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기도하는 일에만 힘썼을까?

이진희 목사의 그래서 그랬던 거야?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 1:14).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여기에 사용된 “전혀”는 문법적으로는 맞지 않는 표현이다. “전혀”는 부정적인 표현을 할 때 사용하는 부사이기 때문이다.
문법적으로는 개정판에서처럼 “오로지”라는 단어를 넣어야 맞는다. 그러나 오히려 “전혀”라는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부사가 들어감으로 유명한 구절이 되었다. 새번역과 비교해보자.
“이들은 모두,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썼다”(행 1:14)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행 2:42).
개역에서는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번역했는데, 새번역에서는 단순히 “기도에 힘썼다”고만 번역했다.
“전혀 힘썼다”고 번역한 헬라어는 proskartereo으로서 힘쓰다. 몰입하다. 열심히 하다는 뜻이다. 새번역 성경처럼 기도에 힘썼다고만 표현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개역성경 번역자는 그것으로 양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번역했던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 기도를 특별히 강조하는데, 이 구절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proskartereo이 기도와 관련해서 사용된 구절이 하나 더 있다.
“기도를 계속하고(proskartereo)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
사도행전 번역자가 이 구절을 번역했다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
“오로지 기도에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그러나 골로새서를 번역한 사람은 단순하게 “기도를 계속하라”라고만 번역했다. 그렇다고 원문에 충실하지 않은 번역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 정도로 번역해도 충분하다.
proskartereo가 사용된 다른 한 구절을 더 살펴보자.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proskartereo)”(행 2:46).
여기에서는 웬일인지 단순하게 “힘쓰고”로만 번역했다. 기도와 관련해서는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번역했으나 모이는 것과 관련해서는 그저 “힘썼다”라고만 번역하였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도행전을 번역한 사람이 의도적으로 기도를 강조하기 위해 기도와 관련해서만 “전혀 힘썼다”고 번역을 했다는 사실이다.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는 표현은 오직 기도하는 일에만 전념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나 초대 교인들이 다른 것은 하지 않고 오직 기도하는 일에만 전념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열심히 기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직 기도하는 일에만 전념한 것은 아니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이 구절을 잘못 이해해서 초대 교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도 받고, 서로 교제도 나누고, 떡도 떼고(성만찬) 했지만, 특별히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던 것처럼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새번역을 보면 그런 것이 오해라고 하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이것이 맞는 번역이다. 그들이 전혀 힘썼던 것은 기도뿐만이 아니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일에도 전혀 힘썼다. 서로 교제하는 일에도 전혀 힘썼다. 떡을 떼는 일에도 전혀 힘썼다. 그리고 기도하는 일에도 전혀 힘썼다.
이 구절을 개정판에서는 개역의 “전혀”가 문법적으로 맞지 않음으로 그것을 “오로지”라는 단어로 대체하였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여기에서 “오로지”라는 부사가 “기도하다”라는 동사만을 수식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마치 초대 교인들이 다른 어떤 것보다 기도를 중요시하고, 기도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기도하는 일에만 몰두했던 것으로 오해를 할 수도 있다.
굳이 오로지라는 단어를 사용하려고 한다면 그 단어가 이 문장에 나오는 모든 동사들을 다 수식하도록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들은 오로지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고 기도하는 일에 힘쓰니라.”
초대 교인들은 전혀 성전에 모이는 일에 힘썼다. 그들은 가르침을 받는 일에 힘썼다. 교제에 힘썼다. 성만찬을 나누는 일에 힘썼다.
그리고 기도하는 일에 힘썼다. 결코 말씀 배우는 일보다 기도에 더 힘썼던 것이 아니다. 성만찬보다 기도를 더 중요시했던 것이 아니다.
기도에 전념하고 남는 시간에 교제를 나누었던 것이 아니다. 말씀과 교제와 성만찬, 그리고 기도를 모두 중요시했고, 그 모든 것들이 초대 교인들에게 있어서는 균형을 잘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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