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칼럼: 겨울 준비

학교 기숙사에 있던 막내가 빨랫감을 한 가득 짊어지고 집에 왔다.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딸은 느닷없이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칼빈까지 들먹이며 장황하게 이야기를 한 뒤 질문을 한다. 친구들과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서 많은 토론을 한 듯 했다. “하나님이 미리 믿을 사람과 믿지 않을 사람을 예정해 놓았으니 우리가 굳이 믿으려고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요? 어차피 하나님이 믿기로 예정한 사람은 믿을 것이고 하나님이 믿음을 주지 않으려고 한 사람은 믿지 않을 것이니까요”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꽤 심도 있는 주제로 친구들과 토론하는 딸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예정은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할 부분이 아닌 하나님의 영역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죽음은 현실이고 실재이다. 그런데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교회에 계시는 한 장로님이 암으로 투병중인 아버님을 한달 정도 간호하시며 겪었던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장로님은 식사할 때만 제외하고는 계속 아버님의 병상을 지키고 있었는데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2-3주 동안 하루에도 몇 차례씩 침대 앞에 있는 액자를 보면서 검정 옷 입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나와 나를 잡으러 온다고 하시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곤 하셨다. 그때마다 장로님은 아버님을 붙잡고 기도하고 찬송하면 조금 후에 아버님은 땀을 흘리면서 “수고했다”고 하시며 안정을 되찾곤 하셨다. 침대에 뉘윈 채 병실을 이동할 때도 아버님은 검은 망토를 입은 자들이 나를 쫓아온다고 하며 계속 달라 붙어 나를 잡으려고 한다며 소리쳤고 그럴 때마다 장로님은 아버님을 위해 기도하고 찬송하기를 쉬지 않았다. 장로님은 아버님을 간호하면서 정말 힘든 순간이 여러 차례 있었고 영적 전쟁에서 마귀는 장로님을 어떻게 해서든지 아버님과 떼어 놓으려고 아버님을 통해 독설을 내뱉게 하시고 장로님의 기분을 언짢게 하시며 몇 차례나 병 간호를 못하게 병실에서 내어 보내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1주일 전,아버님은 장로님을 껴안으며 “그들과 싸움에서 이겼다, 고맙다.”고 하시며 가족들에게 축복을 나눈 뒤 평안하게 돌아가셨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본다고 할 때 본다는 것은 대개 빛을 통해서 우리의 눈으로 정보를 얻는다는 뜻이다. 그러면 우리의 눈을 통해 보지 못하는 것은 없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가령 전파나 중력, 전기, 소리, 냄새, 공기 등이다. 우리가 휴대폰으로 전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전파 덕분이다. 전파는 전기의 파동으로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만져 볼 수도 없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늘 함께 하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전파와 공기의 실재를 부인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마찬 가지로 영적인 세계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은 없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바야흐로 가을이다. 삼라만상은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질서 있게 운행되고 있다. 새싹이 돋을 때가 있고 녹음이 무성할 때가 있으며 열매 맺을 때가 있고 낙엽이 질 때가 있으며 앙상한 나뭇가지로 지내야 하는 때가 있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다. 꽃이 피는 시기가 있으면 꽃이 지는 날이 있듯이 우리의 삶 또한 사계절의 순환처럼 우리에게도 곧 인생의 겨울이 올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역을 넘나들며 유한한 인생을 낭비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유한함과 사고의 한계를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 자신을 불쌍히 여겨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유한한 인생을 더욱 풍요롭고 지혜롭게 사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허양희 사모
어스틴 주님의 교회
‘사모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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