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지 마세요

세상엔 섞어서 좋은 것도 있고, 섞어서 안 좋은 것도 있는 것 같다. 서로 다른 색깔을 섞어서 더 예뻐지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술도 음식도 이것 저것 섞어서 맛을 더 내는 경우도 있지만 안 섞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 결혼생활은 어쩌면 남남인 두 사람이 만나 여러가지를 함께 섞고 지내며 사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혼을 하려고 하면 지금까지 섞였던 여러가지 것들을 나누고 정리해야 한다. 그 중에서 애초에 섞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있다.

텍사스에서 이혼을 하려면 재산분할 문제와 관련하여 잘 알려진 기본원칙이 있다. 이혼하는 시점에 존재하는 모든 재산(빚도 포함)은 일단 부부의 공동재산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혼법원은 그러한 공동재산을 부부간에 공정하게 나누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텍사스 주의 이혼법원이 나눌 수 없는 재산이 있다. 텍사스 주법은 그러한 재산을 크게 세가지로 얘기하고 있다. 남편이나 아내 어느 한 사람이 결혼하기 전부터 이미 소유하고 있던 재산, 상속받은 재산, 혹은 증여받은 재산이 바로 그것이다. 어느 한 개인의 재산권이 보호되는 특유재산이므로 이혼법원이 맘대로 나눌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런데 어떤 것을 자기 자신의 특유재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텍사스 주법은 특유재산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왜 그것이 특유재산인지를 보여주는 꽤 신빙성 있고 명확한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증거가 없다면 그냥 공동재산으로 간주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처음에는 상당히 자신만만해 하신다. 얼마든지 증거를 댈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얘기를 조금 더 하다보면 그러한 증거를 대는 것이 생각보다 단순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보자. 남편이 결혼한 지 2년이 채 못 되어 부친상을 당하게 되었다. 부친께서 돌아가시기 전 남기신 유서에 따라 남편은 $50,000의 현금을 받게 되었다. 남편은 당시제일 좋은 이자율을 제시하는 A 은행에 자신의 명의로 은행구좌를 새로 열고 그 현금 $50,000을 모두 입금시켰다. 그리고 30년이 지났다. 그간 이자가 꾸준히 붙어 이제 그 은행구좌의 잔고가 $73,000이 되었다.
최근 아내가 이혼을 원한다. 그리고는 그 은행구좌에 들어있는 금액의 절반을 요구한다. 남편은 그 재산이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자신의 특유재산이니 이혼소송에서 나눠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신 유서의 사본과 함께 법원을 통해 받은 유언검인 증명을 모두 그 증거로 제시했다. 과연 누가 맞는 말을 하는 것일까?

일단 남편이 제출한 자료들은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속재산을 증명하는 데 꽤 신빙성 있고 명확한 증거물로 보인다. 따라서 그 증거물 자체에 대해 이의가 없는 한 그 은행구좌 잔고의 절반을 요구하는 아내의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남편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법률 원칙이 하나 있다. 아무리 자신의 특유재산이라 하더라도 그 재산을 통해 창출된 수입에 대한 부분은 공동재산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남편이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50,000은 남편의 특유재산이 맞지만, 그 이후 $50,000을 통해 발생한 이자수입은 부부간의 공동재산이 된다.
따라서, 아내는 $50,000를 제외한 $23,000의 이자수입 부분에 대해 일정부분 자신의 갖는 공정한 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다.
그나마 위의 예는 상황을 아주 간략하게 만들어 본 것이다. 실제로 30년 간 은행구좌에 입급돼 있던 금액을 그대로 놓아두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필요에 따라 돈을 더 넣기도 하고 빼내어 쓰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3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수십번에 이르는 입금과 출금 사실이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더욱이 그간 수시로 이 은행구좌에 입금된 금액이 대부분 남편의 월급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이미 이 은행구좌는 남편의 특유재산 부분(아버지로부터의 상속)과 부부의 공동재산 부분(이자수입 및 남편의 월급)이 오랜 시간에 걸쳐 모두 한데 섞여 버린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 상태에서 특유재산과 공동재산을 명확히 구분해 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굉장히 힘들다는 얘기다.

결혼을 준비할 때 혹은 결혼 생활 중에 항상 이혼을 염두해 둔다는 것은 여간 불편한 감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혹시 모를 미래에 대비하는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고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자신에게 특유재산이 있다면 그건 정확히 다른 재산과 분리해 두자. 절대로 섞지 말자. 그리고 그것이 왜 특유재산인지를 나타내는 증거자료는 잘 보관해 두어야 할 것이다.
또한 특유재산을 통해 발생하는 각종 수입 부분도 그 특유재산과 별도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아야 할 것이다. 아니면 결혼하기 전 혹은 결혼 중간이라도 부부 상호간에 아예 모든 관련 재산의 성격과 운영을 명확히 구분해 놓는 부부 당사자간의 정식 계약서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가정법 전문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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