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사히

요즘의 나는 나사 몇 개 풀린 로버트 같다. 몸과 마음이 삐거덕거린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중심을 잡아주던 척추에 문제가 생긴 후로 모든 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통증은 허리에서 시작해 허벅지, 종아리, 엄지발가락까지 급물살처럼 타고 내려갔다.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다 보면 자칭 반 의사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찌 그렇게 아는 게 많은지, 현대의학뿐 아니라 민간요법까지 체험기가 다양하다.
어느 노인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통증이 발가락까지 내려오면 다 끝난 거라고. 안 그래도 죽겠는데 고치러 온 사람에게 끝이라니, 그 말이 몹시 불편하게 들렸다. 누워지냈던 6개월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내 표정이 어두웠는지 급하게 뒷말을 이어갔다. 그분도 내 증상과 같은데, 발가락까지 통증이 내려오더니 어느 날 몸을 빠져나갔노라고 했다. 극적인 반전이었다. 이제 그만그만해져서 약 처방만 받으러 오는 거라며 여유를 부렸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허풍이든 미신이든 거짓말이든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놈의 통증이 발가락 어디로 빠져나간다는 건지 모르겠으나, 그런 기적이 내게도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절뚝거린다. 몸이 기울 때마다 세상이 함께 흔들린다. 걸음을 걸으려면 어느새 두 손은 허리에 와 있고 배는 앞으로 내밀게 된다. 영락없이 임산부 자세다. 내 의지가 아니라 살아보겠다고 기를 쓰는 몸의 반응이다. 굴곡 없는 옆구리에 양손을 올려 엄지는 앞으로 보내고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허리를 감싸면 손가락 끝에 척추뼈가 만져진다. 대나무의 마디 같은 척추를 살살 문지르면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성질대로 긁은 적은 있으나 등을 쓰다듬어 본 기억은 없다. 보이지 않으니 관심조차 없었다. 버티느라 고생이 많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허리통증 때문이었다. 몸에 비상등이 켜지고 나서야 나를 세워주고 받쳐 준 게 척추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당연한 거라 여기며 돌보지 않은 세월이 미안했다.
요즘은 걸을 때마다 발목에서 뚝뚝 뼈 부러지는 소리까지 난다. 무거운 책을 잔뜩 끌어안고 관절 꺾이는 소리를 내는 오래된 책장 같다.
지인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예배에 다녀왔다. 큰 성전에 조문객이 별로 없었다. 어머니의 유언을 받들어 화장하여 한국에 모시고 돌아와 이곳 지인들과 고인을 기리며 드리는 예배여서 그러했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모시느라 마음고생이 많았던 지인은 누가 보아도 효녀였다.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가 너무너무 힘들어서 하나님이 그만 어머니를 데려가셨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드렸다며 자책하는 모습을 보았다.
한 달 동안 다섯 군데 요양병원에서 못 맡겠다고 받아주지 않았다 하니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부모님을 두 분 다 떠나보내고 자책의 세월을 살았던 사람이어서 지인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백번을 잘했어도 무심코 던진 한마디는 납덩이로 남아 심중에 가라앉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부족한 사람이어서 그렇다.
나 역시 생각 없이 어머니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목에 걸려 있다. 어머니는 앉고 설 때마다 “아이고 아이고”하며 소리를 내셨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그렇게 소리 내면 좀 덜 아프냐?”고 퉁퉁거렸다. “너도 늙어봐라. 저절로 나올 테니” 하며 서운한 기색을 보이셨다. 아차 싶었다. 어머니는 마흔여덟 해를 살다 아까운 나이에 돌아가셨다. 내가 요즘 아이고 소리를 달고 산다. 아주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딸내미는 내가 ‘아이고’ 소리를 내면 쏜살같이 다가와 괜찮냐며 부축해준다. 나는 왜 그때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묻지 못했을까. 너무나 죄송하다. 때늦은 후회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늘 아프다.
또 다른 지인의 부고가 있었다. 친정아버님이 한국에서 돌아가셨는데 아이들 때문에 장례식에 가지도 못하고 가슴 아파하는 걸 보니 속상하고 안쓰러웠다. 부모가 돌아가셔도 마음대로 나가 보지 못하는 미국에서의 삶이 정떨어지고 덧없다.
“죽음을 피해 가는 사람은 없다. 죽고 난 후 우리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자. 이 땅에 귀한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살도록 인도해달라고 기도하자.” 오늘 장례예배에서 들었던 목사님의 말씀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날이 밝으면 이북도민회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을 야유회를 간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오늘도 무사히’를 기도하며 하루라는 창문 을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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