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박인애의 행복을 나누는 수다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가지 않는 한 아무리 아프다고 호소를 해도 급할 게 없는 미국 병원이 못마땅해 한국행을 결심했다. 약한 것부터 한 단계씩 올려주는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로는 통증이 해결되지 않았고, 전문의는 2월 말이나 되어야 만날 수 있다 하니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다. 디스크 수술을 하러 간다고 하니 후유증이나 재발을 경험했던 지인들이 될 수 있으면 하지 말라고 조언을 했다. 척추 협착으로 신경이 눌려 허리 뿐 아니라 다리까지 쓸 수 없게 되었고 계속되는 통증은 맨 정신으로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동서가 수술했던 병원에 예약을 해 주었다. 이틀 후 떠나는 비행기 표를 알아보니 비즈니스석이 6,200불이었다. 앉아서 가는 게 힘드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중에 업그레이드해서 공짜 여행을 하려고 모아둔 마일리지를 전부 내주고 반값에 비행기 표를 샀다. 한마음 서비스를 신청하면 편히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갔는데, 그건 70세 이상만 받을 수 있는 서비스였다. 휠체어 서비스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검색대는 휠체어에서 내려 통과해야 하는데, 몇 걸음 안 되는 그 짧은 거리가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다리를 질질 끌며 뒤뚱거리는 모습을 뒷사람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비행기 안에서의 15시간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영화 보면 몇 시간 훌쩍 가겠지 생각했는데, 신경이 온통 아픈 곳으로 쏠려 한 편도 보지 못했고 한숨도 자지 못했다. 승무원이 한 시간에 한 번씩 교체해주는 아이스 팩과 진통제로 통증을 달래며 버텨야했다.
한국만 오면 바로 수술을 하고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수술은 약과 주사 시술을 해보고 안 될 때 쓰는 마지막 카드였다. 어쩔 수 없이 새로 처방해준 약을 먹고 며칠 후 척추주사를 맞으러 갔다. 영하의 강추위보다도 그 주사가 끔찍하게 아프다는 말이 더 떨렸는데 마취 주사 덕인지 뻐근할 뿐 아프진 않았다. 동서와 친정 언니는 그 주사를 맞은 후 언제 아팠냐는 듯 통증이 사라져 바로 일상으로 복귀를 했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통증은 줄었지만 마비가 풀리지 않았다. 발은 동상에 걸린 것처럼 얼얼하고, 다리는 마비되어 젖은 장작을 질질 끌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다리뿐 아니라 삶 전체가 절뚝거렸다. 아픈 쪽을 보호하려고 아프지 않은 쪽 근육을 계속 쓰니 멀쩡했던 등과 손목, 어깨에 담까지 들어 괴로웠고, 약 부작용까지 생겨 고생을 했다. 의사가 기존에 먹던 약과 겹치는 게 없는지 확인을 하고 처방한 것인데 뭔가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먹기만 하면 얹히고 울렁거려서 처음엔 오지게 체한 줄 알고 애꿎은 활명수만 수도 없이 들이켰다. 나중엔 물만 마셔도 토해서 그로기상태가 되었다. 의사와 통화를 한 후 약을 반으로 줄이고서야 증상이 멈췄다. 원인을 모르고 헤매는 것만큼 답답한 게 또 있을까. 몸은 모자람도 넘침도 용납을 안 할 만큼 까칠했다.
2차 시술 날짜가 잡혔다. 심신이 지쳐가니 몸에 나쁘든 말든 수술해서 한 번에 끝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휠체어 타고 한국에 올 때 비하면 용 된 건데 자꾸만 조바심이 났다.
새벽부터 울리던 지인들의 안부 문자도, 복도를 걷는 발걸음 소리도 뜸해졌다. 모두 학교로 일터로 간 모양이다. 갑자기 빠진 체중 때문인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었다. 간신히 씻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약 먹고 자는 게 요즘의 일상이다. 내게도 쉴 시간이 필요했는지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내고 있다. 눈을 감으면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붉은 파장을 일으키며 파고든다. 잠시 잠이 들면 주렁주렁 호수를 달고 침대에 실려 복도를 지나던 중환자의 휑한 눈이 보이기도 하고, 병상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의 신음이 들리는 듯하여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말이 와 닿았다. 건강을 잃고 나니 아픈 사람만 보이고, 건강할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아픈 이의 심정이 공감되고 미처 챙겨주지 못한 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파도처럼 철썩였다. 갑자기 성숙해진 느낌이다. 주사 한 번 더 맞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가족이 그립다.
일상에서 건져 올린
삶의 이야기를 수다와
입바른소리로 풀어내는
박인애 씨는 시인이며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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