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케호모 (Ecce Homo)

“에케호모” 십자가에 달린 이 사람을 보라. 이 단어는 라틴어입니다. 요19:5에서 빌라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채찍질하고 가시관을 씌운 뒤 성난 군중들 앞에서 한 말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나와의 만남을 믿고 사십니까?

예수님의 고난의 생은 의의 성취입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6:4)” 그러기에 우리의 의가 되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의의 성취는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이어지는 것이지만, 예수님의 생은 율법을 성취한 능동적 순종이었던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고난의 생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생을 자세히 만나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를 정립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든 죄악 아래 사신 생애였습니다. 인성이 만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다 겪었습니다.
피곤, 배고픔, 외로움, 수치와 핍박, 그리고 자기 백성들의 배척을 감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상처를 입고 창백한 얼굴에 피투성이가 된 이 사람! 절망적인 외마디로 부르짖는 이 사람! 범죄자가 되어 채찍에 맞아 십자가에 달려 찢기고 부서진 이 사람을 보라. 그는 결코 우리와 같은 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시며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보라! 십자가에 있는 그 사람(예수)! 거기에는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시며, 오직 여기에서만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된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계십니다.
예수가 죽으실 때에 다른 사람이 죽는 것과는 전혀 그 환경과 그 주변이 달랐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이 예수님이 죽으실 때에 많은 기적들이 일어난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에 기적이 일어났던 것처럼 예수님의 죽음에서도 같은 비슷한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정오부터 오후 3시 사이 온 땅이 어두움으로 가득 덮였다고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무엇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십자가에 자기를 못 박은 자들을 위하여 아마도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외치셨습니다. 벌을 받으시는 동안에 인간은 예수님의 고통을 바라볼 권리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고통을 어두움으로 감추어 버리셨던 것입니다. 이 어두움은 우리 죄의 어두움으로 향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너를 구속하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매우 값비싼 대가를 지불했노라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으로 확인시키십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마27:51)”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에 증명은,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증거를 보이심인 것입니다. 아래로부터 위로 찢어졌다면 아래에 있는 인간들이 찢었다고 하겠지만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예수가 단번에 드려짐으로 더 이상 희생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사역 까닭에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에케호모” 십자가에 달린 이 사람을 보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예수님이 무덤에 갇혀 있는 시간은 우리 대신 음부에 내려가신 시간입니다. 개혁신학에 의하면 지옥(음부) 강화는 그리스도가 그의 영혼으로 지옥에 친히 감이 아니라, 그것은 십자가의 극심한 고난과 죽음의 극치와 땅에까지 묻힘을 뜻하는 비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영혼이 저주받은 자들의 곳에 갈 수가 없기에 대속적 속죄이므로 그리스도의 영혼이 속죄제물이 되었어도 이미 지옥에 가 있는 자들은 저주받아 상실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친히 가셔서 구원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이 전 우주적인 사건이어서 십자가 사건이 영의 권세로 지옥에까지 알려짐을 뜻하는 것입니다. 엡4:8-10절과 벧전3:18-20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 대표구절이 된다 할 것입니다.

“에케호모” 십자가에 달린 이 사람을 보라. 하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 사람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 위해 우리 인간과 동일한 위치에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심판에서 우리 인간에 대한 그의 심판을 끝맺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형벌 속에 던짐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용납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죄는 던져 버리고 우리의 허물과 모든 것들은 심판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 곧, 이 큰 구원은 십자가에 못 박힌 자가 실지로 하나님의 버림을 당했다는 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이 절규는, 십자가 위에서 외친 일곱 마디 말씀 중에 가장 위대한 위로의 말씀으로서 실로 이 절규야말로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장 위로가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이후 이 세상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일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가 그 예수님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사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수난의 길을 스스로 걸으신 이후 절망은 다시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의 죄가 우리를 여전히 괴롭히며 우리의 죄가 너무 커서 하나님께서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성경을 잘 못 이해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롬6:10 “예수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 번에 죽으심이요 예수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고난이 끝이 나고 죄의 용서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 구절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구원은 우리가 죄를 범했다고 감소되거나 보류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본래 죄인 되었을 때에 은혜로 불러 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십자가로 구원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예수)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장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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