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졸업

장사가 잘되는 건 아니지만, 정상적으로 가게 문을 여니 그늘졌던 남편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들어오는 건 없는데 나갈 건 많고 거둬야 할 사람은 많으니 얼마나 마음고생이 컸을까. 다시 상황이 나빠지는 일은 안 생겨야 할 텐데, 너무 일찍 마스크를 벗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코로나 19’로 막혔던 삶은 실로 답답하고 힘들었다. 나만 힘들었던 건 아니겠지만, 지난 몇 달간 나는 시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나름 예민한지 마음이 불편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와 소통하는 사람이 대부분 문인이다 보니 문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그 난리 통에도 위기를 기회 삼아서 여러 편의 작품을 썼다는 분도 있고 출간할 책 원고를 이미 출판사로 넘겼다는 분, 공모전에 낼 원고를 마무리했다는 분도 있었다. 집안에 갇혀 지냈던 상황은 같지만,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창작을 휴업한 나 자신이 초라해서 우울증이 생길 것만 같았다.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는데, 뭔가에 쫓기는 듯한 불안감에 시달렸고, 시간이 갈수록 별것도 아닌 일에 날카로워졌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어차피 못하고 있는 거 내려놓기라도 했으면 마음은 편했을 텐데 그조차도 어려웠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참일 무렵 우연히 창밖에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걸 보게 되었다. 강아지와 함께 걷는 사람도 있고, 자전거 탄 아이를 따라다니는 엄마도 있고, 가족이 함께 걷는 모습도 보였다.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운동화를 찾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호수가 보였다. 내 걸음으로 호숫가를 한 바퀴 도는데 5분 30초 걸리는 작고 예쁜 곳이었다. 분수에선 시원한 물줄기가 솟구쳐 올라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처음엔 동네 한 바퀴 걷고 밤새 다리가 저려서 파스를 붙여야 했는데, 요즘은 열 바퀴를 돌아도 괜찮다. 딸이 함께 가줄 때도 있고 혼자 갈 때도 있는데, 운동 삼아 매일 걷다 보니 기분도 좋고 살도 빠져서 조금 건강해진 느낌이다. 뭣보다도 딸과 이야기를 나누며 걸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호수에 가는 즐거움 중 하나는 그곳에 사는 잉어, 거북이, 오리, 거위, 토끼를 만나는 일이다. 봄꽃이 활짝 피어 구경하느라 천천히 걷기도 한다. 물 반 거북이 반, 아니 물 반 잉어 반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호수는 살아 있는 것들로 가득하여 활기가 넘친다. 짧은 목을 쏙 내놓고 헤엄을 치는 거북이는 두 손바닥 붙인 것만 한데, 물속에 있어도 잘 보인다. 해가 중천에 오르면 거북이들은 잔디 위로 올라와 등을 말리며 일광욕을 즐긴다. 『자산어보』에 거북이는 성질이 매우 더디고 느리며 사람이 가까이 가도 놀라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 동네 거북이들은 성질도 급하고 행동도 빨라서 사람이 지나가면 순식간에 입수하는데 일 분도 안 걸린다. 낮은 물이나 수초 위엔 갓 태어난 연두색 새끼 거북이가 얼마나 많은지. 기거나 조그만 팔다리로 꼬물꼬물 헤엄치는 게 너무 예쁘다. 요즘 수초가 자라 물빛이 에메랄드색이다. 거기 하늘이 담기면 호수는 수시로 옷을 갈아입는다.

동네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건 단연 오리 가족이다. 한 달 전에 새끼 세 마리가 알을 깨고 나왔는데, 그 녀석들이 보고 싶어서 호수 가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어미가 제 새끼를 얼마나 아끼고 챙기는지 모성에 감탄하는 중이다. 풀밭을 걷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행여 다칠세라 날개로 쳐서 새끼들을 물속으로 집어넣는다. 새끼들은 종일 어미를 졸졸 따라다니며 수영도 배우고 궁둥이를 하늘로 쳐들고 거꾸로 물에 박혀 먹이 잡는 법도 배운다. 까불고 다니다가도 낮잠을 잘 땐 어미에게 자석처럼 붙어 잔다. 새끼 교육은 모두 어미 몫인지 아빠 오리는 어디서 놀다가 한 번씩 나타나 따라다니곤 했는데, 어느 날 새끼들만 남겨두고 둘 다 사라졌다. 오리 육아는 한 달로 끝나는 건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길었던 나의 육아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딸의 졸업식을 금요일에 한다는 연락이 왔다. 못하는 줄 알고 시종 섭섭했는데 다행이다. 영원히 내 품에 있을 것 같았던 딸이 가을이면 대학에 간다. 우리 딸도 새끼 오리들처럼 강하고 씩씩하게 제 앞가림을 하고 꿈을 이루며 살았으면 좋겠다. 아이는 준비가 된 듯한데, 나는 아직 어미 오리처럼 떼 놓을 자신이 없다. 음! 이러다 학교 앞에 아파트 얻으러 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