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라! 하나님의 집

아시아경제지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경제난 속 미국의 슬픈 자화상 “교회가 은행에 압류 당했어요.” 로이터 통신들의 조사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교회 가압류는 270건이 발생했으며 계속 가속도가 붙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한인 교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몇몇 주변의 큰 교회들이 이 현실에 처해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일어나고 있을까요? 주님의 교회의 가치를 어디다 두느냐에 그 큰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에서 첫 번째 표적을 통하여 구속사의 참 의미를 밝히시면서 곧바로, 구속사의 중심이신 예수 자신을 성전이라 계시하셨습니다.
아시아경제지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경제난 속 미국의 슬픈 자화상 “교회가 은행에 압류 당했어요.” 로이터 통신들의 조사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교회 가압류는 270건이 발생했으며 계속 가속도가 붙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한인 교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몇몇 주변의 큰 교회들이 이 현실에 처해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일어나고 있을까요? 주님의 교회의 가치를 어디다 두느냐에 그 큰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에서 첫 번째 표적을 통하여 구속사의 참 의미를 밝히시면서 곧 바로, 구속사의 중심이신 예수 자신을 성전이라 계시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사역의 초기(요2:12-25)와 말기(마21:12-17, 막11:15-19, 눅19:45-48)에 성전을 정화시킴으로 진정한 성전 중심의 신앙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성전 된 자신의 몸을 계시 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행하실 최초의 일이 눈에 보이는 모든 교회를 정화 하시고 혼인 잔치를 여시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 2:14-16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성전 안에서 소와 양을 파는 자들을 성전 밖으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명하신 사건, 이는 지상에서의 공생애 동안 우리 예수님께서 취하신 것 중 가장 강력한 큰 진노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신성을 회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16절“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여기서 “내 아버지의 집”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기는 하나님의 은총을 말합니다. 나를 비우고 하나님의 능력을 채우는 곳입니다. 내가 죽고 하나님만 살게 하는 참 신앙의 현장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은 우리의 욕망과 이기주의뿐 아니라 우리의 선한 뜻까지도 포기하는 완전한 하나님 중심의 삶을 뜻합니다. 그와 반면에 “장사하는 집”은 우리의 탐욕과 이익 우리의 수단과 방법 나의 의지를 앞세우는 세속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장사하는 집”은 너보다는 나를, 하나님 보다 나의 유익을 먼저 삼게 되는 인간 중심적인 삶 개인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중심이 인간 중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죄악의 구조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중심의 땅으로 바꾸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읽히고,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임재 하시는 장소에서 예배드리는 자는 언제나 성령과 진리의 예배가 되어야만 합니다. 전5:1“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 지어다” 예배드리는 자는 경건하고 경의를 갖춘 행동을 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한 예배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위한 예배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하나님 임재의 장소인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46년 동안 지은 웅장한 이 성전을 헐라고 하셨을까요? 요 2:19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다시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우리에게 요 2:21-22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전을 헐라 하신 성전은 형식적이고, 외식적이고, 교만하며 나의 이익만 추구하는 장사하는 성전, 자기 공로를 세워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 보겠다는 성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헐라는 예수님의 책망을 받은 후에도 헐지 못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주후 70년에 로마장군 티투스에 의해 하나님께서 그 성전을 깨끗이 헐으셨습니다. 나의 부패한 성전을 내가 헐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헐어 버리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고전3: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예수님은 더럽혀진 성전을 다시 회복하려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주후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하나님께서 그 성전을 깨끗이 헐으셨습니다. 나의 부패한 성전을 내가 헐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헐어 버리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고전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예수님은 더럽혀진 성전을 다시 회복하려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죄로 더럽혀진 우리를 십자가로 허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새 성전을 지으실 것을 말씀하심인 것입니다(요2:19). 참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제물이나, 건물 성전이나, 의식에 있지 아니하고 십자가의 공로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역사가 없다면 성전은 무의미합니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이 성전의 개념이 크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전(교회)이라 하십니다(고전6:19-20).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가는 곳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기 계셔서 우리를 통하여 이 땅에 들어오시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을 베푸십니다. 성전(교회) 중심 신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극치를 이룹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소유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진리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레10:10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고전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제 그리스도인 되었으면, 세 가지만 구별하면 어떨까요!
1) 성전(교회)과 시장적 가치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에클레시아’ 구별이란 뜻입니다. 죄악 세상에서 가려내고, 뽑아낸 것이 교회입니다. 맛 잃은 소금은 바깥에 던진바 되어 사람들에게 밝힐 뿐입니다. 빛 잃은 등잔은 등경 위에 둘 필요가 없습니다.(마 5:13-14) 오늘 이 땅의 교회들에 당면한 위기는 할 일과 못 할 일의 한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이 피를 섞고 말았을 때, 하나님은 탄식하셨다는 점입니다(창 6:18).
2)제물과 상품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성전에는 쪼개어 바쳐진 제물만이 있어야 합니다. 희생은 억울한 것입니다. 억울하기에 희생입니다. 희생의 대가는 금물입니다. 대가를 생각하면 장사꾼입니다. 인본주의와 세속화로 교회가 장날을 맞은 듯 흥왕을 누리고 있을 때, 하나님의 제단(예배)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3) 기도 소리와 짐승소리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제단 곁의 돈 바꾸는 상을 펴 놓고, 배금주의자가 앉아버티고 있는 한, 교회의 영성(기도)의 밀실이 세속에 점령되어, 제물이 상품화되어 교회의 부흥은 오지 않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을 내 아버지의 집으로, 기도하는 집을 기도하는 집으로 구별할 때, 비로소 예수그리스도의 교회의 참 모습을 찾게 될 것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6장19-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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