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외출금지령을 무시하고 야생화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지 않는다

사회적 거리두기, 자가격리와 같은 낯선 용어에 갇혀 괜스레 주눅이 들고 눈치를 보게 되는 참담한 날들을 맞고 또 보낸다. 요즘은 살고 있다는 말보다 가까스로 버텨내고 있다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 같다. 달라스 카운티에 내려진 ‘자택대피령’으로 매장문을 닫은 남편의 한숨 소리가 종일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매출이 급하강하여 운영이 어렵던 차에 문까지 닫게 되니 앞이 캄캄한 모양이다. 돈을 벌지 못해도 렌트비를 비롯한 제반 경비는 계속 내야 하니 보통 큰일이 아니다. 2001년 발생했던 911테러 때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을 때보다 더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는 말이 피부로 느껴진다.

우리가 사는 댄톤 카운티에는 ‘외출금지령’이 내려진 상태다. 남편은 부지런함이 몸에 밴 사람이라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한다. 맘대로 다녀야 하는데, 가두리 양식장에 갇힌 물고기처럼 종일 집안에서만 지내려니 속에서 천불이 나는지 별것도 아닌 일에 신경질이 늘었다. 뉴스를 보며 못마땅한 정치인을 욕하거나 청소를 되풀이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지난번에 베트남으로 출장을 갔다가 코로나 확산으로 한국에서의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왔을 때 자가격리를 한 게 도움이 되는지 나름 잘 적응하고 있다.
그때 이야기를 하려니 웃음이 나온다. 남편이 출국 전 인천공항에서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 면세점과 복도에 서늘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어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올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한국에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많다는데, 남편은 괜찮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서 방정맞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졌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탔고, 그 비행기엔 한국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탔을 것이고, 그중에 확진자가 없다는 보장은 없으니 말이다. 비행기를 탈 목적으로 해열제를 먹었다면 얼마든지 열 검사를 통과하여 입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 무렵 바이러스 재난 영화 ‘감기’와 ‘컨테이젼’을 동시에 본 충격과 여파가 컸던 것 같다.

전염되면 금방 나타나는 게 아니라 잠복기를 거쳐 발병한다고 하니 모두를 위해 자가격리를 시키는 것이 답이라는 판단이 섰다. 한국을 거쳐 온 것은 아무것도 집에 들이면 안 될 것 같아서 여권과 지갑만 소독 스프레이 뿌려 남기고, 입고 온 옷부터 여행 가방까지 모두 쓰레기통에 버린 후 벌거벗은 알몸만 목욕탕으로 직진하는 코미디 한 편을 찍고 말았다. 다행히 딸은 학교에서 에볼린으로 봉사활동을 떠나서 집에 없었다. 한 이틀 마스크 쓰고 지냈는데, 안경에 습기는 차고 얼마나 답답하던지 못 참고 벗어 버렸다. 종일 마스크에 방호복까지 입고 코로나와 전쟁을 하는 관계자들은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싶어 새삼 노고에 감사하게 되었다. 다행히 남편은 괜찮아서 자가격리를 마치고 일을 가게 되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또 이렇게 갇히게 되었다. 휴가라고 생각하고 편히 쉬라고 해도 편치 않은 모양이다. 남자는 아침에 해 뜨면 나가서 해가 지면 들어와야 한다던 할머니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사 이해된다.

딸도 휴교 공지가 내려와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한 지 열흘째다. 학교 다닐 때처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수업하고 숙제하고 그림도 그리며 나름 바쁘게 지낸다. 컴퓨터만 있으면 온라인으로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수업과 예배도 드릴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다. 하지만 기계로 대체가 안 되는 것도 있다. 육아와 가사를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주부의 일이다. 외식도 못 하고, 타인과의 접촉 때문에 주문하고 픽업하는 것도 불편하고, 식자재와 생필품이 부족한 가운데 먹고 돌아서면 다음 먹거리를 고민해야 하는 고충도 만만치 않다. 나 역시 가두리 양식장 안에서 돌밥돌밥이 업인 무수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혼자 있을 시간이 없으니 창작은 이미 포기했다. 더 길어지면 머리에 꽃 달고 뛰쳐나갈지도 모르겠다.

요 며칠, 날이 좋아서 딸과 함께 동네를 걸었다. 나무마다 봄빛이 내려앉아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고, 죽었던 잔디도 어느새 초록초록해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민들레, 엉겅퀴. 광대나물, 꽃다지, 양지꽃, 토끼풀 같은 작은 야생화들이 빈틈없이 피어있었다. 애초에 사회적 거리두기는 지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새들도 외출금지령 따윈 관심이 없는지 둥지를 벗어나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녔다. 무법자들이다. 돌보지 않아도 살아남는 그들의 강인함이 부러웠다. 하루속히 우리도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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