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박 선생

한국에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났건만 일상으로의 복귀가 쉽지 않다. 나이 탓인지 아니면 건강이 안 따라주는 건지 이젠 한 번 리듬이 깨지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게 힘들다. 특히 책상에 앉는 일이 그러하다. 발동만 걸리면 그다음은 어찌어찌 굴러갈 터인데 거기까지 가는 게 잘 안된다.
일이 쌓여 마음이 급한데 손에 잡히질 않는다. 어깨에 붙인 파스는 이미 시원한 느낌이 사라진 지 오래고, 허리에 차고 있던 얼음주머니는 녹아서 축축하다.
나는 지금 어둠과 독대 중이다. 문장의 비가 쏟아질 때까지 기다려볼 참이다.
작가로의 복귀만 힘든 게 아니라 돈 버는 일과 부엌으로의 복귀 또한 마찬가지다. 다른 건 몰라도 식구들 밥은 해 줘야 하는데, 그조차도 만만찮다. 전에는 한 시간이면 끝냈을 일이 요즘은 배로 걸린다. 몸이 힘드니 행동도 더딘 모양이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갈비찜 타령을 했던 딸내미를 위해 갈비찜 하나 하는 데 족히 반나절이 걸렸다. 다리가 저릴 때마다 누워 허리를 폈다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 짜증스러웠다. 게다가 이번에 준 약은 몸이 엿가락처럼 늘어져 툭하면 병든 병아리처럼 존다. 그래도 일이 많이 줄었다.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딸이 혼자 운전을 하고 다니는 것도 일례이다. 라이드만 안 해도 살 것 같다. 밤에 글 쓰고 새벽에 자는 습관을 고치지 못하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고역이었다.
한국에 다녀와 보니 남편의 요리 실력이 많이 늘었다. 언젠가부터 백종원의 요리 예능 프로를 즐겨보더니 급기야 요리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주부라면 백종원 레서피를 한 번쯤 따라 해 보았을 것이다. 주부뿐 아니라 누구나 좋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리법이 쉽고 재료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걸 쓰면서 입에 딱 붙는 맛이기 때문이다. 슈가 보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설탕을 많이 쓰는 게 흠이지만, 각자 양만 조절하면 문제 될 게 없다. 우리 집에도 백종원 요리책이 두 권 있다. 몇 가지 응용해 보았는데 먹을만하다. 지인이 백종원 만능 비빔장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것만 있으면 면 요리가 웬만한 분식집보다 맛있다.
전에는 한국 한 번 가려면 바리바리 음식을 해서 냉장고를 채워 놓고 가느라 가기 전부터 지치고 힘들었다. 집 한번 나가려면 왜 그렇게 할 일이 많은 건지. 그런데 이번엔 둘이 알아서 해 먹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가라고 해서 한 짐 덜었다. 식당도 있으니 밥 굶을 일이야 없겠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설거지와 집 청소만 도와주던 남편이 요리에 관심이 생긴 후로 부엌 출입이 잦아졌다. 나 없는 동안 딸내미와 이미 많은 음식을 해 먹어 본 모양이다. 입이 청와대인 딸내미가 진짜 맛있었다고 칭찬을 했다. 돼지 불고기, 김치 치즈 볶음밥, 참치 리조또 떡볶이 등 종류도 다양하다. 비빔국수는 정말 내가 한 것보다 맛있다.
남편의 전화기 커버 속에는 노란색 스티키 노트에 손글씨로 빼곡히 적은 백종원 레서피가 빵빵하게 들어있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뿌듯하고 든든한 모양이다. 가끔 식당에서 음식을 사 오기도 해서 이래저래 일이 많이 줄었다. 아프다고 많이 봐준다.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남편이 요리할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여전히 부엌일은 내 차지고 남편은 사업에만 신경을 썼을 것이다. 어머님이 아시면 속상하겠지만, 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다 살기 마련인 것 같다.
내가 한국에서 머물렀던 호텔은 잠실 먹자골목 안에 있었다. 호텔 문 앞에 백종원의 홍콩반점이 있었다. 우리 동네랑 맛이 같은지 궁금해서 들어가 보았다. 음식 종류가 여기보다 많고 비주얼은 비슷해 보이지만 훨씬 맛있었다.
골목 안에는 백종원의 프렌차이즈인 새마을 식당, 한신포차, 홍콩반점, 빽다방, 돌배기집 등이 입점해 있었는데, 밤이면 손님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화의 희열 2“ 백종원 편에서 그의 과거와 현재를 본 적이 있다. 인물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 매출 700억의 신화는 하루아침에 써진 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남편은 오늘도 골목식당을 보고 있다.
조만간 모자가게 접고 ‘집밥 박 선생’으로 부활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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