다. 이래저래 손해가 막심하다. 다행히 약은 지인이 픽업해 보내주겠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하루를 또 맞는다. 한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죽은 사람보다 올겨울 미국에서 독감으로 죽은 환자가 더 많다. 안전지대는 어디에도 없다.
이름도 없는 신종 전염병들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욕심이 서로를 밟고 죽이는 무서운 세상 한가운데 우리는 서 있다. 정말 무서운 건 바이러스가 아니라 사람인지도 모른다. 맑고 밝고 청청하고 따뜻한 곳이 그립다.
문인들 단체 카톡방에 어떤 분이 “코로나 19’ 때문에 세상이 무서워하고 있는데, 19를 91로 바꾸어 시편 91편을 읽으면 하나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을 들으실 수 있다”는 말을 올려놓았다.
성경을 읽어 보았다. 진심으로 나를, 우리를, 우리나라를, 당신의 백성을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져주시고 살길을 뻥 뚫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속히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 마스크 벗고 숨 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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