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붙이는 반창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뒤돌아보니 부엌일 하느라 열어둔 수납장 모서리에 딸내미가 이마를 오지게 박았다. 바로 닫지 않은 내 실수였다. 이마를 감싼 채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아이를 본 순간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기에 그것도 못 보고 부딪히냐고. 자기 잘못도 아닌데, 아이는 죄지은 사람처럼 울지도 못하고 눈물을 삼켰다. 부딪힌 부위의 살이 쑥 들어갔다. 곧 부풀어 올라 멍들 것 같았다. 어미라는 게 위로는 못 해줄망정 대체 뭐라고 쏴붙인 건지 그런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고등학생이 된 딸은 지금도 잘 다친다. 멍투성이다.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는 멍을 들여다보며 어디서 부딪혔는지 기억을 더듬곤 한다. 초등학교 땐 학교 강당에서 넘어져 꼬리뼈가 튀어나온 적도 있다. 잘 앉지도 못하고 허리까지 아파서 오랜 세월 고생했다. 어릴 때도 툭하면 넘어져서 늘 아이 손을 잡고 다녔다. 아무리 작은 아이라 해도 자기 몸무게를 실어 넘어지면 다치기 때문이다. 넘어질 때마다 조심 좀 하지 왜 그렇게 맨날 넘어지냐고 소리를 질러 아이 마음까지 아프게 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좋지 않은 습관이다.
어릴 땐 말대꾸를 못 하던 딸이 오늘은 생각해보니 억울했는지 아파죽겠는데 왜 나한테 화를 내냐며 쌩하니 제방으로 가 버렸다. 음! 이제 할 말은 하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모양이다. 그러게, 왜 그랬을까?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해놓곤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소리부터 지르니 뭔 조환지 나도 모르겠다. 시위를 떠난 말은 아이의 마음에 꽂혀 상처를 낸다. 나는 왜 속상한 마음을 그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 친정엄마의 싫었던 행동 중 하나가 바로 그거였는데 말이다. 다친 마음에 반창고를 붙여주고 싶다.

나도 어릴 때 자주 다쳤다. 쇠로 된 미제 선풍기 날개에 손을 넣어 검지손가락 봉합 수술을 했고, 세워진 자전거 페달을 손으로 돌리며 놀다 자전거에 깔려 이마를 꿰매기도 했다. 하루가 멀다고 넘어져 무릎 성한 날이 없었다. 내가 넘어질 때마다 엄마는 소리를 질렀다. 얘는 생기다 말았나 왜 맨날 넘어지는지 모르겠다며 화를 냈다. 조심 안 했다고 야단치는 바람에 울지도 못했다. 외할머니가 구멍 난 타이즈를 꿰매주었다. 가로로 꿰매고 세로로 꿰매 구멍은 얼기설기 메워졌지만, 마음에 뚫린 구멍은 메워지지 않았다.
상처보다 아팠던 건 엄마의 반응이었다. 나는 아픈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그땐 알지 못했다. 서운함이 마음 한구석에 옹이처럼 박혀 커져만 갔다. 싫다 싫다 하면서 보고 배운다더니 내가 영락없이 그 짝이다.
자주 넘어지는 딸을 키우며 알게 되었다. 생기다 만 아이라서 넘어진 게 아니라 발이 작아서였다는 걸. 엄마가 화를 냈던 건 나한테 화가 나서가 아니라 속상하다는 표현을 그렇게밖에 할 줄 몰라서였다는걸 말이다. 나도 엄마도 내 딸도 발이 작다. 심지어 다 자란 발 사이즈도 같다. 몸무게를 받쳐 줘야 할 발이 작으니 자주 넘어졌던 거 아닌가 싶다.

외국에 살다 보니 아이가 넘어졌을 때 외국인의 반응도 자연스레 접하게 된다. 일으켜 안아주는 사람, 소리 먼저 지르는 사람, 화를 내는 사람 등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김이 다르고 나고 자란 곳은 달라도 그때 내는 화는 속상함의 다른 표현이라는 점도 비슷했다. 이제 내 딸도 화의 의미를 아는 것 같다. 감정 섞인 화가 아니라는 것을. 그게 옳거나 이해하니 그래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좋지 않은 걸 답습할 필요는 없으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이가 넘어졌을 때 외국인들이 자주 쓰는 “Are you okay?”라는 말도 그닥 적절하진 않은 것 같다. 물론 괜찮은 아이도 있겠지만, 넘어져 아픈데 괜찮을 일이 뭐 그리 있을까 싶다. 어떤 말 어떤 행동이 적절한지는 각자 고민해 볼 일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나는 수없이 넘어졌고 반년을 누워 지내기도 했다. 그때 딸은 아무 불평 없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어른도 하기 힘든 수발을 들어주었다. 부족한 엄마를 안 닮아 다행이다. 이다음에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최소한 넘어졌을 때 소리부터 지르는 엄마는 안 될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내 딸이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건강, 관계, 학업, 결혼, 그 어떤 이유로든 말이다. 성실히 노력하여 꿈을 이루고 거친 세상에서 당차게 살아가기를 마음 다해 응원해줄 것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