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애의 행복을 나누는 수다

12월 32일

기해년이 시작되고도 하루가 지났다. 난 여전히 지난해부터 해오던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새 마음으로 새해 맞을 준비를 하지 못했다.
일만 있고 나는 없는 삶의 연속이다. 모처럼의 가족 여행에서조차 컴퓨터를 놓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새해라는 게 그저 어제의 연속이지 새날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지랖 넓게도 벌여놓은 일이 왜 이렇게 많은지 한숨이 절로 쉬어진다. 내가 아니어도 해는 뜨고 세상일은 돌아가는데, 어쩌자고 모두 끌어안고 이렇게 몸살을 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초가 되어도 느슨해진 끈을 잡아당기지 못하고 비실대는 걸 눈치챘는지 기온이 뚝 떨어졌다. 몸을 바짝 움츠리기라도 하라는 걸까. 어서 끝내야겠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남편도 내색을 안 해 그렇지 스트레스가 많은 모양이다. 사업도 전 같지 않은 데다 책임져야 할 일만 늘어나니 언젠가부터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다.
딸내미도 며칠째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를 뽑지 못해 신경이 날카롭다. 한 살 또 한 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릴 땐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게 많았지만, 이젠 스스로 해결하고 진로를 개척해야 하는 나이어서 밥해주고 운전해주는 정도가 우리 몫이다. 혼자 단추를 잠그고, 운동화 끈을 맬 줄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서운함이 생각난다. 대견해야 하는데, 왠지 모르게 섭섭했었다. 앞으로 운전을 하고 대학도 가면 내가 해줄 일은 더 줄어들 것이다. 섭섭하긴 한데 그때쯤 되면 내 등에서 날개가 솟을지도 모르겠다.
바빠서 힘은 들어도 내 일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 아이들 대학 보내고 우울증 앓는 엄마들을 주위에서 자주 본다. 나는 최소한 빈 둥지 증후군에 시달리진 않을 것 같다. 어차피 자기 일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니 각자 추슬러 해결하고 힘을 내기로 했다. 사람은 사람을 배신하지만, 노력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는다. 그래서 도전이 두렵지 않다.
우리 가족도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새해에는 소망하는 일에 도전하고 노력하여 꿈을 이루는 한 해가 되었으면 졸겠다.

겨울비가 내린다. 창밖 풍경이 몹시 스산하다. 하늘이 보이는 쪽은 밝아서 형체가 보이지 않지만, 진녹색 잎을 잔뜩 매달고 서 있는 나무 앞쪽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희고 굵어서 마치 눈이 내리는 것 같다.
잎이 무성했을 땐 몰랐다. 겨울이 되니 파킹랏을 중심으로 가로로 서 있는 나무들과 세로로 서 있는 나무들의 패가 갈렸다. 한쪽은 나목이 되어 빈 가지 사이로 하늘과 빨간 벽돌 건물이 보이는데, 다른 한쪽 나무들은 잎이 무성하여 계절의 흐름을 느낄 수 없었다. 같은 땅에 살아도 종이 달랐던 모양이다. 때가 되면 모두 내려놓고 빈 몸으로 떠나는 게 아름다운 건지, 끝까지 가지를 부여잡고 내려놓지 않은 채 추위와 싸우는 게 좋은 건지는 저마다 이유와 입장이 있을 테니 옳고 그름을 말하긴 어렵다.
사람이 모이는 단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긴 한데, 안 해도 될 고생을 사서 하는 것 같아 어쩐지 안쓰럽다.

아스팔트에 볼 우물처럼 패인 작은 웅덩이와 길 가장자리에 빗물이 제법 고였다. 빗방울이 그리로 떨어질 때마다 물살이 원을 그리며 흔들린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불평이 감사를 앞질러 갈 때 부르는 찬양이 찬송가 429장이다.
작년엔 책을 엮어내느라 힘들었고 이간질로 인해 맘고생도 많았으나 보람 있고 감사 제목이 많았던 해였다.
주신 복이 셀 수 없이 많았는데, 감사보다 불평을 많이 했던 것 같아 죄송하다.
올해는 일도 봉사도 줄이고 건강부터 챙겨야 할 것 같다. 매번 병원 간다고 한국으로 날아갈 형편도 아니고 뭣보다도 내 몸이 힘들다고 사인을 보낸다. 또 누워 못 일어나게 될까 봐 겁난다. 내 고통을 대신해 줄 사람은 이 세상이 아무도 없다.
이젠 내 글도 써야지.
하던 일을 마무리하면 내게도 1월 1일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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