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색

미니 시집 제의를 받은 지 족히 두어 달은 지난 것 같다.
7편 못쓰랴 싶어 계약서에 사인했었다.
새로운 형식의 청탁이 반갑기도 했고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는데 7편은커녕 한 편도 쓰지 못했다. theme에 맞춰 신작을 써야 하는데 이상하게 써지지 않았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생각이 온통 바이러스를 먹은 것처럼 떠오르질 않았다.
못하겠다고 취소하면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모두 없던 일로 하고 싶었다.
함부로 계약한 것도, 자신을 과대평가한 것도 후회가 되었다. 시가 뚝뚝 떨어질 거라고 착각했던 모양이다. 무엇에 눈이 멀어 사리 분별을 못 했는지 내 발 등을 찍고 싶었다.

창작은 누가 쫀다고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글 씨앗을 여기저기 심어보고, 펼쳤다 줄여 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쓰는 족족 쓰레기 같았다. 썼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 버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어떤 날은 몇 시간 동안 모니터만 바라보다 한 자도 쓰지 못한 채 일어섰다.
청탁을 한두 번 받아 본 것도 아니고, 시를 쓴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대체 왜 안 써지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띵- 소리가 나서 전화기를 열어보니 페이스북 친구가 간밤에 시가 비처럼 내렸다며 올려놓았다. 염장 지르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심지어 잘 썼다. 아무래도 내 머릿속의 뭔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꺼진 것 같았다.
설상가상 신경 쓰며 의자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허리도 버텨주지 못했다. 다리 힘줄이 당겨 입원했을 때처럼 앉고 서는 것도 힘들었다. 몸은 제발 눕자 하는 데 불안해서 그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무리를 했다.
독한 커피를 마시며 잠을 쫓아도 시는 써지지 않고 결과물이 없으니 온몸의 피와 살이 내리는 것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눈은 퀭하고 영혼이 피폐해지는 것 같았다.
창작이 고통이 정말 이런 것인가 싶었다.
마음이 병들어 모임도 가기 싫고, 누구랑 말 섞는 것도 싫고, 밥맛도 없고, 만사가 귀찮았다. 시 쓰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지옥 같았다, 왜 거절 못 하고 욕심을 부려 고생을 사서 하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최악의 슬럼프였다.

마음이 편해지길 기다렸다. 책을 읽고, 노래도 듣고, 동네를 걸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마감이 며칠 남았는지 보려고 포스터를 클릭했다.
참여자 명단이 보였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그제 서야 알았다, 내가 쓰지 못한 이유를. 처음 이메일을 받았던 날, 명단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시인의 이름을 본 순간 내가 저기 끼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써야 하는데, 확인하고 나니 자신감은 더 떨어지고 무의식 속에 있던 걱정이 현실로 다가왔다.
잘 쓰는 사람과 비교당하면 어쩌나, 무시하면 어쩌나 오만가지 걱정이 시작되었다. 잘 써야 한다는 강박에 잠도 안 오고, 시는 쓰는 족족 허접하여 지우기 바빴다.
영혼이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았다.

두 주 만에 만난 지인이 시는 잘 되어 가냐고 물었다. 사정을 털어놓았더니 각자 개성이 다른 데 왜 신경을 쓰냐고 했다. 자기가 연주를 잘 해보려고 좋은 거 다 따서 흉내 내며 무리했을 땐 오히려 실수가 잦았고, 잘할 수 있는 거로 연주했을 때 점수가 좋았다며 평소 하던 대로 쓰라고 조언해주었다.
친정 언니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각자 색깔이 다른데 무슨 걱정이냐고.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으니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내 색깔이 무슨 색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뭐라도 맞으니 불렀겠지 위로하기로 했다.
가장 위대한 창작은 삶의 기록이라고 했다. 내 곁에 와 있는 봄을 그려보려 한다.
봄에 만난 꽃, 사람, 추억, 일상을 말이다. 내려놓으니 한결 편안해졌다. 그렇게 안 써지던 시를 세 편 썼다. 막혔던 혈관이 뚫리는 것 같다. 성장통을 호되게 앓고 나니 먼 곳이 보인다.
잔인했던 4월이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 빨리 해산하고 쉬고 싶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