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달다

딸이 혼자 운전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딸이 운전하면 나는 옆에 앉아 훈수를 두었다. 그러다 곧잘 하는 것 같아 키를 내주었다. 기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에 아이를 내놓으려니 걱정이 앞서서 도로 주행을 시키며 지켜보았다. 직진은 잘하는 데 좌회전을 할 때 넓고 급하게 도는 게 문제였다.
좌회전하는 줄이 둘일 경우 넓게 돌면 남의 줄을 먹고 들어가니 부딪힐까 봐 몸이 움츠러졌다.
차선 변경을 할 때도 깜빡이만 켜면 뒤차가 알아서 끼워줄 거라고 생각하는지 주의 깊게 살피지 않고 훅 들어갔다.
차고에서 차를 빼는 것도 주차도 모두 어설펐다.
옆에 타고 운전하는 걸 지켜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손잡이를 잡은 손에선 땀이 흐르고 등줄기가 오싹한 것이 운전은 아이가 하는데, 나는 내 쪽에 있지도 않은 브레이크를 계속 밟아댔다.
그것도 급브레이크를. 간이 떨어질 것 같은 순간이 이어질 때마다 아직은 혼자 운전하게 둘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순간의 부주의는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미숙해서 운전만 집중하기도 정신없을 아이에게 조금 전처럼 하면 사고 난다, 깜빡이 미리 켜라, 신호 앞에서 서행해라 등의 주의를 계속 주니 얼마나 신경 쓰이고 싫었을까.
화가 치미는지 나보고 “TMI”라고 했다. Too much information이란다. 흠!

운전 가르치다 이혼했다는 말이 격하게 공감되었다. 웬만하면 잔소리 안 하려고 꾹꾹 참으려니 몸속에 사리가 쌓이는 것 같았다.
그래, 나는 첨부터 잘 했냐고요? 운전 경력 30년인데 아직 프리웨이도 못 타는 사람이 잔소리할 군번은 아니지.
솔직히 그러는 나 자신이 싫어서 딸아이는 운전학원에 보냈다.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잘 한 것 같다.
내게 운전을 가르쳐주신 분은 할아버지였다. 프리웨이 가면 위험하니 절대 올라가지 말고 로컬로만 살살 다니라고 가르치셨다.
‘살살, 천천히’가 세뇌되어 오늘날까지 경로당 운전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프리웨이는 접근금지 구역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아이는 운전 학교를 보내고 싶었다. 프리웨이를 연습하고 오던 날 위풍당당하게 한마디 하셨다. “프리웨이 쉽던데” 흠!

자기는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혼자 운전하는 걸 허락하지 않으니 왜 자기를 못 믿느냐고 툴툴거렸다. 다른 애들처럼 혼자 타고 싶은 모양이다.
못 믿어서가 아니라 걱정돼서 그런다는 걸 이해할 리가 없다. 딸내미 친구들은 진작부터 혼자 타고 다닌다.
그것도 프리웨이로 쌩쌩 말이다. 그런데 3분 거리에 있는 학교도 혼자 못 가게 하니 부아가 치밀었을 것이다.

저녁밥을 많이 먹고 속이 부대껴서 딸내미와 동네를 걸었다. 분수가 있는 호숫가에 이르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곳엔 오리들이 떼를 지어 놀고 있었다. 지
는 해를 품은 호수는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붉고 아름다웠다. 그 위에 떠다니는 오리들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호수 주위를 걷다가 오리 가족을 발견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노란 오리들이 엄마 오리 주변에서 놀고 있었다. 아빠 오리는 신나게 놀다가 한 번씩 와서 식구들 근처에서 어슬렁대다 또다시 천방지축 돌아다녔다. 하지만 엄마 오리는 아기 오리 곁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켰다.

딸내미가 오리 그림 그릴 때 써야겠다며 살금살금 다가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려 하자 엄마 오리가 아기 오리들을 날개로 감싸며 경계했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금방이라도 날아올라 덤빌 기세였다. 자세히 좀 더 가까이서 찍으려고 시도했더니 위협을 느낀 엄마 오리는 아기 오리들을 모두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우르르 떨어졌는데 엄마 오리가 앞장서 나가니 아기 오리들이 줄을 맞춰 엄마를 따라갔다.
오리의 모성에 감동하였다. 오리 사진은 실패했지만, 딸내미는 엄마 오리에게 한 수 배웠다. 엄마 오리는 수영 잘하는 아기 오리를 못 믿는 게 아니라 걱정돼서 보호하는 거라는 것을.
학교와 교회, 미술 학원은 이제 혼자서 운전해 다녀온다. 날개를 단 기분일 것이다.
장하다. 라이드만 안 해도 살 것 같다. 나의 육아도 졸업할 때가 된 모양이다.
지금은 반경이 거기까지지만, 곧 성장한 오리처럼 날고 헤엄치고 뛸 것이다.
세상에 나가 활짝 꿈을 펼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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