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법 2편

입증 자료가 재판의 꽃이라는 것은 이미 지난번 법률 칼럼에서 얘기했다. 이번에는 증거법에서 중요한 개념을 하나 얘기해 보려 한다. 법정에서 어떤 주장을 하려는 경우, 누가 먼저 그 주장을 입증할 책임 혹은 의무가 있는가 하는 문제다. 간단히 말해서 법원에서 재판을 할 때 누가 먼저 판사나 배심원 앞에서 자신의 증거물을 하나씩 제출해야 하는가 하는 소송상의 순서와 절차에 대한 내용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순이가 똘이를 향해 소리친다. “야, 너 내가 아까 사다 놓은 떡볶이 먹었지?” 똘이가 얘기한다. “와, 생사람 잡네. 증거 있어?” 순이가 다시 소리친다. “어쭈, 그럼 네가 안 먹었다는 증거 있어!” 자 이 상황을 상식적으로 보자. 누가 먼저 입증의 책임이 있을까? 당연히 순이가 먼저 증거를 대야 한다. 순이가 말하는 식으로 똘이가 안 먹었다는 증거를 먼저 대라고 한다면 그것은 억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똘이가 순이의 떡볶이를 안 먹었다는 증거를 못 댄다고 그것이 반드시 똘이가 순이의 떡볶이를 먹었다는 얘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혼 법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주장하려면 그것을 주장하는 측이 먼저 그 증거를 대야 한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경우, 상대방에게 바람을 피운 적이 없다는 증거를 먼저 보여주라고 할 수는 없다. 상대방이 좋은 부모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주장하는 측이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들이 어느 정도 제시됐다면, 그 이후 상대방은 이를 반박하거나 전혀 다른 사실을 보여주는 다른 증거를 제출하면 된다. 이쯤 되면 법원의 판사나 배심원은 양측의 주장과 증거물들을 모두 고려하여 과연 어느 쪽의 얘기가 더 믿을 만하고 구체적이며 설득력이 있는지 판단하여 결론을 내게 된다.

이혼 소송과 같은 민사법의 경우 양측의 주장과 입증 자료들이 서로 공방을 펼치게 되고 결국 증거물이 미약하거나 제출할 만한 자료가 상대적으로 적은 쪽이 불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형사법과 관련된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형사법은 국가에서 범법 행위에 대한 죄와 책임을 묻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 체계다. 형사법 문제는 민사법 문제와는 다른 점이 꽤 있다. 각 개인이 갖는 헌법상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형사법에서 적용되는 독특한 원칙들이 있기 때문이다. 묵비권과 무죄 추정의 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묵비권은 경찰이나 검찰이 묻거나 요구하는 것에 대해 답변을 거부하고 침묵할 수 있는 권리이다. 또한 무죄 추정의 원칙은 피고인의 범죄가 입증되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은 무죄로 간주된다는 원칙이다. 따라서 누군가를 형사법상 범법 행위로 고발하려면 검찰측에서 먼저 범죄 사실을 명백히 입증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피고인이 결백함을 먼저 증명할 필요도 없고 자백을 강요당하지도 않는다.

음주운전의 예를 들어 보자. 텍사스 주에서 술이나 약물 등에 취해 신체적 정신적 기능이 손상된 상황에서 운전을 하거나 혹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8 퍼센트 이상이 된 상태에서 운전을 하는 경우 형사법상 범법 행위로 간주된다. 밤에 운전을 하고 가는 도중 경찰관이 불러 세웠다고 하자. 술 냄새가 난다며 차 밖으로 불러내 이런 저런 테스트를 요구한다. 간이 음주 측정기에 입을 대고 숨을 내 뱉으라고도 한다. 시키는 대로 해야 할까?
간단히 답하자면 그러한 요구에 따라야 할 법적인 의무가 없다. 위에서 언급한 묵비권과 무죄 추정의 원칙을 생각해 보자. 음주 운전을 했다는 증거물은 범법 사실을 고발하려 하는 경찰 및 검찰측에서 먼저 제시해야 한다. 명백한 입증 자료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피고인은 그냥 무죄로 간주된다.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자신이 결백하다는 증거를 먼저 내 놓으라고 하는 법은 없다. 범죄 입증의 책임 혹은 의무는 항상 검찰측에 있다.

따라서 경찰이 다양한 음주운전 관련 테스트 및 측정을 요구하는 것은 범법 사실의 증거 자료를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자신의 범법 행위와 관련된 증거자료를 경찰이 보다 손쉽게 수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 아닌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물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경찰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와서 강제로 혈액 채취를 통한 증거물 확보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법원의 명령인 영장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음주운전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법적으로 갖고 있는 묵비권을 행사해야 할 상황이라면 경찰관의 요구에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사양하면 된다. 음주측정 요구에 꼭 협조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이번 법률칼럼에서는 가정법과 형사법 얘기를 각각 예로 들어 누가 먼저 입증의 책임 혹은 의무가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았다. 무엇인가를 주장하는 측이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 자료를 먼저 제출해야 한다는 상식같은 논리가 그 저변에 있다. 그런데 실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이러한 상식이 간혹 뒤틀리기도 하고 고의적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증거법은 이러한 복잡한 상황에 대한 게임 규칙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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