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이혼으로 해 달라고요?

이혼 문제 관련 법률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일단 합의 이혼으로 진행해 주세요. 간단히 문서만 준비해 주실 수 있죠?” 뭔가 큰 뜻은 알 것 같은데 이게 뭐지 하고 잠시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는 예전에도 뉴스코리아의 법률 칼럼 란을 통해 합의 의혼에 대해 간략히 살펴본 바가 있다. 지난번 칼럼은 합의 이혼이 결국 당사자간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본적 성격과 법률 원칙에 대한 얘기였다. 그러면 이번 칼럼에서는 합의 이혼이 어떻게 진행되고 마무리되는가 하는 절차적인 문제에 대한 설명을 하고자 한다.
몇 해 전까지 주로 한인들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에서 법률 활동을 줄 곧 해 왔던 필자는 한국법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한인분들과 이혼 관련 법률 상담을 하면서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쉽게 설명해 드린다고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상담 받으시는 분이 확실히 이해를 하셨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최근 어느 연예인 커플의 이혼 조정 신청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아하, 바로 이거였구나!” 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좁은 시각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

“합의 이혼으로 진행해 주세요”하면 지금까지 필자가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시작부터 합의 이혼이라고 하는 절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저 이혼이 재판까지 가지 않고 합의로 끝나면 그것을 우리는 합의 이혼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설명 드린다. 그럼에도 어떤 분들은 합의 이혼으로 간단히 진행해 달라고 계속 사정을 하신다. 합의 이혼과 그렇지 않은 이혼이 서로 다른 과정과 절차에 의해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계시는 것 같다. 이제 필자는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미국(텍사스 주)에서 어떻게 합의 이혼이 이루어지는지 설명해 보려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한국 사람들은 성을 먼저 쓰고 이름을 그 뒤에 쓴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이름을 먼저 쓰고 성을 그 뒤에 쓴다. 한국 사람들은 연도를 먼저 쓰고 달과 날짜 순으로 쓴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달과 날짜를 먼저 쓰고 연도를 제일 마지막에 쓴다. 주소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람들은 무슨시 어떤동 아무길 몇번지 등으로 큰 단위부터 쓰는데, 미국 사람들은 몇번지 아무길 어떤시 무슨주 등으로 작은 단위로 시작해 큰 단위로 간다. 참 희한하게 다르다. 이혼하는 절차도 그런 것 같다. 한국은 일단 이혼 조정 절차를 통해 먼저 합의를 시도해 보는 것 같다. 그리고 합의가 어려운 경우 이혼 소송으로 넘어간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텍사스 주)에서 이혼을 하려면 일단 이혼 소송으로 시작을 한다. 그리고 그 이후 당사자간에 합의가 가능한지 타진해 본다.
미국 (텍사스 주)에서 이혼을 하려면 일단 해당 법원에 이혼 청원서를 접수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이혼 소송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일반적인 민사 소송이 시작되는 것과 똑같다. 어느 누구도 합의를 먼저 해 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무슨 마음을 가지고 이혼을 시작하든 해당 법원에 정식 이혼 소송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합의 이혼을 한다고 초반에 제출하는 서류나 법원 접수비가 다르지도 않다. 단, 이혼 소송 절차가 시작되고 나면, 당사자간에 자발적으로 합의를 위한 타진을 해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판사들도 가능하면 합의로 이혼이 끝나는 것을 선호한다. 자발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는 경우 조정관을 통한 조정 절차를 거치기도 한다. 실상 이러한 조정 절차를 요구하는 법원들의 수가 최근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이혼 소송을 정식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합의를 위해 그러한 조정 절차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일단 합의 이혼으로 진행해 주세요”라는 얘기는 이러한 점에서 혼란을 빚었던 것 같다. 합의로 조용히 이혼을 하고 싶은데 마치 상대방을 법원에 고소라도 하듯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였던 것 같다. 사실상 한국법과 미국법의 차이점은 결과적으로 보면 그리 크지 않다. 한국이나 미국 어디에서도 이혼은 합의로 끝날 수도 있고 재판까지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단지 한국법은 합의를 위한 조정 절차를 미리 맨 앞에 두고 있는 반면, 미국법 (텍사스 주법)은 일단 이혼 소송이 정상적으로 시작되고 난 후 상호간에 합의를 모색해 보는 것이다. 합의를 위해 조정 절차를 거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참 흥미로운 법 문화의 차이점인 것 같다. 가정사를 두고 이혼을 부드럽게 시작하려는 문화와 다소 강하게 시작하려는 두 문화의 다른 점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 당사자들이 이혼을 합의로 끝내려 하는 경우 법원은 어떤 입장일가? 앞서 얘기했듯이 이혼 법원은 당사자들이 합의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당사자들의 합의 내용을 대부분 존중한다. 그런데 법원이 반드시 당사자들의 합의 사항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이혼 법원은 당사자들의 합의 내용에 대해 반대를 하고 수정을 요구하고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특히 법적 결정권이 거의 없는 미성년 자녀와 관련된 양육권, 접견권, 혹은 자녀 양육비 문제의 경우 부모들의 합의 사항이 자녀의 이해관계와 심각하게 상충된다고 여겨지는 경우 이혼 법원은 다소 비판적이고 까다로워질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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