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교회

김원락 목사의 목회칼럼

오늘은 존 맥아더 목사가 쓴 세상을 닮아가는 교회에 대한 경고의 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교회』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이 내용은 성경 본문을 매우 섬세하고, 명쾌하고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기독교의 위치를 세밀하게 파악해보고 성경의 본질에 입각하여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사역을 마케팅 철학과 영합해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이미 부메랑이 되어 교회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경험한 많은 교인이 교회에서 주일을 보내는 것을 하루를 날리는 것과 진배없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편승한 교회들은 이런 현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배가 무엇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예배를 음악과 풍자극과 혼합 미디어와 다른 의사 전달 수단에 의지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 모든 요점은 ‘이용자에게 친절하게’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설교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형식이 아니라 심리화적이고 동기 부여적인 형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강조점은 ‘이용자에게 친절’이라는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함치는 일도 없고 강력하게 강조하는 것도 없이 듣기에 부담 없는 소리만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죄책감은 1/3로 줄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속되면 성경의 메시지는 필연적으로 철학에 의하여 왜곡됩니다. 그것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강력하게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타협하기에 생긴 결과입니다.
시장지향적이고 이용자에게 친절한 교회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준다는 목적을 중심으로 삼고 있음으로 ‘느끼는 필요’가 현대 교회의 마케팅 계획을 위한 지침표로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판매의 기본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사람들의 느끼는 필요를 평가하는 것이 현대교회 성장 이론의 열쇠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철학의 결과는 명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전략이 모든 교회 활동의 원천과 사역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 것입니다. 최근에 나온 ‘이용자에게 친절한’ 장르에 속하는 한 책에는 ‘시대가 다르면 메시지가 달라야 한다’는 제목이 붙은 대목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오늘날 사람들은 실제로 백 년 전에 적절하던 메시지와는 다른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적 사역과 완전히 반대된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더글라스 웹스터, 스폴전의 말처럼 시장지향 전략을 따르면서 동시에 성경에 신실하게 남을 수는 없다는 경고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첫 절에서 자신을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사람으로 서술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서에서 복음을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바울은 1-11장까지 교리 체계를 분명히 세워놓고, 그런 후에 이 서신의 12-16장에 이르기까지 복음 진리를 현실에 적용합니다. 복음이 시종일관 주제이고,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사역에 중심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 영적 경배의 행위, 즉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제사장의 사역과 같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의무가 아니라 엄청난 특권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관점은 하나님이 자신과 같은 디모데전서 1장 15절 ‘죄인 중 괴수’를 택해 부르셨으므로 자신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다른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사람에게 말씀 전파와 복음 사역으로 자신을 아낌없이 주며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목표물 마케팅’은 이용자에게 친절한 교회 운동의 핵심 개념입니다. 이는 누구에게 사역할 것인지 결정하고 청중에게 맞도록 ‘상품’을 만들고 겨냥한 집단외의 사람들에게 ‘자원을 낭비하지’ 말도록 하라는 전략입니다.
야고보서 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그러므로 자신의 사역을 목표청중을 선택하는데 국한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사역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를 깨달았기에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빚진 자로 보고 핍박당하고 매맞고 감옥에 가고 복음을 전파할 특권을 위하여 죽음까지 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결코 타협은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로마서 1: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그러니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으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손상하지 않으시고 죄인을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복음이 시작되는 출발점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임을 주목시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용자에게 친절한 교회는 하나님의 진노를 말하는 진리를 바로 선포할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들 교회가 전파하는 복음이라는 것은 종종 하나님의 진노라는 현실이 제거되곤 합니다. 교회사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있다면, 시대가 다르고 사회가 다르다고 해서 다른 메시지를 전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 말고 다른 것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역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상실한 자임을 지적합니다. 결국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복음이지, 인간의 창의적인 태도나 ‘이용자에게 친절한 태도’나 교묘한 기법이나 현대의 방법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늘날 성장을 위한 몸부림은 더욱더 거세어지고 있습니다. ‘이용자에게 편리한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한, 우리에게는 전혀 의도적인 악이 없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교회를 성장시키겠다는 열심히 오히려 복음을 멀리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지적은 오늘날 교회를 성령의 전으로 세워가기 보다는 사람에게 친절한 ‘극장’으로 만들고 있지나 않은가? 우리 모두 복음과 청지기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로마서 1장 16절)”
김원락 목사
· 현) 달라스충현장로교회 담임목사
·  www.ichoonghy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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